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삶의 일부분 되어버린 영화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강박증자의 사랑 ‘베스트 오퍼’

주세페 페르나토레 감독이 만든 영화 '베스트 오퍼'의 한 장면.
주세페 페르나토레 감독이 만든 영화 '베스트 오퍼'의 한 장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어릴 때부터 나만의 서재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는 욕망으로 발전했다. 가지런히 줄 세워진 책들을 둘러보면서, 그 속에 담긴 영혼들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환상은 나를 설레게 했다.

빽빽하게 들어찬 책 등허리에 새겨진 책 제목들이 뭔가 아우성을 내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책을 사서 모으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해서 늘 책들에게 빚진 느낌이었다.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책장을 바라보노라면 뿌듯함과 압박감이 교차했다. 서재에서 넋을 잃고 책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릴 적 흑백 TV 시절 ‘명화극장’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봐왔던 수많은 영화의 장면들이 상상력과 오버랩 되면서 확장되는 세계관은 풍선처럼 마냥 부풀어 올랐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강박증’ 영화처럼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주세페 페르나토레 감독이 2013년에 만든 <베스트 오퍼>라는 영화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미술품 경매사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쉬 분)은 까칠하기 그지없는 독신 남성인데 여성이라고는 곁에 두려고 하지도 않는 완벽주의자이자 그야말로 결벽증자다.

물건을 만질 때는 늘 검정 장갑을 낀다. 그런 그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것은 그림 속의 여인들이다. 그는 진품임을 알면서도 모작이라고 판정해 가격을 낮춰 동업자를 시켜 사게 한 뒤, 자신이 수집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명작을 모은다. 공통점은 모두 여성의 초상화라는 점이다.

그는 거대한 금고 같은 비밀의 방에 여성이 그려진 명작들을 보관한다. 물론 자신에게만 허락된 공간이다. 물리적이면서도 심리적인 공간 속에 명작 속의 여인들을 가둬놓고 사랑을 나누는 과대망상 속에서 살아간다.

지금은 완벽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필자는 강박증세가 있었다. 오물에 관한 공포에서 비롯됐는데, 초등학생 때 가급적이면 학교에서 용변을 보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 화장실은 매우 불결했기 때문이다. 온종일 참고 집에 올 때쯤엔 오줌보가 거의 터질 지경이었고 빨리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는 집 앞에서 그대로 싸버리기까지 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화장실 갈 때 입는 옷을 따로 정해놓고 입는다거나, 밥 먹을 때 숟가락을 빤히 들여다보며 매의 눈으로 점검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필자에게는 그런 강박증이 있었다.

지금의 필자는 집 청소보다는 몸이 편한 쪽을 택하는 현실주의자가 되었다. 결혼한 지 10년쯤 지난 후부터 한동안 거의 주부 노릇을 하지 못했다. 집은 살림의 공간이 아니라 작업의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은 거실은 작업 공간으로 변모했다.

거실이 작업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집에 TV는 거실에 한 대뿐이어서다. 그래서 VCR, TV, 노트북이 필요한 작업을 하기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친구들을 데려와 거실에서 총싸움하며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터의 종군기자처럼 아랑곳없이 노트북을 붙들고 씨름해야 했으니, 거실은 곧 나의 작업실이자 노출된 전장터였다. 그리고 필자에게 있던 강박증은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마감 시간을 칼 같이 지켰으며 원문의 의미가 모호할 때는 지칠 때까지 물고 늘어졌다.

어쩌다 보니 영상번역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영상번역작가’란 ‘번역가’와 ‘작가’를 붙여놓은 합성어다. 필자는 주로 영화(때로는 다큐멘터리와 TV 드라마)를 번역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책을 번역하는 사람을 주로 번역가라고 부르지만 영상번역은 굳이 작가라는 칭호를 뒤에 붙여주었다. 영상번역은 글자 수의 제한과 의역을 피할 수 없는 특성상 어느 정도의 창작적 재능이 요구되기 때문에 작가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이다.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삶으로서의 영화’

처음에는 ‘작가’라는 칭호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실 작가라는 칭호는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글을 쓰고 공개하는 세상이 되어서 작가란 말이 무색할 지경에 이르렀다. 독문학을 전공했던 학창시절, 괴테와 쉴러, 노발리스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란 ‘범인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작금은 대중화된 평범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된 듯하다. 하지만 지금도 창작의 세계는 아무나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번역이 자막으로 깔린 DVD로 출시됐을 때, 뿌듯함과 흥분은 감출 수가 없었다. 기술의 발전은 영상번역 영역에서도 예외 없이 반영됐다. 처음에는 타임코드가 찍힌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영상을 보면서 번역작업을 했으나 매체는 곧 CD로 바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웹에 접속해 다운로드 받는 것으로 문명의 속도는 빠르게 바뀌었다. 시대의 변화를 영상 매체의 변화로 감지한 셈이다.

번역이라는 작업은 보람도 있지만 동시에 괴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영상번역의 경우 틀에 맞춰야 하고 상황에 관한 이해는 물론 문화와 정서까지도 아우르며 직역과 의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한편 책의 경우 원작자의 의도를 간파하며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오역이나 오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다. 특히 일이 몰리는 시즌이 되면 잠을 줄이면서 정신과 육체를 쥐어 짜낼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열정이 넘쳤고, 에너지가 소진될 정도는 아니라서 잠잘 시간이 부족해도 행복한 작업이었다.

그 덕분에 에너지는 고갈됐다가도 금방 다시 채울 수 있었다. 식구들이 잠자는 한밤중을 지나 어슴푸레한 하늘빛이 거실로 스며들어올 때, 고독이 밀려올 법도 있지만 고독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 캐릭터와 내가 일체되었을 때는 마냥 행복했다. 시즌 때, 시간에 쫓길 때는 잠을 줄여가며 시리즈물을 한 달 내내 번역하다 보면 주인공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영화 속 주인공이 마치 곁에 있는 듯, 마법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중독돼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십 년이 다 돼가던 어느 날, 이젠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쩍 그 세계로부터 빠져나왔다. 열정에 취해 힘든 기색도 없이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행복해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번역 일을 그만둔 후에도 필자는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이론’ 공부를 했다. 번역도 나를 힘들게 했지만, 영화이론 공부도 만만치 않았다. 영화번역 일을 할 때는 영화랑 어울렁더울렁 놀았다면, 영화이론은 샅바 싸움하는 씨름선수처럼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TV도 화면 크기를 점점 키워가며 발전해 갔다. 거실에 비해 더 이상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 TV는 88인치라는 백화점의 거대한 신제품 앞에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프로젝터였다.

모니터 크기에 비례해 가격이 급상승하는 TV에 비하면 엄청나게 저렴하면서도 스크린의 크기는 물론 화질도 만족스러운 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프로젝터의 렌즈가 쏘아내는 빛이 영화관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에 몰입도가 더 좋았다. 엄마의 자궁과도 같은 깜깜한 공간에서 스크린에 압도되는 느낌은 늘 좋다. 영화를 보는 순간, 그곳은 나만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아무리 봐도 고갈되는 법이 없다.

늘 새로운 영화들이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한번 본 영화라고 안심할 수 없다. 기억은 늘 지워지기도, 왜곡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영화는 운명처럼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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