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을 하려면 이름이 있어야 한다
[차현진의 삼라만想] 청와대 여민관에 얽힌 이야기 차기 대통령, 청와대 건물 이름도 새롭게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청와대 건물은 창씨개명으로 악명 높은 미나미 지로(南次郎) 조선총독이 지었다(그 전에는 조선총독 관저가 서울의 용산 미8군 기지 자리에 있었다). 해방을 맞자 미 군정사령관 존 하지 중장이 그 건물을 이용했다. 그때까지는 그 건물의 이름이 그냥 ‘관저(官邸)’였다. 식당의 이름을 그냥 ‘식당’이라고 붙이는 것처럼 싱거웠다. 이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청와대와 내부 건물 이름의 유래
1948년 그 건물을 물려받은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으로 ‘경무대(景武臺)’라는 고유명사를 붙였다. 경복궁 북쪽 신무문(神武門)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부정부패와 독재를 상징하는 오명이 되었다. 4.19혁명 이후 대통령이 된 윤보선은 그해 겨울 자기가 쓰는 건물을 ‘청와대(靑瓦臺)’라고 개명했다. 이층 양옥집 지붕에 푸른색 기와가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그 건물은 1990년 해체되었다). 이승만은 위치, 윤보선은 모양에 착안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내에 경호실과 비서실 건물이 들어섰다. 그것을 구관, 신관이라고 불렀다. 건물이 또 늘어나니까 이번에는 영빈관, (서)별관이라고 불렀다.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가장 오래 머물렀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건물의 작명에 무관심했다.
청와대 영내에 있는 건물 중에서 작명이 돋보이는 것은 ‘춘추관’(1990년)이다. 그렇다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작명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자기가 자는 건물은 관저, 일하는 건물은 본관이라고 한 것을 보면 언어감각이 뛰어난 것 같지는 않다. 춘추관은, 청와대 대변인이나 공보비서관이 출입기자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붙였다고 보인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일 잘하는 정부’를 천명했다. 청와대 조직도 상당히 늘렸다. 공간이 부족해졌다. 아울러 대통령 자신이 비서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것을 원했다. 본관 큰 건물에 덩그러니 고립되지 않겠다는 뜻이며, 미국의 백악관을 의식한 결과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득불 새 건물이 필요했다. 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공간인데도 6개월 만에 뚝딱뚝딱 지어져 2004년 12월 완공될 예정이었다.
그때 청와대 직원들은 토요일에 출근해서 항상 토론을 했다. 그것을 ‘토마토(토요일마다 토론)’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필자가 의견을 냈다. 언제까지 청와대 건물들을 본관, 관저, 구관, 신관, 별관이라는 일반명사를 쓸 것인가? 외국처럼 각 건물의 고유명칭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짓자고 제안했다. 2004년 8월경이었다. 직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총무비서관실에서는 곧장 이름 공모에 돌입했다. 새로 지어질 건물의 이름을 ‘여민관’이라고 붙이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참여정부니까. 기존 건물들이 흥밋거리였다.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필자는 애국관(경호실), 애민관(비서실)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각 건물은 이름이 달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건물 이름을 그냥 여민 1관, 2관, 3관으로 결정했다. 참으로 무성의했다. 제1, 제2, 제3 한강교 같은 1970년대식 이름과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대통령의 공간인 본관과 관저는 작명을 포기했다. 불감호칭(不堪呼稱). ‘살아 있는 왕은 이름이 없다’는 봉건시대적 사고였다. 필자는 실망했다.

곳곳에 멋진 이름 붙이는 문화대통령을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필자가 복귀하여 근무하는 한국은행의 김중수 총재가 직원들의 교육을 위해 최신식 건물을 지었다. 그 건물의 백미는 1층의 홀이다. 외국 중앙은행 직원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하고 노래하는 것까지 감안한, 일종의 파티장이다. 총재는 그 공간의 이름을 직원들에게 공모했다(생각해 보면 상당히 감각이 있는 총재였다).
그때 필자는 ‘풍아송(風雅頌)’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시경에 나오는 말인데, 세상의 모든 노래(風-유행가, 雅-클래식, 頌-진혼곡)라는 뜻이다. ‘Sing A Song’과 발음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낙찰된 이름은 ‘커뮤니케이션 홀’이었다. 기능과 이름을 혼동했다. 아끼는 반려견의 집 이름을 기껏 고민해서 ‘개집’이라고 짓는 셈이었다. 더 웃긴 것은, 홀의 이름은 지었으면서 정작 그 건물의 이름은 짓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의 건물들은 강의동, 숙소동, 별관으로 구분된다. 참으로 멋없다.
시인 김춘수는 말한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고. 이름 부르는 데 인색한 사람은, 배려하는 데 인색한 사람이다. 부디 새 대통령은 본인이 사용하는 ‘본관’과 ‘관저’부터 멋진 이름으로 대체하시기를. 그게 문화 대통령의 첫 걸음 아닐까?
이름값을 하려면, 이름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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