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영국서 안 태어났다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홍차의 대명사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이야기

여러가지 브랜드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홍차.
여러가지 브랜드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홍차.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카페라떼, 카페모카, 카푸치노, 카라멜 마키아또. 커피숍이나 까페의 대표 메뉴들이다. 이 메뉴들의 베이스가 되는 커피는 여러 국가나 산지에서 생산된 원두를 블렌딩해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커피와 홍차는 ‘블렌딩’된 것

핸드 드립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는 메뉴 구성이 조금 다르다. 케냐, 자메이카, 과테말라, 콜롬비아 혹은 하와이안 코나, 과테말라 안티과 등. 이들은 원두를 생산하는 국가나, 그 생산국가의 특별한 생산지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들이다. 이들을 싱글 오리진(Single-Origin) 커피라고 한다.

싱글 오리진 커피 원두들. 사진=구글
싱글 오리진 커피 원두들. 사진=구글

싱글 오리진 커피는 대체로 맛과 향의 특징이 뚜렷한 편이다. 이런 특징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경우 커피애호가들에게는 강한 매력이 된다. 하지만 단점이 되는 경우도 많다. 여러 생산지에서 생산된 싱글 오리진 원두의 블렌딩을 통해 개별 싱글 오리진 원두의 단점을 극복하고 맛과 향을 더 향상 시킨 것이 블렌딩 커피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음용되는 대부분의 커피는 블렌딩된 것이다. 맛과 향에 균형이 잘 잡혔을 뿐만 아니라 블렌딩을 통해 차별화되고 경쟁력 있는 맛과 향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렌딩을 위해 준비된 다양한 홍차들.
블렌딩을 위해 준비된 다양한 홍차들.

홍차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홍차음용국에서 소비되는 홍차의 대부분은 블렌딩된 것이다.

블렌딩 홍차는 인도, 스리랑카, 케냐 등 여러 국가 혹은 아삼, 다즐링, 딤불라 같은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된 홍차를 블렌딩해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 대부분의 홍차 음용자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홍차의 생산국가나 산지에 별 관심이 없다. 우리가 아메리카노나 카라멜 마키아또를 마시면서 이 커피가 어느 국가나 산지에서 생산된 것인지에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블렌딩 홍차 이름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진 홍차이름이기도 하여 마치 홍차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홍차에 별 관심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할 정도다. 어쩌면 홍차이름에 ‘잉글리시(English)’가 들어 있어 영국이 홍차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는데 일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는 홍차이름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영국에서 아침식사 때 차를 마시는 관습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으로 ‘브렉퍼스트 티(Breakfast Tea)’라는 용어는 적어도 18세기 말 이후에는 사용되어 왔다. 반면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라는 명칭의 기원에 관해서는 몇 가지 주장이 있다.

1843년 뉴욕의 차 상인 리처드 데이비스(Richard Davies)가 몇 개 산지 홍차를 블랜딩해서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라고 이름 붙여 판매한 것이 최초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뿐만 아니라 1892년 스코틀랜드의 차 상인 로버트 드라이스데일(Robert Drysdale)이 아삼, 실론, 기문홍차를 블랜딩해서 만든 것이 최초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 남자 양복 브랜드 중에 유명한 것으로 ‘버킹검’, ‘캠브리지’ 같은 것이 있다. 영국신사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 멋진 양복을 입는 나라는 영국이고 그런 영국 사람이 입을 정도로 좋은 양복이라는 이미지를 주기위해 영국을 상징하는 이름을 양복 브랜드 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리처드 데이비스는 미국에서 미국사람을 대상으로 홍차를 판매하면서 홍차의 나라 영국에서 영국 사람들이 아침 식사 때 마실 정도로 좋은 차라는 이미지를 주기위해 상품명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고 정했을 것이다. 사실 영국인이 영국인들을 위해 만들었다면 굳이 ‘잉글리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영국을 대표하는 홍차회사인 포트넘앤메이슨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는 이름 대신 ‘브렉퍼스트 블렌드(Breakfast Blend)’라는 상품명을 사용한다.

리처드 데이비스의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홍차는 널리 알려졌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 이외 홍차음용국가에서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는 상품명이 유행했고, 홍차를 거의 마시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조차도 그나마 익숙한 홍차이름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영국에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빅토리아 여왕 통치 말 무렵인 1890년대부터다. 이 점에서 보면 1892년 스코틀랜드 차 상인 로버트 드라이스데일이 처음 만들었다는 주장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긴 하다.

포트넘앤메이슨의 브렉퍼스트 블렌드.
포트넘앤메이슨의 브렉퍼스트 블렌드.

맛과 향이 다른 수많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존재

대개는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영국인들(그리고 전 세계 대부분의 홍차음용자들)의 취향에 맞게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일반적으로 맛이 강한 홍차에 속한다. 따라서 강한 홍차의 대명사인 아삼과 케냐가 주 베이스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 세계 수많은 차 회사는 대부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차가 있고 이들 각각의 블렌딩은 다 다르고 맛과 향도 다 다르다. 우리나라 수많은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 맛이 조금씩 다르듯이.

홍차애호가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선택하면 된다.

글쓴이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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