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의 성공 비결, V자형으로 날았다?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기러기 비행과 유사한 재벌 성장사

[하영균 상도록 저자/에너지 11 기술 대표] 기러기가 날아갈 때면 항상 V자 모형을 그리고 간다. 그러면 제일 앞에 있는 리더가 가장 피곤하지만 무리를 이끌고 가고 그 옆으로 한 계단씩 낮추어 가면서 다른 기러기가 날아가는 식이다. 이 모양이 V자 모양이 되기 때문에 ‘V 비행’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리더를 제외한 모든 새들이 바람의 저항을 덜 받게 되고 피로도도 떨어진다.

리더가 어느 정도 피곤해지면 힘을 비축한 다른 새가 리더로 앞서가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새들은 그 덕을 보게 된다. 이런 순서로 돌아가면서 역할을 하게 되면 수만 킬로의 장거리 비행을 해도 버틸 수가 있다.

피로해진 리더 바꾸며 쉬지않고 장거리 비행

새의 V비행 전략의 핵심은 저항이나 피로도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오래 지속적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 때로는 서로 역할을 바꾸면서 무리를 끌고 갈 수도 있다. 분명히 그 무리 속에는 그 무리를 리딩하는 새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힘을 비축하고 효과적으로 저항이나 피로도를 분산하기 위해서 무리를 일시적으로 끌고 가는 역할을 바꾸는 것이다.

정지된 장면으로만 그 무리의 리더는 V 비행을 하는 제일 선두에 선 새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일시적이다. 멀리 장거리 비행에서는 제일 앞서는 새는 수시로 바뀐다. 가장 효과적인 비행을 하기 위해서 서로가 역할을 바꾸면서 날아가는 것이다.

경영 전략이나 산업 전략에서도 이런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 경제에서 60년대 산업, 70년대 산업, 80년대 이후 2020년 대까지 10년 주기로 보면 핵심 성장 산업이 바뀌어 왔다.

한국 경제 개발과정에서 핵심 산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경제가 최정상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고 산업 별로 보면 산업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할 수 없었던 측면도 있다.

V형 비행의 관점으로 보면 먼 장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리딩을 할 수 있는 새가 나타난다면 리더를 바꿀 필요가 없다. 미국의 예로 보면 미국은 금융 산업, 국방 산업, 소프트웨어 산업, 영화산업, 바이오 산업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오래전에 확보를 했고 이 위치를 한번도 빼긴 적이 없다. 그러니 산업의 축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주력사업을 수시로 교체한 한국 재벌들

하지만 한국 경제에서는 그런 2000년대까지 세계적인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한 사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계속 주력사업을 바꾸어 온 것이다. 한국이 정말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산업을 선정하고 그것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기란 쉽지 않다. 그런 산업을 선정하고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산업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즉 미국이 세계 시장을 리딩하는 산업은 큰 규모의 내수 시장이 받쳐 주고 있고 확대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한국은 인구 수도 적고 경제 규모도 작기 때문에 특정 산업을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약하다.

둘째로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최종 선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핵심 산업은 산업의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산업들이다. 이미 이 산업의 경제적 활동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산업으로 변화를 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들 중에 그런 산업으로 진화를 한 산업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니 끊임없이 진화를 해야만 가능한 단계인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해 보면 한국의 산업은 끊임없이 V형 비행을 하면서 진화를 할 수 밖에 없는 경제 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산업의 변화가 심했고 성장 하는 산업과 몰락하는 산업이 극명하게 갈린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신발과 섬유 산업이 70년대, 80년대를 이끌고 왔지만 결국은 몰락하고 이미 생산기지를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을 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의 리딩 산업의 변화는 진화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문제는 한국이 V형 경제발전을 해 나갈 때 어떤 산업이 리딩산업으로 선정되는가에 따라서 한국 경제의 운명은 극명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래 선도 산업을 선정하고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그만큼 한국 경제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하다.

V비행 현상은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 전략에서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실제 한국 경제는 재벌들에 의해서 운영되어 왔다. 재벌의 경영 전략의 핵심은 V형 비행 전략을 실행했다고 볼 수 있다.

재벌의 성장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재벌은 모기업을 중심으로 편재를 한다. 그리고 그 모기업이 어느 정도 한계에 달하면 편재되어 있던 또 다른 기업이 나서서 재벌을 주도하는 것이다. 삼성의 경우는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서대로 성장을 했다.

삼성은 시기마다 해당 기업이 리더 역할을 하고 산업 환경에 맞추어 치고 빠지는 그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 시기에 가장 효과적인 산업에 집중하고 그에 맞는 기업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삼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역사가 오래되고 나름 시장을 주도해온 모든 재벌들이 그렇게 해왔다.

그런 전략 편재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V형 비행 전략에 맞게 기업을 성장시키지 못한 재벌들은 도태되었다. 재벌이라고 모두가 살아 남는 것은 아니다. 선도 기업이 시장 경쟁에서 지면 바로 몰락하는 것이 재벌일 수 밖에 없었다.

생존 위한 ‘V형 비행전략’...다시 시험대에

흔히 한국의 대기업은 한 사람의 오너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오너가 없는 집단적 경영 전략 결정을 하는 시스템은 오히려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 변화에 대응을 못하는 것이다.

실제 대표적인 실폐 사례는 일본에 더 있다. 일본의 경영 시스템은 집단 의사 결정 방식이다. 일본의 오래된 대기업은 오너가 없다. 창업자의 이름으로 가족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오너 가문이 직접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하거나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니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한국 오너들은 선도 기업을 전략적 선택을 하고 그 기업의 경영 성과를 책임진다. 그 선도 기업의 부실한 경영으로 재벌이 해체되고 기업이 몰락할 수도 있는 반면, 그 선도 기업의 성장에 의해서 그 재벌의 재계 순위가 올라가고 국제 경쟁력이 높아지기 도 한다. 이 모든 선택을 오너가 책임을 지는 구조로 되어 있기에 한국의 재벌들이 한국 경제를 주도했던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재벌들이 경제를 주도하고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끌고 온 것은 한국 경제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그 특성에 맞게 진화를 해온 결과라 할 것이다. 어쩌면 한국 경제에서 재벌들이 등장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룩할 수 없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재벌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과 정경유착 등 한국 사회의 병폐가 재벌로부터 파생된 것도 맞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경제의 핵심으로 역할을 해온 것도 재벌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산업의 발전에서, 재벌의 경영전략의 관점에서 V형 비행 전략이 효과적으로 적용됐다. 앞으로도 성과가 높았던 경영전략은 시장 환경에 맞게 수정 보완을 하면서 발전시켜야 하고, 이로 인해서 발생한 부작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경제는 이제 주력 산업이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에 따라 재벌들의 선도 기업도 바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벌의 순위도 바뀌어서 몰락하는 재벌이 등장하고 다시 떠오르는 재벌도 출현할 것이다. 이것도 경제가 진화를 하면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한국의 재벌의 등장과 발전을 V형 비행 전략으로 파악을 한다면 그에 대한 향후 발전 전략도 세울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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