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 영화에 끌릴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 가운데서’] 엘리멘탈, 픽사 애니메이션중 흥행 1위 “너의 꿈이 나의 꿈” 부모의 대사 뭉클 ‘자기 정체성 찾는 과정’에 감정이입도

사진=영화 엘리멘탈의 한 장면.
사진=영화 엘리멘탈의 한 장면.

흥행 1위의 마력은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최근까지도 영화관이 텅텅 비다시피 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탈>은 최근까지 460만 관객 수를 돌파하며 흥행 1위를 달렸고 주말에는 젊은 연인들이 좌석을 꽉 채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픽사’ 제작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킬만한 소재와 주제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왔다.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란 실사영화에서 구현해내기 힘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장점을 활용해 픽사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미지화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픽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중 <코코>는 죽은 이들의 세계를 보여줬고,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들을 인격화했으며, <소울>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세계를 보여줬다. 이번에 개봉한 <엘리멘탈>은 세상을 구성하는 네 개의 원소인 물, 불, 공기, 흙을 인격화하고 있다.

영화에서 시각적 경험이 불가능하고, 구체화하기 힘든 것들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제작자들의 상상력이 관객의 공감으로 이어지면 성공할 수 있다. 추상적인 대상은 의인화됐을 때 이해하기 더 쉬워진다. <소울>에서 구현된 영혼의 세계에서는 ‘선(線)’으로만 이뤄진 인격체들이 등장한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영혼의 세계는 ‘우주의 모든 양자화된 장의 총체’를 뜻하는데, 인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선으로 된 인격체 형태를 만들어 표현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픽사가 만들면 다르다?

<인사이드 아웃>에 나온 다섯 가지 감정인 기쁨, 슬픔, 분노, 짜증, 두려움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기쁨이, 슬픔이 라는 이름을 달고서 인격화됐듯이, <엘리멘탈>의 네 가지 원소들인 물, 불, 공기, 흙도 원소의 특성에 맞게 인격화됐다. 물 인간은 조금만 감동을 받아도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타인들에게 다정한 데 반해, 불 인간은 평상시에는 주황색 불꽃 모양을 하고 있다가 화가 나면 파란색 불꽃으로 바뀌며 폭발해 주변을 태워버린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서로 다른 감정들이 작용하면서 한 인격체의 성격을 구성하듯이, <엘리멘탈>에서는 네 가지 원소가 물리적인 세상을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기 때문에 결코 공존할 수 없을 거라는 상식을 깨고, 물 인간과 불 인간이 같은 공간에서 어울리며 사랑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주제다.

불 인간인 앰버는 불의 특성답게 다혈질이고 분노를 잘 통제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 물 인간인 웨이드는 마음이 약하고 감동을 잘한다. 두 사람이 상대방의 특성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모습도 영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앰버는 모래를 녹여 예쁜 유리공을 만들어 웨이드에게 선물하고 웨이드의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도 깨진 유리잔을 녹여서 멋진 물병을 만들어낸다. 반면 웨이드는 물을 가로지르면서 무지개를 만들어내며 자신이 가진 특성을 뽐낸다.

물 인간들이 앉아 있는 전철 통로를 불 인간인 앰버가 물이 몸에 닿을까 봐 조심스럽게 지나간다거나, 언제라도 쏟아질 수 있는 물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지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상극인 물과 불이 공존하는 방식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어서 간간이 관객의 웃음을 터져 나오게 한다. 불 인간들은 물과 섞이지 않기 위해 자신들만의 타운에서 살고 있지만 폐쇄된 수문이 뚫리면서 물이 흘러드는 바람에 위기에 처한다. 폭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엘리멘탈 시티로 오게 된 앰버 가족에게 물은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물을 탄다’라는 말도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앰버의 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불요리에 물을 타서 희석해 먹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한다. 타 문화와 교류로 자신의 정체성이 흐려진다는 비유다. 앰버의 할아버지가 조국을 떠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를 거부했던 이유도 다른 나라로 이주하면 불의 정체성이 흐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인종, 타문화와 섞이면 정체성이 흐려진다는 편견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네 자신을 찾아라’는 메시지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누구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는 서로가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같은 민족끼리 모여서 타운을 이루고 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며 마치 섬에 있는 듯 사는 사람들도 있다. <엘리멘탈>을 보면서 자연스레 그런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는 ‘네 자신을 찾아라’인데 이 점은 <소울>과 비슷하다. <소울>에서는 자신이 태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영혼이 등장하고 결국 자신의 꿈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주제이고 수많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서사화되어왔는데도 여전히 관객은 이런 영화에 감동한다. 자신을 찾는 것,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타인들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과 같을 수 없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데서 나온다. 사회적인 평가는 내게 성취감과 보람을 줄 수는 있겠지만 꼭 진정한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 자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 즉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어왔던 모습은 정말로 내가 원했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국에서 왜 흥행성공할까

엘리멘탈은 그런 주제를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북미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냈다고 하는데, 엘리멘탈은 현재 한국에서 개봉한 픽사 영화들 중 흥행순위 1위를 기록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앰버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배웅을 받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난 게 늘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나는 딸을 흔쾌히 보내주면서 딸의 마지막 인사에도 최고의 예를 갖춰 응답한다. “너의 꿈이 나의 꿈”이라는 말은 부모가 자식에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너를 위해 나의 욕망을 내려놓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꿈이 없는 경우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재단한 대로만 커온 아이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다. 물질적인 조건이 잘 갖춰진 상태에서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아온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뭔가 이루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 욕망은 결여가 있는 부분을 채우려는 데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앰버가 웨이드를 만난 후, 현재 자신에게 비어있는 틈을 발견하고 꿈으로 이어지는 일이 벌어졌듯이,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우연하지 않게 찾아오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이런 긍정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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