인도홍차여행② 아삼의 슬픔, 닐기리의 광활함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외지인이 차 생산소득 다 가져가 아삼 주민 초라한 생활 보며 아픔이 웅장한 차 밭 풍경으로 유명한 닐기리 자연에 녹아 사는 닐기리 지역 사람들
아삼 지역은 인도 홍차 생산량의 절반인 약 65만 톤을 생산한다. 그리고 아삼홍차 생산량은 전 세계 차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차를 생산하는 단일산지로서는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하는 곳이다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던 영국은 자신의 식민지 중 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고, 아삼을 최적지로 선택했다. 18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삼에서 홍차가 생산되기 시작한 이후 1970년대까지 아삼은 100년 이상을 홍차의 나라 영국을 지탱한 최대 홍차 공급지였다(지금은 영국이 케냐로부터 주로 수입한다).
인도 지도를 보면 북동쪽에 섬처럼 있는 지역이 아삼이다. 북동쪽으로는 중국, 남동쪽으로는 미얀마, 남서쪽으로는 방글라데시에 둘러싸여 인도 본토와는 ‘실리굴리 회랑(Siliguri Corridor)’ 혹은 ‘닭의 목(Chicken’s Neck)’이라 불리는 폭 22km의 좁은 통로로만 연결되어 있다.
영국 통치를 받던 아삼주...세계 최대 다우지역
인도의 마지막 왕조인 무굴제국 시대(1526년~1857년)만 하더라도 아삼은 인도 땅이 아니었다. 복속시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덥고 습한 밀림지역인 아삼은 큰 희생을 치르면서 꼭 정복해야만 하는 매력 있는 곳이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 중학교 시절 세계 최고 다우(多雨)지역이라고 인문지리 시간에서 배운 그 아삼이다. 아삼은 홍차와 석유 때문에 영국의 관심을 끌었고,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 땅이 되었다.
앞에서 아삼이라고 언급한 지역은 현재는 아삼, 아루나찰프라데쉬, 메갈라야, 나갈랜드, 미조람, 마니푸르, 트리푸라 등 7개 주로 나누어져 있고 홍차는 주로 중심부에 위치한 아삼 주에서 생산된다. 최근 들어서는 주변의 다른 주에서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적/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아삼은 인종도 종교도 인도 본토와는 많이 다르다. 힌두교 보다는 기독교인 수가 더 많고, 인도 본토와는 달리 유일하게 한류가 히트치는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이질성 때문인지 이 지역 사람들은 인도 본토 사람들로부터 다소 무시당하고 배척당하기도 한다. 아삼을 “북동부의 일곱 자매 주”라고 부르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다원 소유자, 다원의 간부들도 대부분 외지인이고 본사도 대부분 캘커타에 위치한다. 뿐만 아니라 티 보드(Tea Board) 같은 차 관련 기관의 본부도 거의 다 캘커타에 위치한다. 이로 인해, 인도홍차의 절반을 생산하지만 영국통치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삼은 가장 뒤처지고 소외되고 가난한 주 중 하나이다. 번 돈을 아삼에 투자하지 않고 전부다 가져간다는 생각에 외지인에 대한 피해의식도 많고 적개심도 높은 편이다.
외지인이 다 뺏어가는, 서럽게 아름다운 차밭
지난 4월 아삼 방문은 필자로서는 4번째였다. 어느 정도 아삼의 분위기에 익숙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것은 변함없었다. 티 팩토리(홍차를 생산하는 공장)를 방문하기 위해 가는 도중 차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게 되었다.
버스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거의 직선의 비포장 도로 양쪽에 규격화된 집들이-차마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너무나 초라한 집이-쭉 이어지고 양쪽으로 다섯 집 정도 간격으로 공동 수도가 있었다. 굵은 파이프에서 물이 계속 나오는 식이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많은 수의 마을 사람들이 수돗가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마을 한 가운데로 지나치기는 처음이었다. 언젠가 읽은 “홍차의 이면裏面은 슬프다” 라는 문장이 떠 올랐다.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향기로운 홍차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이었다.
다음 날, 또 다른 다원을 방문하고 돌아 나오면서 도로 사정으로 차가 잠시 멈췄을 때였다. 뒷좌석 왼편에 앉아 있던 필자는 우연히 차장 넘어 왼쪽편으로 아마도 차 노동자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보이는 작은 교실과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일부는 바깥에, 일부는 교실에 있었다.
필자가 10m쯤 떨어져 있는 교실의 학생들을 향해 카메라를 돌리자, 갑자기 교실에 있던 학생까지 나와서 격렬히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자 그들은 “와”하는 큰 함성으로 답을 해줬다. 마치 월드컵 때 골이 터졌을 때 관중들이 지르는 소리와 비슷하리만큼 크고 우렁찼다. 아마도 낯선 세계 낯선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가득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모든 일이 20~30초 사이에 일어났다. 이동 중이고 뒤에 따라오는 차량도 있어서 그 자리를 곧바로 벗어났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러고 내내 내가 왜 눈물이 났는지를 생각했다. 세상을 알고 그들의 위치와 상태를 아는 조금 잘사는 나라의 나이든 사람의 건방진 연민일까, 동정일까 혹은 안타까움일까 아니면 너무나 순진하고 해 맑은 모습에 대한 감동일까.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련함이 남는다.
같이 여행한 연세가 많은 여성 아카데미 졸업생은 아삼을 떠나오면서 이 여행이 너무 힘들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대강은 알고 갔지만 직접 보는 그들 삶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보여 안타까왔다고 했다.
아삼의 차 밭은 아름다웠다. 아삼 홍차도 맛있다. 하지만 그 곳에 살면서 홍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적어도 우리들 눈에는- 아름답지 않았다. 이제 그들도 자신의 삶을 알기 시작하는 듯 했다.
‘닐기리’를 보지 않고는 차 밭을 말할 수 없어
다즐링, 아삼과 함께 인도의 3대 주요 차 생산지인 닐기리(Nilgiri)도 방문했다. 닐기리는 생산량에서는 인도 전체의 약 20%를 차지함에도 앞의 두 생산지에 비해서는 중요도가 좀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맛과 향에서 뚜렷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스티를 만들었을 때는 닐기리 홍차가 가장 맛있긴 하다.

인도 남부 주라고 불리는 카르나타카, 타밀나두, 케랄라 세 주의 경계선에 위치하는 닐기리 지역 역시 식민지 시절 다즐링처럼 영국인들이 개척한 더위를 피하기 위한 휴양지였다. 닐기리의 중심도시 우띠는 고도가 2200m가 넘는다. 우띠(ooty-정식이름은 우다가만달람Udagamanalam)는 영국식민지 시절 현재 첸나이를 중심으로 한 마드라스(첸나이의 이전 이름) 관구의 여름 수도였다.
적도 인근이라 1년 내내 홍차를 생산하지만 겨울철에 해당하는 12월~다음해 3월에 생산되어 ‘프로스트 티(Frost Tea)’ 혹은 ‘윈터 플러시(Winter Flush)’로 불리는 홍차가 가장 맛있다. 이중에는 매우 탁월한 맛과 향을 가진 홍차도 있다. 닐기리 차산지의 평균 고도가 해발 1700m, 높은 곳은 2500m에 이르다 보니 겨울철에는 온도가 떨어져 가끔씩 서리도 내리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비행기 노선 문제로 다즐링 바그도그라 공항을 출발해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IT 산업의 핵심도시인 벵갈루루 공항에 내렸다. 곧 바로 옛 마이소르 왕국의 중심지 마이소르로 이동한 후 다음날 닐기리로 향했다. 다즐링에서 우띠까지 거의 이동에만 하루 반이 걸렸다.
닐기리의 중심도시는 우띠지만 다원은 주변 도시인 쿠누르(Coonoor), 코타기리(Kothagiri)에 더 많이 있었다. 식민지시절 만든 협궤 열차를 타고 우띠를 출발해 1시간 정도 걸리는 쿠누르로 이동했다. 1등석은 쿠페(Coupe)식으로 8명이 탈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세 칸에 나누어 탔는데, 덜커덕 거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열차 경험도 색달랐다. 이동 중에 간간히 차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웅장한 차밭
닐기리 차 밭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다즐링은 경사가 급하고 규모가 작은 산등성이 마다마다에 주로 차 밭이 있어 한 눈에 펼쳐지는 풍광은 그리 대단치 않아 보였다. 또 아삼은 평원지역에 차 밭이 있긴 했으나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그런 규모의 차 밭은 보지 못했다. 아삼은 햇빛으로부터 찻잎을 보호하기 위한 그늘막이 나무도 많아 마치 평지 숲속에 차 밭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닐기리 차 밭은 완만한 경사로 아주 넓고 큰 산의 기슭부터 정상까지, 그리고 아마도 정상너머 반대편에까지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장대하고 장엄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많은 자료를 통해 닐기리 차 밭이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내용도 읽었고 꼭 10년 전 닐기리 남쪽 지역인 무나르(Munnar)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도 있지만, 쿠누르와 코타기리의 차 밭 풍광은 정말 상상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라 차 밭 분위기도 아삼, 다즐링과는 사뭇 달랐다. 차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마치 말을 거는 것 같고, 차 밭이 깊게 느껴지고 그 깊은 차 밭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장면마다 크고작은 스토리가 있을 듯싶었다.
자연에 녹아 사는 사람들
일행이 묵는 숙소도 다원 한가운데 있는 일종의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새벽에 일어나 큰 통 창을 통해 보는 어스름한 차 밭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요란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현지인들의 기도소리 등도 이런 느낌을 더했다.
한 군데 더 잡은 숙소는 이름이 PrakritiLaya Nature Homes였는데 PrakritiLaya는 산스크리트어로 “자연에 녹아들다” 라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가 마치 다원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았다. 플라스틱 제품도 안 쓰고, 술도 못 마시고, 제공하는 식사도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로 만든 비건(Vegan) 음식이었다. 맛있고 기분 좋은 식사였다.

인도는 여전히 빈부 격차가 심해 우리가 아삼과 다즐링을 여행하면서 마주한 현실에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교육받고 의식 있는 젊은이들은 이처럼 자연 혹은 인도의 자연과 교류와 공생을 추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공간이 우리가 사랑하는 차 밭 한 가운데 있어서 더 크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아삼, 다즐링, 닐기리는 인도를 대표하는 세 곳의 차 생산지이지만 생활수준도, 날씨도 환경도 모두 달랐다. 차 공부 보다는 그냥 차 밭 여행을 하고 싶다면 단연코 닐기리를 추천하고 싶다. 눈이 녹색으로 물들면서 영혼이 힐링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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