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자산,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차현진의 심라만想] 이론적 모순과 판단 오류들 정책당국에 등진 것도 큰 잘못 “가을이후 혹독한 시기 올 것”

각국 금융감독당국은 올 가을이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대대적인 매스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연합뉴스
각국 금융감독당국은 올 가을이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대대적인 매스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만 30만 명이 울고 있다고 한다. 가격 폭락으로 하룻밤에 50조원이 증발한 암호자산 루나와 테라의 이야기다. 놀랄 만한 뉴스는 또 있다. 이른바 김치코인에 속하는 테라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최근까지 암호자산 시장에서 8~9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히 암호자산 시장에서도 한류가 펼쳐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K-팝과 K-컬처에 이어서 K-크립토(K-crypto)는 이제 어려울 것 같다. 세계 각국의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국의 금융시장을 점검하면서 암호자산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 언론계가 둘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활자매체를 비롯하여 공중파 방송은 지금의 루나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도하고,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반면, 인터넷 매체들은 앞날을 전망하는데 신중하다. 독자나 구독자들 중 투자자가 많은 점을 감안, 암호자산의 어두운 장래를 굳이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경제학계는 암호자산의 앞날에 매우 비관적

이런 어두운 상황에서 웃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암호자산의 위험성과 허구성을 비판해 오던 ‘저명’ 경제학자들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가 대표적이다. 최근의 전 세계적 물가상승으로 모든 금융자산의 실질가치가 낮아진 점을 감안하면, 비트코인을 기준으로 평가한 여타 암호자산들의 실질가격은 여전히 높다고 지적하면서 추가적인 가격하락을 단언한다.

경제학자들은 테라와 루나와 같은, 소위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스테이블코인 투자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이론적으로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라는 개념이 있다. 환율안정, 자본이동의 자유,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이후 미국(그리고 한국)은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면서 환율안정을 포기했고, 20년 뒤 유럽은 유로화 도입을 통해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포기했다(대신 회원국 사이의 환율은 변하지 않는다). 북한은 통화정책의 자율성과 환율의 안정을 택하는 대신 자본이동을 통제한다.

그런 눈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바라본다면, 탈중앙화(DeFi)와 가격안정, 그리고 투자의 효율성(적은 준비자산)을 모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US 테더사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더는 “1 테더 = 1 미달러 화”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탈중앙화를 포기했다. DAI라는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보전을 위해서 150%의 담보를 쌓으면서 투자의 효율성을 포기했다(1 DAI에 대해서 1.5달러의 가치에 해당하는 이더리움을 준비자산으로 비축한다).

믿을만한 발행자도, 충분한 준비자산도 없는 테라와 루나의 경우 가치가 안정될 수 없다. 테라의 가격이 뛰면 자동적으로 루나를 발행하여 그것을 준비자산으로 테라를 추가 발행한 뒤 시장에 팔아서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테라-루나 알고리즘’은 황당하다. 오직 가격이 뛸 때만 성립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필자는 컴퓨터 기술에 문외한이지만, 알고리즘과 시나리오의 차이는 안다). “왼발이 물에 잠기기 전에 오른발을 내밀면, 물위를 걸을 수 있다”는 식의 시나리오와 별로 다르지 않다.

탈중앙화 금융은 전통 금융과 불가분의 관계

탈중앙화 금융(DeFi)을 지지하는 쪽은 전통적 금융과 담을 쌓는다. 현실을 단순화하면서 기존 금융기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통적 금융(TradFi, traditional finance)에 종사하는 사람도 DeFi 세계에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유가증권과 선물시장의 국제기준을 정하는 IOSCO는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IOSCO Decentralized Finance Report)에서 탈중앙화 금융의 알고리즘 즉, 작동원리를 다음과 같이 3~4개 층으로 단순화했다. DeFi 세계가 동의하는 지는 분명치 않다.

출처= IOSCO(국제증권관리위원회)의 탈중앙화금융 보고서(2022년 3월, 4쪽). 우측의 번호는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추가했다.
출처= IOSCO(국제증권관리위원회)의 탈중앙화금융 보고서(2022년 3월, 4쪽). 우측의 번호는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추가했다.

그 분석에 따르면, 탈중앙화 금융의 가장 밑바닥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사실을 기록하는, 결제층(settlement layler)이 차지한다. 상층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최종적으로는 교환물로서 코인이 교환되고 그 기록이 생성된다. 순수한 기술의 세계다.

그 위에는 스마트계약 층(smart contract layer)이다. 쉽게 말하면, 상거래의 영역이다. 거래할 조건과 대상을 확정하고 계약이행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최상부에는 응용층(application layer)이 있다. 해당 플랫폼 운영에 관한 지배구조와 그 플랫폼의 신인도 유지를 위한 자산관리 등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탈중앙화 금융의 작동원리를 이렇게 해부해 놓고 보면, 순수 컴퓨터 기술이 작동하는 것은 최하단층 하나뿐이다.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기존의 법적, 경제적 원리를 수용하거나 타협해야 한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이런 사실에 입각해서 ‘스마트 계약’이라는 말이 허구라고 단언한다. 맨 밑바닥의 결제층은 알고리즘에 따라 코인을 생성하고 관리하는 데 그치므로 전혀 ‘스마트’하지 않고, 준비자산을 관리하는 상층부는 양측의 ‘계약’이라기보다는 한쪽의 ‘집행’이라는 이유다.

한 마디로 말해서 DeFi는 TradFi와 분리되지 않고 얽혀 있다. 그러므로 DeFi 시장에서의 교란이 기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저해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각국 금융당국이 DeFi에 관심을 갖고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논리적 결론이다. 탈중앙화 금융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금융당국들은 칼을 갈고 있어

실제로 루나와 테라 사태 이후 국제기구와 각국 금융감독 당국은 암호자산과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각국 감독당국의 차가운 시선이 지난 5월 20일 시작된 루나와 테라 폭락사태 이후에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 두 달 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각국 정책당국은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를 결의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수호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 등 일부 국가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암호자산을 통한 음성적 자금이동을 막기 위해서 바이넌스 등 세계 유수의 암호자산 거래소들의 협조가 필요했음에도 이들은 정부 당국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암호자산은 익명성을 토대로 거래되는 것이니만큼 러시아 제재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었다.

이것을 방치하면, 결국 테러자금이나 불법 송금, 탈세 등을 방치하는 셈이 된다. 이것은 어떤 나라도 용납할 수 없는,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그렇다면, 각국 정부는 앞으로 암호자산으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 먹는 것을 금지할 수 있다.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아서 암호자산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지만, 가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암호자산 통제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120년 전 인간이 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꿈을 갖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하늘에는 정부가 없다”는 것을 내세워 무정부주의를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 공군에게 비행기를 납품하면서 정부와 공존을 타협했다. 만일 라이트 형제가 정부를 배척하는데 주력했다면, 오늘날의 보잉사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국 정부와 손을 잡는 것을 거부한 암호자산 거래소들은 가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결론 : 뜨거운 불속에서 불순물이 가려진다

블록체인기술은 훌륭한 기술이다. 그것이 실생활에 접목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장의 금전적 이익과 연결 짓는 것은 다소 무리다. 전기자동차를 포함해서 전기의 이용가능성은 계속 높아지지만, 전기 값이 계속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블록체인기술을 기반으로 현재 비트코인, 스테이블코인, 대체불가능코인(NFT),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분산관리시스템(IPFS) 등 다양한 가능성이 시도되고 있다. 장차 어떤 것이 자리를 잡게 될지는 알기 어렵다. 20세기 초 비행기와 비행선, 기구 등 다양한 날 것들이 시도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이 그런 단계다. 스테이블코인의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어서 규제가 마련되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절망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다만, 블록체인기술에 기반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자리를 잡게 되더라도 생각해 볼 문제는 있다. 전기와 철도가 너무 중요하다보니 상당수 국가에서는 그것들을 국가가 관리하고, 요금도 통제된다. 공공재가 갖는 특징이다. 암호자산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암호자산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이 된다. 블록체인기술이 갖고 있는 무궁한 가능성의 숨겨진 측면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글쓴이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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