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ATM, 보존 대상인가?

[차현진의 삼라만想] 대학교엔 즐비한 ATM기 산동네에 사라지는 문제, 어떻게 해결할까

산동네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사라진 ATM기를 찾아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사진= 연합뉴스
산동네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사라진 ATM기를 찾아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사진= 연합뉴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10월 1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보도자료를 쏟아낸다. 그래서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이어진다.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생활밀착형 뉴스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ATM(현금자동 입출금기)이 1769대나 사라졌다는 소식이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은행 ATM이 줄어드는 것이 전혀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2013년 12만 4236대를 정점으로 지난 7년 간 ATM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지갑 속에 현찰을 넣고 다닐 필요성이 계속 줄어든데다가 상업은행들이 수익성을 따져 원가절감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ATM 1대의 연간 유지비용이 1500만 원 정도라서 월 이용건수가 4000건 이하이면 상업은행 입장에서 ATM은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지난해 이맘때도 국회의원들이 똑같은 현상을 지적했다. 그때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국민들의 현금이용 편의성 저하를 방지하고자” 상업은행들과 함께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딱히 이렇다 할 묘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역 간 격차보다 ‘지역 내 격차’에 주목해야

매년 그 문제를 지적하는 국회의원들과 언론의 관심사는 지역 간 격차다. 생활편의 시설인 ATM이 특정 지역에 부족하면 지역구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올해도 광역시도별 감소율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광역시도별 ATM 분포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진짜 차이는 지역 안에서 나타난다. 쟁쟁한 기업들이 즐비한 대형 건물이나 대학교 캠퍼스 안의 ATM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상업은행이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고서라도 지점, 출장소, ATM을 운영하면서 기업 자금이나 등록금을 예치 받는다.

은행 점포나 ATM가 줄어드는 것은 소득수준이 낮은 동네다. 그러다보니 거동이 불편한 산동네 노인네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와서 현금을 인출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반면 튼튼한 다리를 가진 20대 대학생들은 캠퍼스 곳곳에 설치된 ATM에서 편안하게 현금을 인출한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1인당 소득(GNI) 1만 2천 달러 이상인 고소득 국가에서는 2007년 이후 ATM이 감소 추세에 있고, 그 현상은 변두리나 지방에서 두드러진다. 사회통합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영국은 이런 현상을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ATM을 보건소나 학교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으로 보고, ATM 운영을 금융포용 차원에서 접근했다. 즉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38개 상업은행들을 규합하여 ATM의 설치와 운영을 전담하는 비영리 회사(LINK Scheme Holdings LTD)를 설립했다. 1985년 설립된 이 회사는 현금인출 수수료를 받지 않는 무료 ATM을 소외된 지역에 보급하고, ‘목이 좋은’ 지역에 ATM이 집중되지 않도록 조율한다. 그 덕분에 영국에서는 저소득 지역의 70%에 반드시 1개 이상의 무료 ATM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이 국민들의 현금 이용 편의성과 금융포용에 관심이 있었다면, 진작 비슷한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ATM이 줄어든다는 통계만 열심히 만들 뿐 별도의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영국을 모델로 삼아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멸종동물과 희귀동물의 개체수를 파악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그것들을 보전하려는 것 아닌가!

장기적으로는 ATM 감소 ‘불가피’

물론 한국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이 좌고우면하는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는 ATM 보급 면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한다. 반면 명목 국민소득(GDP) 대비 화폐발행액은 대단히 낮은 축에 속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는 현찰 수요에 비해서 ATM이 포화상태인 것이다.

인터넷 뱅킹과 모바일 뱅킹이 확대될수록 ATM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바일 뱅킹과 전자상거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지금, ATM을 보전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서 공중전화 부스를 보전하려는 노력과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국회와 언론이 ATM 감소 추세만 들추고 문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영국 모델을 통해 지역 내 ATM 배치의 불균형을 해소하더라도 그것은 지금부터 5~10년 정도의 한시적 사업일 뿐이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좀 더 긴 안목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영국 모델을 뛰어넘어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한국형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일석이조를 노려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정책의 초점을 ‘현금 이용의 편의성(convenience)’에서 ‘지급 방식의 수월성(excellency)’으로 바꿔야 한다. IT강국인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ATM 감소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IT 기술로써 ATM이 없어도 아무 불편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현금의 가장 큰 장점은 지급과 결제가 동시에 완료되므로 결제리스크가 없다는 점이다(분실과 도난 리스크가 있을 뿐이다). 반면 어음과 수표로 지급할 때는 결제하는 데 최소 하루가 걸린다(어음교환소를 경유하여 예금계좌의 잔액이 변동하는 데 하루가 걸린다). 신용카드의 경우 지급과 결제의 간극이 한 달씩 걸린다. 결국 현금을 제외한 모든 지급수단에는 결제리스크가 있으며, 상업은행들은 그 리스크 때문에 상당히 많은 규모의 국채(차액결제 이행보증 담보)를 의무적으로 보유한다.

그런데 지급과 결제의 간극을 완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이는 지급결제 시스템 면에서 혁명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중앙은행과 상업은행들의 컴퓨터 시스템을 연결해야 한다. 그럴 경우 개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송금하는 결과가 중앙은행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의 변동과 즉각적으로 연동된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16세기부터 운영되어 왔던 어음교환소의 기능이 컴퓨터로 완전 대체되는 것이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2~3년 뒤에도 가능하다.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그런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것을 ‘신속지급시스템(fast payment system)’이라고 한다. 그런 시스템이 있는 나라에서는 ATM의 감소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개인이 PC나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를 하고, 그 순간 결제까지 완료됨으로써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한 것과 똑같은 효과를 얻는다(지급과 결제의 시차가 0이다).

ATM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갑자기 CBDC로 이어지는 바람에 어리둥절한 독자들이 있으리라. 하지만 모든 개인들이 PC와 스마트폰을 통해 계좌이체 방식으로 돈을 주고받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그런 사회에서는 굳이 현찰과 ATM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런 세상에서는 결제리스크가 사라지고, 현금의 제작·운반·보관에 드는 비용도 사라진다.

문제는 저소득층이나 고령자와 같은 일부 금융소외 계층이 PC와 스마트폰을 구매할 자금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큰 문제라면, 정부가 저가의 보급형 모델을 일부 취약계층에게 무료로 지급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IT 강국 아닌가? 코로나19 백신은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접종했는데, 일부 취약계층에 단말기를 무료로 배급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것이 한국조폐공사의 거대한 설비를 계속 운영하는 비용보다 적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ATM의 감소와 지역 간 격차를 타령할 때가 아니다. 영국은 그 문제에 집중했지만, 그것은 단기 처방일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현금이 사라지는 새로운 세계를 언제 어떤 식으로 맞이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좌고우면하면서 다른 나라의 눈치를 살필 것이냐, IT 강국답게 주도적으로 맞이할 것이냐의 문제다. 항상 그렇듯이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글쓴이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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