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도 삶의 소중한 일부분이다”

[이화정의 ‘영화의 한가운데에서’] 섭식장애 가진 딸 보는 엄마의 안타까움 어린 시절 아이 돌보지 못한데 대한 자책 “병 나은 후에 삶이 시작되는 게 아냐, 병을 앓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

다큐 독립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스틸 컷. 엄마 박상옥(왼쪽)과 딸 채영이 외할머니 제사상에 술을 올리고 있다.
다큐 독립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스틸 컷. 엄마 박상옥(왼쪽)과 딸 채영이 외할머니 제사상에 술을 올리고 있다.

섭식장애 앓는 딸과 엄마

다큐 독립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엄마의 인터뷰 첫마디부터 인상적이다. “엄마인 것 빼고는 지금 전 잘 지내요.” 엄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2022년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였고, 2023년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인디스페이스 영화관에서 개최됐던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의 개막작으로 상영된 김보람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 영화다. 김보람 감독은 전작 <피의 연대기>에서도 여성들이 겪어내야 하는 생리를 주제로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도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다.

이 다큐의 두 주인공인 박상옥과 채영은 모녀 관계다. 그리고 채영은 십 년 넘게 ‘섭식장애*’를 앓았다. (섭식장애: 과도한 식이 요법의 부작용 또는 여러 가지 생리적ㆍ정신적 원인으로 인하여 비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증상. 거식증과 폭식증이 있다.-편집자주) 딸의 발병 시기는 공교롭게도 엄마가 삶의 보람을 느끼기 시작할 때였다. 엄마가 정신적인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할 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 아이에게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것을 안 뒤, 엄마는 깊은 혼란에 빠진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아이가 저렇게 됐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엄마인 상옥에게는 상옥의 이야기가 있고 채영에게는 채영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둘이 부딪히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발생한다. 상옥의 어머니이자 채영의 외할머니 역시 섭식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이 잠깐 언급된다. 이 세 명의 모녀 관계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필요할 때 도와주지 못한 엄마

상옥이 딸의 섭식장애 원인에 대해 항상 생각했듯이,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문제를 추적하는 심정이 된다. 상옥이 젊음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쳤지만 이념이 무너지면서 정신적인 공백이 찾아와 방황했던 시절, 일하느라 아이를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는 고백, 대안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취직하면서 사회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도우며 삶의 가치를 찾았지만 정작 자신 아이의 심리적 공백을 메워주지 못했던 시간이 인터뷰를 통해 언급된다.

온갖 상념에 시달리던 상옥은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그냥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아이의 증상이 사라질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딸의 증상은 분노와 용서의 문제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이 곧 밝혀진다. 엄마의 사과가 상황을 전혀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 사람을 또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여성들에게 발병율 높은 섭식장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왜 하필이면 섭식장애로 문제가 표출됐을까. 남성의 경우에도 섭식장애가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섭식장애의 발병 비율은 여성이 훨씬 높다. 그리고 실제 섭식장애 환자들을 인터뷰했더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연관짓는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를 단순화시킬 우려가 있다. 원인이 같다고 해서 같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듯이, 같은 결과라고 해도 원인은 각기 다를 수가 있다.

다만 남성과는 달리 여성의 몸과 섭식장애의 연관성이 더 강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회는 남성보다는 여성의 몸에 더 많은 억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억압이 시대에 따라 히스테리로, 혹은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 다큐에서는 섭식장애로 나타난 사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증상을 개인적인 문제로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게 사회적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다큐에는 결말이 없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모든 게 아직도 진행형이다. 다큐를 찍고 나서 혼란스러웠던 삶의 일부분이 정리될 거라 기대했던 상옥에게도 그 점은 실망을 안겨줬지만 이 영화는 삶의 과정을 보여줄 뿐이며, 중요한 것은 결론짓기나, 사건 해결이 아니라는 관점을 찾아낸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인 두 사람이 그런 삶의 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 사실이다.

“평행선도 좋지, 함께 가는 거니까”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엄마와 딸이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타협점을 찾기를 기대하는 대화라고 할 수는 없다. 대화는 계속 어긋나기 때문이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상옥이 딸에게 “그러니까 우리는 영원한 평행선이구나”라고 말하자, 채영은 새로운 답을 내놓는다. “평행선도 좋지, 함께 가는 거니까”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선이 아니라, 늘 옆에 함께 있는 선일 수 있다는 대사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평행선이란 각자가 살아 내야 할 삶의 독립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녀니까 서로의 삶이 연결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둘의 삶은 개별적임을 주장하고 싶은 욕망을 채영은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 그것이 채영이 원하는 삶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싶은 욕망은 음식에 대한 통제로 나타난다. 폭식도 마찬가지다. 바깥세상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음식에 한해서는 마음껏 섭취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상옥은 자신의 어머니가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던 것도 자신의 통제력에 대한 확인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실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르가 다큐지만, 다큐 역시 연출과 편집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는 못한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 관객도 실제와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인 상옥 씨도 영화를 본 후에 ‘이게 과연 나의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다큐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서 딸 채영(왼쪽)은 말한다. "평행선도 좋지. 함께 가는 거니까"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서 딸 채영(왼쪽)은 말한다. “평행선도 좋지. 함께 가는 거니까”

질병, 장애를 앓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 장애, 질병, 비정상이란 경계 짓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일단 거부감부터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한다면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문제가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한두 가지 장애를 갖게 된다.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함이 없이 완벽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습성이 있다.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치료를 위해 그 원인을 캐는 방향으로 간다. 그러나 그런 식의 이해가 당사자의 고통을 가중시키지 않는지, 이 다큐는 질문을 던진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 왼쪽에서 두번째가 엄마 박상옥, 세번째가 딸 채영. 오른쪽 끝이 김보람 감독. 사진=이화정
‘관객과의 대화’ 시간. 왼쪽에서 두번째가 엄마 박상옥, 세번째가 딸 채영. 오른쪽 끝이 김보람 감독. 사진=이화정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상옥 씨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병이 나은 후에야 비로소 삶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병을 앓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질병이나 장애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요인이 아니라 삶에 포함된 일부분이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사람의 일부분인 질병이나 장애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 전체이며 그런 시각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떤 삶이든 그 자체로 특별하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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