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운을 담아? 인도에서 만든 ‘초고가’ 홍차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비싼 차, 차에 다양한 신화를 더하는 마케팅 저렴한 홍차에 ‘문 라이트’ 신화 입혀 2천불 보름달 아래 채엽한 찻 잎 스토리에 ‘호평’

G20 사전행사로 보도된 보름달 아래서 채엽하는 장면.
G20 사전행사로 보도된 보름달 아래서 채엽하는 장면.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마시는 차 역시 비싼 것과 저렴한 것이 있다. 차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다양한데 생산지도 그 중 하나다. 대부분의 농산물처럼 차나무 역시 재배에 아주 적합한 자연환경과 기후가 있기 때문이다. 가공방법도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채엽(採葉)이 핵심이다. 차는 차나무의 싹이나 (주로는) 잎으로 만드는데, 싹이나 어린 잎 위주로 만든 차가 대체로 맛과 향이 더 좋다.

비싼 차의 조건은

여기에 더하여 생산 시기도 매우 중요한데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중국, 일본 같은 경우는 이른 봄에 채엽한 싹과 어린 잎으로 만든 차가 제일 고급으로 여겨진다. 이른 봄에 채엽한 찻잎에 맛과 향이 좋은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

우리나라 녹차 중 가장 고급인 우전(雨前)은 곡우(穀雨, 양력 4월20일) 전에 만들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명전(明前)은 청명(淸明, 양력 4월5일) 전에 만든 차를 의미한다. 일본 역시 이른 봄에 만든 이치반차(一番茶)를 최고로 친다. 이른 봄이라는 한정된 시기에만 생산되다 보니 생산량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조건도 비싼 이유가 된다.

이처럼 생산지, 생산시기, 채엽 방법 등의 차별화로 인한 고급화에 또 다른 요인이 덧붙여져 비싸진 차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이차다. 보이차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더해져서 가격이 높아진다. 즉 만든 지 20년 혹은 30년, 혹은 40년이 지나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차는 맛과 향이 더 좋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주는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더해진 것이다.

인도의 다즐링 마카이바리 다원 전경 사진=문기영
인도의 다즐링 마카이바리 다원 전경 사진=문기영

‘시간’이라는 조건을 더한 차

오래된 차나무(고차수古茶樹)에서 채엽한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고수차古樹茶) 역시 비싸게 판매된다. 수령이 100년 500년 심지어 800년 된 차나무에서 채엽한 찻잎으로 보이차를 만들면 그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주장 덕이다. 이 또한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더해진다. 오래된 차나무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마케팅은 중국, 그 중에서도 운남성처럼 오래된 차나무가 많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보이차나 가능한 방법이다.

이 세상의 차(茶)는 녹차, 홍차, 청차(우롱차), 흑차(보이차), 백차, 황차 이렇게 6가지로 분류하는데, 이들 모두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지금도 차는 중국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고 제일 많이 음용된다. 하지만 홍차는 중국 외에서 더 많이 생산되고 더 많이 음용된다.

홍차라는 차를 처음 만든 건 중국일지 모르지만(다른 주장도 있긴 하다), 전 세계로 확산시킨 나라는 유럽 국가들이며 그 중에서도 영국이 주된 역할을 했다. 현재 홍차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인도, 케냐, 스리랑카 등이다. 최근 들어 중국의 홍차 생산량이 늘고 있지만 전 세계 홍차 생산량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홍차가 저렴한 이유

인도, 케냐, 스리랑카를 식민통치하고 있던 영국이 1860년~1900년경부터 홍차생산을 주도했다. 영국은 자신들의 음용 기호에 맞추기 위해 중국 홍차와는 다른 새로운 홍차가공법을 만들었다. 이 가공법으로 만든 것을 영국식 홍차라고 부른다. 영국식 홍차는 맛이 강해 우유와 설탕을 넣었을 때 더 맛있어지는 특징을 가진다.

싹과 어린 잎 위주로 만드는 섬세한 중국홍차와는 속성이 전혀 다르다. 다 자란 잎 위주로 가공함으로 생산단가는 매우 저렴하다. 인도홍차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삼홍차 90% 이상이 옥션(Auction)에서 ㎏당 2.5달러 수준에서 거래된다. 케냐, 스리랑카 홍차가격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가격도 저렴하다. 이것이 홍차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할 때부터 영국이 원했던 바다. 즉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마실 수 있는 일상음료로서의 값싼 홍차였다. 여전히 영국은 홍차소비량의 90% 이상이 티백형태다. 가장 많이 마시는 브랜드 중 하나인 피지 팁스(PG Tips) 티백의 개당 가격은 한국돈 60원 전후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가 홍차인 것도 저렴한 가격이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근래 들어 서양에서도 건강에 대한 우려와 동아시아식 차음용법의 확산으로 설탕과 우유를 넣지 않고 마실 수 있는 고급홍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영국식 홍차 중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은 다즐링 홍차다. 히말라야 산 기슭의 독특한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차별화된 맛과 향으로 유명하다. 홍차 고급화 추세로 최근엔 싹과 어린 잎 위주로 생산하다보니 맛과 향은 더 섬세해지고 생산량은 줄어들어 가격은 더 비싸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영국식 홍차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가격의 상한선이라는 게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보이차가 비쌀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이라는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라자 바네지 회장(완쪽) 사진=구글
라자 바네지 회장(완쪽) 사진=구글

아주 비싼 홍차의 특별한 마케팅

다즐링의 유명 다원 중 하나인 ‘마카이바리 다원’의 오랜 소유주였던 라자 바네지(Rajah Banerjee) 회장은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바네지 회장은 2000년대 초부터 ‘실버 팁스 임페리얼(Silver Tips Imperial)’이라는, 옥션 거래가격이 ㎏당 2000달러에 이르는, 아주 비싼 홍차를 생산해서 성공적으로 판매해 오고 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홍차가 100g에 200달러라는 가격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말이 안 될 정도로 비싼 가격이다.

물론 고품질 중국종 차나무를 적당한 경사지에 심어 햇빛 량을 이상적으로 쬐게 하는 등 특별한 가공법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 그 높은 가격을 매기는 이유로는 부족했다. 여기에 보름달이 뜨는 맑은 날 밤(Full-moon night)에 싹과 어린 잎만 채엽하여 만든다는 차별점을 더했다. 보름달이 떴을 때 찻잎이 우주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이 때 채엽한 찻잎으로 만든 차가 맛과 향이 아주 뛰어나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만드는 차가 중국에도 있지만 다즐링이라는 영국식 홍차에 적용했다는 것이 홍차애호가들에게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실제로 마카이바리 다원 사무실에는 어두운 밤에 횃불을 들고 찻잎을 따고 있는 ‘티 플러커’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실버 팁스 임페리얼은 지금도 인도에서 생산되는 차 중 가장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당 2천달러로 팔린다는 마카이바리 다원의 '실버 팁스 임페리얼' 사진=마카이바리 다원 홈페이지
㎏당 2천달러로 팔린다는 마카이바리 다원의 ‘실버 팁스 임페리얼’ 사진=마카이바리 다원 홈페이지

우주의 기운을 담아서?

G20 정상회의가 올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다. 그 사전행사 중 하나로 선발 대표단 중 일부가 지난 4월초 다즐링 마카이바리 다원에서 보름달이 떴을 때 실버 팁스 임페리얼용 찻잎을 채엽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언론에서는 영적인 행사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Moonlight tea plucking is a spiritual ceremony) 크게 보도했다. 인도홍보 행사 중 하나로 선택될 만큼 마케팅에 성공한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다즐링 다원 홍차 중 비싼 것에는 문라이트(Moonlight), 문샤인(Moonshine), 문빔(Moonbeam) 같이 유독 달(Moon) 이라는 문구가 제품명에 많이 사용된다. 차 종주국이라는 프리미엄으로 비싼 차는 모두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홍차에서나마 중국산과 겨룰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일상음료인 차가 지나치게 비싸지는 추세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다.

글쓴이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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