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의 성공 꼭 누리자!...하늘의 인문학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세상= 누리’에서 나온 ‘누리다’ 그리스어 astron에서 파생된 별별 단어들
- ‘에티모버스’는 어원을 뜻하는 é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저자가 합성한 말이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의 올바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말은 우리가 쓰는 언어에도 적용된다. 오늘날 무심코 쓰는 어휘들의 어원에는 개념이 처음 형성될 당시 사람들의 사유가 비유와 함께 담겨 있어 인류의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심오한 세계관을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는 이후 변화의 궤적 탐색을 통해 지금 우리 생각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게 해 주고, 이로써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해 준다.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 교수] 10월 21일은 우리나라가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날아오른 역사적인 날이었다. 비록 탑재했던 위성 모사체를 정상 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하면서 미완성 비행에 그쳤지만 엔진 단 분리와 페어링 분리 등 고난도 기술을 성공시켰으니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이제 이를 발판으로 내년 5월 재도전에서는 보기 좋게 성공하여 1톤 이상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왜 이 발사체에 ‘누리’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누리’는 ‘세상’이라는 뜻의 고유어로, 2018년 시민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고 한다. 이 이름을 제안한 대학생은 누리호가 우주까지 넓어진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최근 대한민국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호령하는데 이제 우주과학 분야에서도 그러한 가능성이 보인다. K-우주시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이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누리, 발, 품, 꾀 등 명사에서 파생된 동사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알아두어야 할 우리말 지식이 있다. 우리가 흔히 ‘삶을 누리다’, ‘자유를 누리다’, ‘영화를 누리다’ 할 때의 동사 ‘누리다’가 바로 이 명사 ‘누리’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명사로부터 파생된 동사들이 꽤 있는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명사 ‘배(腹)’에서 (아이를) ‘배다’라는 동사가 나오고, ‘발(足)’에서 발로 밟는 행위인 ‘밟다’가 나왔다. 마찬가지로 ‘신(靴)’에서 신을 신는 행위인 ‘신다’가 나왔다. 또 ‘품’에서 (가슴에) ‘품다’가 파생되고, ‘빗’에서 빗질한다는 뜻의 ‘빗다’가 나오고, ‘자ㅎ’(尺)에서 자로 잰다는 뜻의 ‘자히다’가 나오고 여기에서 ‘재다’가 나왔다. 또 ‘꾀’에서 (꾀를 써서 사람을) ‘꾀다’가 나왔다.
이 같은 예들처럼 ‘누리’에서 ‘누리다’가 파생된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인데, 어떻게 ‘세상’이라는 뜻으로부터 ‘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다’라는 뜻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점과, 특히 그렇게 하려면 저승으로 가지 않고 이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점으로 인해 그러한 뜻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내년 5월에 발사될 ‘누리호’가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의 발사체 보유국이 되는 자부심을 ‘누리도록’ 해 준다면 더없는 기쁨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인간은 왜 우주를 정복하려 할까? 인공위성은 군사적 목적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 외에도 통신, 방송, 기상, 과학 탐구 등 국가의 경제적 이익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천문에 대한 관심은 비단 현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주 먼 옛날에도 있었던 것인데, 농경사회였던 고대에는 농사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가뭄과 홍수, 역병 등의 자연재해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어서 이를 예측하는 것에 대한 방법이 필수불가결했다.
astron에서 파생된 단어들... 심지어 재앙(disaster)도
이처럼 국가와 사회의 운명과 장래를 예측하기 위해 인간이 동원한 방법은 천체의 현상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이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땅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창조의 신을 믿기 시작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여서, 하늘에 계신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하늘의 움직임은 곧 계시로 생각했다. 주기도문을 보더라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하늘의 뜻은 별들의 움직임에 나타난다. 요즘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하고 있고 공해 등으로 인해 별이 많이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에는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 별들의 움직임과 배열은 국가의 운명과 인간의 숙명, 행운과 불운을 나타낸다고 고대인들은 믿었다.
별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astron이라고 하고, 라틴어에서는 astrum이라고 하는데 이 어근은 유럽 각국의 언어에 퍼져나가 많은 단어들을 만들었다.
우선 ‘점성술’을 영어에서 astrology라고 하는데 이는 별을 뜻하는 astro와 논리를 뜻하는 logy로 이루어진, 하늘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후에 나타난, 진정 과학적으로 하늘을 탐구하는 학문인 ‘천문학’은 정작 이 단어를 쓸 수가 없어 astronomy로 이름 붙이게 되었다. 이 외에도 astronaut (우주비행사), asterisk (별표 *), asteroid (소행성) 등의 단어가 astron으로부터 파생되었고, 별 모양으로 생긴 ‘과꽃’은 aster라는 이름을 얻었다.
흥미로운 것은 영어의 disaster라는 단어다. ‘재해, 재난’을 뜻하는 이 어휘는 이탈리아어 disastro에서 기원한 프랑스어 désastre로부터 받아들인 말로서, 잘못된 별 혹은 잘못된 별의 배열을 뜻한다. 이를 글자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ill-starred’가 되는데 이는 ‘불운한, 실패[불행]할 것 같은’을 뜻하며 실제로 이 단어가 있다. 중세 라틴어에서도 ‘불행’, ‘불운’을 뜻하기 위해 ‘불길한 별’을 의미하는 ‘astrum sinistrum’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요컨대 이는 이상한 별이 나타나거나 별자리가 잘못 배치되면 재해가 온다는 당시 사람들의 믿음을 나타내주고 있을 뿐 아니라, ‘재해’라는 현상을 굳이 그런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가진 천문관과 운명론을 웅변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하겠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다. 지금은 아무도 길흉화복이 별자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대인들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우주개척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군사, 통신, 방송, 기상, 과학 탐구 등 국가 경제의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 있고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더 심화될 것이다.
우리가 ‘누리호’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리호’여, 부디 성공 소식을 온 누리에 알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누리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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