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은 대박인데, 노벨상은 왜?

도전에 투자하지 않는 나라 결과가 아닌 과정, 경쟁이 아닌 협력 중시해야 대학 R&D지원 방식도 바꾸자...커다란 도전목표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요즘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에 이어 한국 문화의 연이은 히트이다. K-pop에 이어 K-Drama, K-Beauty, 최근에는 K-Food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가히 K-Culture로 대변되는 한류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면서 그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쯤 되면 언론에서 예전부터 떠들던 ‘노벨상’ 수상도 은근히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올해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안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세계 최고의 과학 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네이처’(Nature)는 2016년 한국이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세계 최상급이지만 연구비가 대부분 공학 등 응용 분야에 치중됐던 점, 즉 기초과학 지원에 등한했던 점을 꼽았다. 맞는 말이다.

기초과학 지원 부족이라고?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도전에 투자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각 분야의 개척에서 맨 앞에 서 있는 나라이다. 즉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나라이다.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앞서간 나라가 시행착오를 통해 남겨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가장 좋았던 길을 모방하면 된다. 그러나 선진국은 미지의 영역에 도전을 해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양한 도전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미지의 일에 도전하려면 십중팔구는 실패를 각오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의 도전에 성공을 선사받는 예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도전을 통해 성공을 이루려면 실패를 수용하는 문화를 갖추어야 한다. 도전은 실패를 전제하고 성공은 실패의 결과다. 성공이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뒤 마지막에 한 번 나오는 것이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 전무후무한 학사 출신 수상자로 유명한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200번이 넘는 실패를 딛고 마지막 실험에서 성공을 거둔 후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와 부인.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와 부인.

대학 재학 중에도 유급을 할 정도로 평범했고 연구소에서도 그 흔한 석사학위 하나 갖지 못한 그가 그 같은 성취를 이룩하도록 한 것은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용인해준 그의 직장, 시마즈제작소의 연구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벤처 창업을 장려하고 젊은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도전과 모험의 정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벤처를 창업한 뒤 실패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재기할 수 있도록 금융적으로나 경영적으로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젊은이들을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육현장은 어떤가. 현재의 학교 현장에서는 안정적인 결과 관리를 지향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배한다. 이는 실패가 예견되는 큰 도전은 지양하고 일정한 작은 성과들을 목표로 설정하게 만들고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는 작은 연구들만을 장려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순수과학과 기초과학을 장려하는 토양은 마련되지 않으며 노벨상은 결코 나올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관료들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전략을 기획하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노벨상은 결과여야 하지 결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과만 평가하고 경쟁만 부추기는 나라

왜 이런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필자는 이 모든 것이 바로 과거 개발도상국 시대에 우리가 채택했던 성과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에는 따라할 기술이 있었고 이를 최대한 빨리 모방해 성취하는 것이 최상의 미덕이었다. 이때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 토론도 오히려 시간 낭비요, 오직 최상의 단일한 결론을 신속하게 찾아내고 이를 통해 빠른 성장을 이룩하는 것만이 금과옥조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주의’는 관리 목적상, 나타난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래서 창의력보다는 암기력과 응용력이 최고의 능력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회 전체가 평가 위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였는데, 이것이 모방의 시대에서는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공평하고 객관적이고 신속한 평가가 모든 것을 관리하게 되었고 평가형 교육, 즉 시험 주도의 교육은 이렇게 우리 교육의 체질로 내재화되었다. 요컨대 평가는 교육의 결과여야 하는데도 거꾸로 교육의 목적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날 노벨상을 받기 위한 방법을 기획하려는 사고도 그 뿌리는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험 주도의 교육이 자리를 잡도록 조력한 또 하나의 전통적 토양이 바로 과거시험 제도다. 중국의 과학기술이 서양에 뒤처진 이유, 즉 중국이 유럽과 달리 과학혁명을 이루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로 지목되는 이 과거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오랫동안 유지됐고 평가 주도의 교육 시행에 좋은 환경으로 작용했다.

‘성과주의’는 자연스럽게 ‘경쟁주의’를 불렀다. 왜냐하면 선진국이 제시한 문제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 즉 정답을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기 때문에 개인간 기관간의 경쟁은 불가피했다. 이로 인해 약육강식의 ‘사회적 다위니즘’에 우리 모두가 빠져들고 말았다. 그 결과 다양성은 숨을 쉴 자리를 잃었고 창의력 또한 살아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덧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 서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우리가 가야 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이란 있을 수가 없다. 실패는 예정되어 있고 수없는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들을 오히려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 환경이 되었다.

경쟁보다 협력, 도전에 투자하는 자본

이제는 경쟁만 가지고는 미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대신 더 많은 집단지성을 모아야 하고 이로 인해 경쟁보다는 협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제로섬(Zero-sum)의 무한 경쟁으로부터 이제는 포지티브 섬(Positive-sum)의 협력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제는 합치면 더 커지는 시너지(synergy)의 시대가 왔다. 이제는 토론이 필요하게 되었다. 단일한 사고는 죄악이고 다양한 사고와 접근을 통해야만 보다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협력이란 무엇일까?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람과 아이디어의 집결을 일컫는다. 중세 유럽에서 자유도시가 태동한 것이 유럽의 과학혁명과 기술 진보의 토대가 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면서 물품, 도구, 아이디어 등이 교환되고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농업뿐 아니라 항해, 제련, 건축, 회계, 금융 등의 분야가 크게 발달하게 된다. 다양한 분야의 기술혁신과 그로 인한 자본의 축적은 새로운 상품과 기술을 개발하는 모태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는 데 꼭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통한 아이디어의 교환 및 축적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자본의 결집과 축적이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적용해 보자. 우선 학자들과 기술자들, 기업인들이 함께 자유롭게 모이도록 만들고 그들이 서로의 지식과 정보를 토론하고 교환하여 진보를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롭게’란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함으로써 끊임없이 도전하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자본이 여기에 투입되고 이 연구 개발 자본이 탐욕에 흐르지 않고 건전한 투자정신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투입되도록, 자본 또한 도전 의식을 갖추도록 문화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의 ‘성과주의’ 또는 ‘결과주의’가 아니라 미지의 문제에 도전하는 가운데 발생할 수많은 실패를 수용하고 관리하면서 성공에 이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관리하는 체계, 즉 ‘과정주의’를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이제 국가는 단순히 작은 연구비를 주고 작은 성과들은 도출받는 일보다 도전적인 연구들을 수행하도록 과정에 투자할 것을 제안한다.

대학 연구비 지급 체계를 바꾸자

아울러 필자는 대학의 연구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제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지금까지 대학의 연구비는 몇몇의 연구자들이 연구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론을 결정하고 연구 시행 후 나타날 결과의 활용방안을 잘 설정한 계획서에 대해 선정과 지급의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처럼 처음부터 모든 것을 결정하여 수행하는 폐쇄형 연구계획 말고, 연구진도 연구 목표도 연구 방법론도 활용방안도 결정된 것이 없는 ‘개방형 연구계획’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최초의 연구그룹과 커다란 도전 목표만이 있는 연구 계획에 연구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매 연구모임 때마다 연구진들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화를 시킬 것이고 거기에 적합한 연구인력을 영입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큰 연구들이 시행되고 대한민국의 과학 연구를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과정형 연구사업을 많이 도입하여 이제부터 대학의 연구 패러다임을 바꾸어 보자.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수익이 대부분 넷플릭스에 쏠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창작자 입장에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장르적 실험과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커서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기억하자. 성공은 성과를 요구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전의 과정을 도와주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을!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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