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스스로 용자(勇者)가 된 이유

[공동락의 중앙은행 엿보기] 통화당국 한쪽 방향으로 ‘쏠림’ 지나쳐 채권시장 참여자도 몸사림...결국 한국은행이?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첫날인 1일 오전 서울역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채권시장이 한방향으로만 쏠릴 경우는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 연합뉴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첫날인 1일 오전 서울역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채권시장이 한방향으로만 쏠릴 경우는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 연합뉴스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 애널리스트 겸 이코노미스트] 아마도 처음에는 이랬을 것이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여전히 통화정책은 (성장률이나 물가 여건을 감안할 때) 완화적이고, 돈줄을 죄는 주요 타겟이 가계부채이니 채권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다름 아닌 지난 여름부터 통화당국이 줄기차게 준비해 온 금융안정 목적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사전 시뮬레이션 결과를 필자가 나름대로 재구성해봤다.

하지만 통화당국의 이러한 구상은 최근 통안채 입찰 규모 축소와 바이백 발표를 통해 사실상 빗나갔다. 해당 조치들은 모두 시장금리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대응의 일환이며, 이는 바로 채권시장에 충격이 상당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을 기점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코로나19 위기로 공격적으로 풀었던 유동성 환경이 상당 기간 지속됨에 따라 경제 주체들의 위험 추구가 지나치게 커졌고, 그 결과물인 가계부채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빠르게 늘어났다는 판단을 근거로 한 대응이었다.

이후 돈줄을 죄는 대표적인 조치인 기준금리 인상이 8월에 이뤄졌고, 때마침 다른 나라들 역시 우리와 유사한 행보를 보이거나 조만간 그 대열에 동참할 것임을 확인함에 따라 국제적으로 통화정책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느낌까지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금리가 상승한다는 것과 그러한 금리 상승 과정이 가격 질서를 벗어날 정도로 가파르게 이뤄진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최근 시장금리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내놨던 일련의 조치들은 다름 아닌 해당 사안이 서로 별개임을 인지한데 따른 정책 당국 차원의 대응이다.

그렇다면 시장금리가 통상적인 가격 질서를 벗어날 만큼 급등했던 과정에서 통화당국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요인들은 과연 무엇일까? 다음과 같이 2가지 요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채권시장이나 경제 주체들에게 지나치게 동일한 정책 방향 만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보통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올리든 내리든 한 방향에 국한된 정책 방향성을 시사하지 않은 것을 불문율 혹은 미덕으로 여겨왔다. 이는 항상 기준금리 인상할 수도, 인하할 수도 있는 요인들을 다양하게 열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곤 하는데 중앙은행이 경제 펀더멘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상방과 하방 요인을 모두 언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5월 이후 통화당국의 행보를 통해 재구성해보자.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시사가 진행된 이후 한국은행은 줄기차게 금리 인상을 강조했다. 통화신용정책보고서, 금융안정보고서 등을 통해 이번 인상은 금융안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다른 요인들에 앞서 금융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이 가장 큰 현안임을 숨기지 않았다.

기존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저울질을 통해 적정한 기준금리 수준을 추정해왔던 채권시장의 입장에서는 금융안정이란 실체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목적이 강조됐고, 더구나 그 방향성이 한 쪽으로 집중된데 따른 두려움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아울러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그간 한국은행으로 국한됐던 정책당국의 범주도 넓어졌다. 그 과정 역시 정책당국이 내놓은 메시지는 기준금리를 더 올리고 돈줄을 죄겠다는 단일한 방향에 집중됐다.

이처럼 단일한 방향으로 국한된 정책 방향성의 시사는 매파와 비둘기파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전달되는 미 연준(Fed) 커뮤니케이션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한 쪽으로의 쏠림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다시 말해 금융안정이란 생소한 정책 목적에, 절대 숫자가 늘어난 통화당국`들` 그리고 다른 완충 장치 없이 같은 방향으로만 전개된 통화정책 기조 시사 등을 통해 채권시장이 향후 통화정책에 대한 프라이싱을 매우 거칠게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국내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자금 운용 과정에서 보인 유사한 군집 성향이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다양한 입장이나 성향을 지닌 참가자들이 많을수록 원활하게 작동된다. 흔히 매수와 매도가 서로 치열하게 치고 받는 과정을 통해 가격 발견 혹은 가격 기구의 작동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의미인데, 상대적으로 채권시장 특히나 한국 채권시장은 참가자들이 제한된 과점 시장의 성격이 강하다.

완전경쟁시장과 달리 과점시장에서는 다른 참가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행보를 결정하는 전략적 대응이 나올 여지가 상당한데, 지금처럼 통화정책 기조가 단일한 방향으로 강력하게 형성되는 경우에는 참가자들이 유사한 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즉 금리가 급등할 만큼 급등했으니 이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는 용자(勇者)가 되기보다는 다른 참가자들과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손실을 보지 않으려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금리가 뛰었다고 매수하기보다는 누군가 그 역할을 하는 참가자들이 나올 때까지 몸을 사릴 확률이 높다. 이는 결국 그 용자의 역할이 통화정책의 결정자인 동시에 채권시장의 ‘큰 형님’인 한국은행으로 귀결됨을 의미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금융안정의 강조를 통해 통화당국은 매우 정밀한 외과수술 방식으로 채권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가계부채를 견제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고, 여전히 기준금리는 인상하더라도 성장과 물가 여건에 비해 통화정책 여건이 완화적인 만큼 채권시장에서 형성되는 시장금리가 그리 급등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사전적인 시뮬레이션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준금리라는 칼은 매우 컸을 뿐만 아니라 칼을 꺼내고 휘두르는 그 과정 역시도 채권시장에는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은 당연히 가늠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불렀고, 한번 두려움에 빠진 집단은 결코 스스로 용자가 될 수도, 용자를 찾을 수도 없었다.

글쓴이

공동락 이코노미스트

공동락은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이코노미스트 겸 채권 애널리스트로 재직중이다. 이데일리 채권전문기자로 출발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권 투자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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