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힘든 인간관계에 대한 영화

[이화정의 영화의 한 순간에] 마틴 맥도나 감독작 ‘이니셰린의 밴시’ “넌 지루해”에 응수..”넌 다정하지 않아” 인간관계의 난해함 그대로 드러내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콜린 파렐이 맡은 주인공 파우릭(왼쪽)과 브랜든 글리슨이 역을 맡은 콜름.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콜린 파렐이 맡은 주인공 파우릭(왼쪽)과 브랜든 글리슨이 역을 맡은 콜름.

최근에 나온 영화들 중 가장 독특한 영화를 꼽으라면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를 선택하겠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인간에 대한 독특하고도 진지한 탐구는 전작 <쓰리 빌보드>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주인공인 파우릭 역을 맡은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콜린 파렐은 이 영화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콜린 파렐은 이전에 출연했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들, <킬링 디어>, <더 랍스터>에서도 우화적인 독특한 캐릭터를 맡아 불안정한 심리묘사를 뛰어나게 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시종일관 현재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영화다. 주인공들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독특하다. 아일랜드에 있는 실제 섬에서 촬영됐지만 이니셰린이란 가상의 섬 이름이며 밴시는 죽음을 알리는 요정을 뜻한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이 영화의 밑바닥에서는 죽음이 깔려 있고 영화에서도 죽음의 정령처럼 보이는 이웃의 노파가 수시로 등장한다. 노파는 음산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죽음의 세계로 초대하듯,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유튜브= 이니셰린의 밴시 예고편

“넌 너무 지루해”라며 절교선언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아일랜드 내전이 진행 중이던 시기다. 영국을 상대로 함께 싸우던 어제의 동지들이 자유국과 IRA,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면서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모습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가 감독의 의도임은 분명하지만, 이 영화가 중요한 의미를 띠는 이유는 다양한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다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회에서 권력관계, 권력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그리고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의 자유를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섬의 풍경을 뒤로 한 채, 미소를 머금고 천진하게 걸어 나오는 파우릭(콜린 파렐 분)의 모습에서는 앞으로 진행될 서사가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평화로운 섬에서 순박한 사람들의 삶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은 곧 배반당한다. 파우릭은 어제까지만 해도 매일 만나 함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던 절친 콜름(브랜든 글리슨 분)의 태도가 왠지 달라졌다고 느낀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않던 콜름은 결국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절교의 이유를 묻는 파우릭에게 “너는 너무 지루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는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한다. 지루하기 때문에 절교한다는 애매한 말을 파우릭은 물론 파우릭의 여동생인 시오반(케리 콘던 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한다.

권력자를 향한 다양한 시선들

이 작은 섬 세계에도 계층이 있고 권력자가 있다. 경찰관과 성당의 신부가 권력자다. 성당의 신부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 간섭하고 경찰관은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무시한다. 그는 파우릭을 무시하고, 자기 아들인 도미닉(배리 키오건 분)을 폭행하고 성추행한다. 아일랜드 본토에 사형집행참관인으로 간다고 하면서 사형당하는 쪽이 IRA인지 자유국인지 관심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사형집행이라는 볼거리와 수당, 그리고 점심 제공에만 관심이 있다. 그에게는 어떤 가치관도 없다. 이유 없이 자신의 법만 강요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아들인 도미닉은 마을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지만 아버지와는 달리, 오히려 가치관이 확실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지만 도미닉은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가식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영화에서 가장 난해한 캐릭터인 콜름은 세상의 권력과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자유와 질서가 있을 뿐이다. 그는 고해를 하다가 신부가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자, 욕을 하며 고해실 문을 박차고 나온다. 평상시에 잘 지내던 경찰관이 심한 행동을 하자, 참지 않고 주먹을 휘두른다. 그가 파우릭이 말을 걸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도 자신의 생각과 말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콜름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 후, 평상시에는 둘을 절친이라고 했던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은 원래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콜름은 예술가이고 파우릭은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가장 무시되고 바보 취급을 받는 사람은 도미닉이다. 파우릭은 도미닉과도 친하게 지냈지만 콜름에게 절교를 당한 후 자신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그의 믿음이 흔들린다. 파우릭은 자신도 타인들에게 도미닉과 같은 멍청이로 인식되어왔던 게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콜름의 절교선언은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던 그의 세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는데도 콜름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넌 다정하지 않아”

영화에서는 지루함과 다정함이라는 단어가 상반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지루해서 만나지 않겠다’는 콜름에게 파우릭은 ‘넌 다정하지 않다’는 말로 맞선다. 콜름에게 지루하다는 말은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는 말과 같다. 파우릭과 만나면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절교한 후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의미다. 콜름은 앞으로는 여생을 작곡하는 데 보내겠다고 말한다. 파우릭은 다정한 인간관계와 현재의 평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콜름은 사후에도 오랫동안 기억되는 예술작품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콜름은 가치 있는 외로움을 욕망하고 파우릭은 외로움이 두려워 콜름에게 집착하면서도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두 사람은 삶의 지향점이 다르다.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콜름의 부탁을 파우릭은 끝까지 거부한다. 손가락을 자른다는 위협도 소용없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콜름이 왜 굳이 자신의 중요한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절교에 집착하는지, 파우릭은 또 왜 그렇게까지 콜름과의 관계 유지에 집착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 영화가 난해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작곡가면서 연주자인 콜름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 일부를 하나씩 제거하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엄청난 파괴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만한 사람이 못 된다면, 친구와 술이나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느니 신체를 훼손하는 편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세계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 저편의 본토에서는 총성이 들려온다. 내전 중인 본토가 죽음의 땅인지, 이 섬이 죽음의 땅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고인 물처럼 변화가 없는, 아니 변할 계기가 없는 섬은 죽은 상태와도 같다. 상점 주인이 그렇듯, 지루한 생활 속에서 새로운 소식을 갈망하지만, 이니셰린 섬에서 새로운 소식이란 죽음과 관련된 사건뿐이다.

모순적인 말 같지만, 도미닉은 육체의 죽음으로 죽음의 섬을 벗어났고, 시오반은 내전 중인 본토에서 온 일자리 제안을 받아들여 탈출했다. 시오반은 원래는 이니셰린을 떠날 생각이 없었지만 콜름과 파우릭의 무모한 싸움을 지켜보면서, 평온해 보였던 세상의 껍질이 벗겨졌기 때문에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 후, 오빠인 파우릭에게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 자신과 함께 살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지만 파우릭은 거절의 답장을 보낸다. 파우릭에게는 변화가 곧 죽음이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다정한 여동생까지 갑자기 잃게 됐지만 파우릭은 이니셰린을 벗어난 자신의 삶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파우릭이 답장을 쓰면서 동생에게 알리는 소식 역시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키우던 당나귀, 제니가 죽었다는 소식뿐이다.

지루한 섬 생활, 본토에서 지루하게 계속되는 내전 등 현재의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도피할 곳이 없다. 탈출과 자유를 꿈꾸지만 여러 한계로 현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이해와 소통이 힘든 타인들과 관계,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과 두려워하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인간 사회를 다층적으로 보여주면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훌륭한 영화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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