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삶에서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 순간에서’] ‘잘못된 선택’은 없다, 대신... ‘어쩔수 없는 선택’이 있을 뿐 영화 ‘칠드런 액트(아동법)’에서

영화 '칠드런 액트' 포스터.
영화 '칠드런 액트' 포스터.

<선택과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스포일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히니 원치 않는 분은 영화를 먼저 보고 읽기를 권합니다.>

샴쌍둥이중 한쪽을 포기해야하나

살면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는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순간도 있다. 그래서 과거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기도 한다. 짜장면과 짬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힘들어서 짬짜면이 나왔을 정도로 선택이란 쉽지 않다. 선택하는 순간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때 그 순간에 자신이 가장 유리하게 생각되는 지점을 선택하게 된다.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것은 상황과 심리상태가 바뀌었기 때문일 뿐, 그때 그 순간에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장단점이 함께 존재할 때다. 그럴 경우에 선택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 혹은 어떤 관점을 중시할 것인가의 차이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 애덤(핀 화이트헤드 분)은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칠드런 액트>에서 가장 핵심적이면서, 잊히지 않는 대사는 “It’s my choice”다. <칠드런 액트>는 2019년에 개봉한 리처드 에어 감독의 영국 영화로 칠드런 액트는 ‘아동법’이라는 뜻이다. <칠드런 액트>에서 판사역을 맡은 엠마 톰슨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힘든 선택과 결정이란 주제에 아름다움과 슬픔이 미묘하게 얽힌 분위기가 연출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엠마 톰슨은 50대 후반의 존경 받는 판사 피오나 메이 역을 맡아 열연한다. 미성년자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사건들이 쌓여 있어서 피오나의 개인생활은 거의 없다. 일하느라 임신을 미루다 보니 시기를 놓치게 돼 아이도 없고 남편과 갈등도 극에 달했다. 문제는 본인은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판사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미성년자들이 자신이 걱정해야 할 자식들인 셈이다.

영화는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샴쌍둥이 분리를 둘러싼 소송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대로 두면 둘 다 죽기 때문에 건강한 쪽을 살리고 한쪽은 죽이는 수술을 허락해달라는 사건이다. 부모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생명을 거두는 것은 하느님만이 하실 일이라면서 한 생명을 인위적으로 죽이는 것에 반대한다.

피오나 판사가 맡은 사건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비난을 살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결정을 내린 후에도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샴쌍둥이 사건에서도 둘 다 죽이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분리수술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동강난 샴쌍둥이 악몽을 꾸기도 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살인자 판사”라며 시위를 벌인다.

세상에는 온갖 힘든 상황 속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아이들이 많다. 힘든 상황에 노출된 아동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선택과 결정까지 해야 하는 피오나 판사의 고뇌에 찬 독백이 이언 맥큐언의 원작 소설에 나온다. “신체 각부가 적절한 형태로 제자리에 달려 세상에 나온다는 것, 잔인하지 않은 깊은 애정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다는 것, 혹은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인 우연으로 전쟁이나 빈곤을 모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연한 행운이었다. 그리하여 선한 사람이 되기가 훨씬 쉽다는 것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정이 불가능한 난처한 상황에서 피오나 판사가 최우선으로 삼는 잣대는 바로 ‘아동의 복지’다. 어떤 결정이 그 아이의 복지에 도움이 될 것인지가 판단의 1순위다. 미성년자의 복지를 위해 최선까지는 못되더라도 차선의 선택을 위해, 혹은 최악을 피해서 차악을 위해, 모든 법리적 근거를 검토하고, 전문가의 의견에 성심껏 귀를 기울이던 피오나 판사는 특별한 남자아이를 만나게 되면서 예기치 않게 엄청난 심리적 격동을 겪게 된다.

종교 이유로 수혈 거부...18세 소년의 선택은

애덤이라는 18세의 소년이다. 정확히 말하면 18세가 되기까지 3개월을 남겨두고 있다. 애덤은 백혈병 환자라서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부모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고 본인도 그렇기 때문에 수혈을 거부한다. 18세가 되면 성년이 되기 때문에, 본인에게 결정권이 넘어가지만 3개월이 모자라 아동법 적용을 받는 상황이다. 부모는 종교 덕분에 혼란했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종교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 수혈을 거부하는 이유는 ‘피가 인간의 근본이고, 영혼이며, 생명 그 자체라서, 다른 인간의 피를 섞는 것은 오염이자 타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오나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병원으로 직접 애덤을 만나러 가겠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피오나와의 만남은 애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피오나의 판결은 재능이 뛰어난 한 소년의 목숨을 살렸지만, 피오나를 계속 갈등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세상이 허물어지면서 애덤은 이제는 피오나에게서 새로운 삶을 찾고 싶어했고 그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애덤에게 냉정하게 대응했고 그 결과, 애덤에게 또 다른 중대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 사이에 3개월이 지나, 이제는 성년이기 때문에 피오나가 그의 선택을 막을 방법이 없다. 애덤은 신념이 흔들리는 혼란한 세상을 거부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내 선택이에요”라는 한 마디다.

영화 '칠드런 액트'의 한 장면.
영화 ‘칠드런 액트’의 한 장면.

<칠드런 액트>는 한 소년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면서 두 가지 다른 선택 사이에 있는 미묘한 심리적 공간을 묘사하는 영화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복잡한 세상에 몸을 던지는 일이다. 신념을 흔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애매한 공간들이 너무나 많다. 한쪽에서는 칭송받을 일이 다른 쪽에서는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백혈병이 재발하고 수혈을 거부한 애덤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피오나가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부르는 노래, ‘샐리 가든(Sally Gardens)’은 누군가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알면서도 결코 말릴 수 없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선택이지만 숭고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남이 아닌 나의 선택이라는 말, 내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가진 그 말은 그에게 혼란한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안정감을 주었을까.

선택을 바꿨다면 우리 인생은 달라졌을까

세상이 실패라는 단어로 규정지을지언정, 그것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였음을 <칠드런 액트>는 보여준다. 그것은 이언 맥큐언의 다른 소설들과 영화의 주제이면서 당신의 삶을 닮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거의 어느 중요한 순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나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삶을 이끌어가는 나의 신념에 뿌리를 둔 무의식은 그 뒤로도 지금의 나와 같은 상태로 유도할 무수한 선택을 했을 테니까. 그러니 잘못된 선택이란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말만 존재할 뿐이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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