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국과 ‘헤어질 결심’의 어려움
[최수정의 유럽 외교전]
- [1분 핵심요약]
- 흔들리는 동맹과 미국의 전략적 이탈 미국의 독단적 행보로 대서양 동맹의 신뢰는 무너졌다. 이란 전쟁에서 유럽이 협조를 거부하고 망설인 것이 반증이다. 미국의 안보 최우선 순위가 인도·태평양(중국 억제)으로 이동하면서, 유럽은 핵심 파트너에서 단순 협력자로 격하됐다.
- 독일의 재무장과 ‘미국 없는 NATO’의 서막 유럽은 ‘미국 없는 NATO’를 대비하며 스스로의 안보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변화의 중심인 독일로, 사실상 전면적인 재무장 단계에 진입했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환상이 깨졌고 유럽 각국의 각자도생을 준비한다. 독일의 재무장은 곧 집단안보 체제에 대한 신뢰 붕괴와 ‘안보 독립’의 시작을 의미한다.
- 새로운 안보 지도, 중견국 연대와 IP4 유럽은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IP4) 등 중견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연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다층적 안보 네트워크의 기반이다. 우리 역시 한반도 유사시 한국의 1차적 책임을 강조하며 전략 자산을 이동시키는 미국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결국 유럽과 IP4의 협력 강화는 두 역내 안보를 위한 새로운 연대로 구상되어야 한다.
대서양 동맹의 신뢰를 흔든 연쇄적 충격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들이 유럽을 연달아 덮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 요구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 사건, 그리고 이어진 중동 공습까지 미국의 일련의 독자적 행동은 유럽에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그린란드를 둘러싼 갈등은 미국과 유럽 사이의 균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맞서 유럽 국가들이 그린란드에 직접 군사력을 파견하며 대응하자, 미국은 관세 보복을 언급하며 맞섰다.
결국 다보스 포럼에서 양측이 갈등을 봉합하긴 했으나, 대서양 동맹을 지탱하던 신뢰의 기둥은 이미 크게 흔들린 뒤였다.
이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유럽이 보여준 주저는 그 신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과거 ‘이란 핵무기 개발’ 논란 당시 서방 진영의 핵심 축으로 활약했던 유럽이었다. 이란의 핵이 이스라엘은 물론 유럽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둘 수 있다는 현실적 위협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페인이 미국에 대한 협조를 거부했고, 가장 가까운 우방인 영국조차 기지 제공을 망설였다. 프랑스는 항모를 파견했으나 군사행동보다는 난민 발생 대비에 치중했다. 마음이 떠나버린 뒤, 몸도 자연스레 떠난 셈이다.

전략적 우선순위의 변화, 인도·태평양으로 떠난 미국
유럽이 받은 충격은 단순한 외교적 불화의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전략적 관심이 더 이상 유럽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국방전략(NDS)은 안보의 최우선 지역을 인도·태평양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이 미국의 핵심 국가 전략이 되면서, 유럽은 이제 안보의 중심이 아니라 여러 협력 파트너 중 하나로 격하됐다. 이러한 위상의 변화는 NATO 내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은 오랫동안 유럽 동맹국들에게 국방비 증액을 요구해 왔다. NATO 방위비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홀로 부담하는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2025년 NATO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 방위예산의 62.4%를 부담하고 병력의 38.1%를 지원하고 있다.
NATO 운영 경비만 보면 미국(16%)과 독일(14.5%)이 비슷해 보이지만, 실질적인 방위비 전체를 보면 32개 회원국 중 미국이 6할의 역할을, 나머지 31개국이 4할을 담당하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다. 미국의 3.5% 국방비 증액 요구는 어쩌면 ‘늦게 온 청구서’일 뿐이다.

독일의 재무장과 ‘미국 없는 NATO’의 준비
이제 나머지 31개 회원국들은 미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NATO의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합의점에 도달했다. 유럽은 이제 스스로 안보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독일이 있다. 독일 의회는 최근 군사력 확대 정책을 통해 18세 의무신병검사제도를 도입하고, 현재 약 18만 명인 병력을 26만 명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방비 역시 2025년 950억 유로(약 156조 원)에서 2029년까지 약 1,620억 유로로 70% 가까이 증액할 예정이다.
이는 GDP 대비 3.5%에 달하는 규모로, 독일이 사실상 전면적인 재무장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독일이 계획대로 재무장을 이룬다면 유럽의 안전보장 질서도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현재 미국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유럽의 ‘안보 독립’이다. 이는 유럽 안보의 핵심인 NATO가 사실상 “미국 없는 NATO”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을 지탱해온 집단안보 체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각 국가가 자신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자각이 현실이 되고 있다. 독일의 재무장은 이런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대안적 동맹의 모색, 한국 포함 IP4와의 연대
유럽은 내심 중국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보급기지가 중국이라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되면서 서유럽의 미련은 사라졌다. 특히 독일의 대중국 무역 적자가 지난해 3.5배나 증가하며 중국은 더 이상 성장 동력이 될 수 없음이 판명됐다.
러시아 역시 전쟁을 통해 사실상의 적국이 됐다. 올해 1월 발표된 ‘2026년 EU 안보전망보고서’는 유럽이 러시아에 직접적인 군사 위협뿐만 아니라 해저 케이블, 에너지 시설 등 기간시설에 대한 하이브리드 위협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이 군사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재군비 정책을 최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유럽은 ‘중견 선진국들의 연대’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제기한 ‘중견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 강화’ 구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연결된다.
특히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로 구성된 IP4 국가들과의 협력은 유럽에 필수적인 전략적 선택지가 되었다. 가치와 우려를 공유하는 이들과의 협력은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다층적 안보 네트워크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동맹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억지에 집중하는 대신, 한반도의 핵 위협에 대해서는 한국의 1차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유사시 한국군이 우선 해결하고 미국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겠다는 의미다. 주한미군이 사드 미사일을 중동 전선으로 돌린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결국 한반도와 유럽 모두 ‘미국을 제외한 집단적 안보 체계의 재구조화’를 고민해야 하는 공통의 처지에 놓였다. 미국을 뺀 NATO와 IP4 국가들 간의 협력 강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두 역내 안보를 위한 새로운 필연이 되고 있다.
NATO의 대서양 동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은 이제 미국에만 의존하던 안보 구조와 ‘헤어질 결심’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안보 지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의 눈엔 한국이 또렷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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