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 비둘기파→다시 매파...잭슨홀의 여진

[공동락의 중앙은행 엿보기] 잭슨홀 미팅의 앞이야기와 뒷이야기 송어 낚시광 볼커를 불러낸 잭슨홀 파월의 짧은 연설, 여진이 큰 이유는

전성기 시절의 폴 볼커 의장.
전성기 시절의 폴 볼커 의장.

잭슨홀 미팅이 중요한 이벤트가 된 배경

잭슨홀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미국 중부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해발 2100m의 이 마을은 원래 스키리조트로 유명했다.

하지만 잭슨홀은 이제 조용한 휴양지보다는 8월이면 전세계 금융시장의 이목이 집중되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높은 산지들 가운데 움푹한 지형으로 인해 홀(hole)이란 지명으로 불리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 홀(hall)이라는 다소 의미 있는 오기(誤記)를 해마다 심심치 않게 볼 정도인 걸 보면 말이다.

잭슨홀 미팅의 정식 명칭은 ‘캔자스시티 연준은행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The Federal Bank of Kansas City’s Jackson Hole Economic Symposium)’이다. 즉 미국의 지역 연준인 캔자스시티 연준이 개최한 심포지움으로, 와이오밍주는 12개 지역 연준들 가운데 캔자스시티 연준의 관할 구역에 속한다. 하지만 지역 연준들이 밀집된 동부 지역들과 달리 캔자스시티 연준은 관할 구역도 매우 넓고 와이오밍와 캔자스시티 간의 거리 역시 상당하다.

잭슨홀이 있는 미국 와이오밍주 티턴국립공원내 티턴산. 사진=AP/연합뉴스
잭슨홀이 있는 미국 와이오밍주 티턴국립공원내 티턴산. 사진=AP/연합뉴스

더구나 미국 중서부 오지를 담당하는 캔자스시티 연준은 뉴욕이나 시카고 연준처럼 미국 전체 경제에 영향을 줄 만한 지표를 발표한다거나 관심을 받을 일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매년 연준 수뇌부와 학계, 경제계 리더들을 초청하는 잭슨홀 미팅은 캔자스시티 연준 자체의 위상을 크게 높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1978년에 시작된 캔자스시티 연준이 주최한 심포지움은 초기 몇 년 동안에는 그리 흥행에 성공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부의 주요 지역 연준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지역 연준에서 개최한 행사였고, 게다가 첫 주제가 지역의 기반산업인 농업과 관련된 농업선물일만큼 매우 지역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송어 낚시광 볼커의 등장

그런데 당시 미국은 오일 쇼크로 물가가 급등했고, 경기도 침체를 나타내며 문자 그대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었다. 바로 이 위기 상황에서 연준 의장으로 등판한 인물이 바로 볼커였는데, 1982년 볼커 의장이 잭슨홀 미팅에 참석하면서부터 지금과 같은 커다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벤트가 됐다.

당시 캔자스시티 연준 총재인 로저 구피(Roger Guffey)는 심포지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적잖은 고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역내 지역을 순회하며 장소를 선정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잭슨홀로 행사 장소를 고정했다.

잭슨홀이 있는 티톤국립공원은 미국의 석유 재벌인 록펠러가 멋진 경관에 반해 매입해 원시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조건으로 기부한 지역이다. 또한 청정지역에만 산다는 송어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송어 낚시광으로 알려진 볼커 의장이 미팅에 참석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후문이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자연을 배경으로 수준 높은 토론이 벌어지니 미팅 참석자들 모두가 만족했고 이후 심포지엄은 연준의 정례적인 고정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비둘기파 대신 매파의 무대로

필자와 같은 현재 금융시장 종사자들에게 잭슨홀이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된 것은 지난 2010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번째 ‘양적완화(QE)’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이후 잭슨홀은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일종의 상징으로 인식됐고, QE라는 소중한 선물에 대한 추억으로 인해 8월 잭슨홀 미팅은 몹시 기대가 큰 통화정책 이벤트였다.

하지만 올해 잭슨홀은 QE와 같은 선물과 거리가 먼 충격과 공포의 이벤트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잭슨홀을 앞두고 금융시장에서는 3월 이후 꾸준히 이어져온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에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일었다. 적어도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과 같이 이례적인 금리 인상으로 높아진 부담감에 작은 위로라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제롬 파월 의장은 마치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이 강력한 매파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연설시간은 약 8분 50초로 역대급으로 가장 짧았다. 연설 내내 인플레이션을 무려 46차례나 언급하면서 물가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에 주지하다시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예상보다 긴축의 강도가 강하고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주요 가격 변수들이 연일 요동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번 잭슨홀에 더욱 주목하는 것은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대명사인 볼커 전 의장을 전면으로 끌어올려 소환(召喚)했다는 사실이다. 즉 현재와 같은 잭슨홀이 있게 한 장본인인 볼커를 소환함으로써 단순히 말이 아닌 이미지를 통해서도 ‘인플레이션 파이터’임을 각인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금융시장에서 잭슨홀 미팅에 대한 관심은 버냉키 전 의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초기에 잭슨홀의 위상이 정립된 것은 볼커 전 의장의 공로가 크다. 따라서 파월 의장의 이번 행보는 그간 금융시장에 우호적이었던 버냉키와는 대비되는 볼커라는 인물을 소환함으로써 잭슨홀 이벤트에 대한 섣부른 기대도 하지 말라는 의미도 동시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파월 의장은 이처럼 볼커로 인해 현재와 같은 위상으로 격상된 잭슨홀 미팅을 통해 자신이 이제 볼커 정신의 계승자임을 강조했다. 그린스펀, 버냉키, 옐런 시대를 거치며 금융시장에 친화적인 이미지가 고정됐던 중앙은행 수장들의 행보에서 벗어난 대담한 이미지 변신이라고 할 것이다.

아내와 함께 잭슨홀에 나타난 제롬 파월 의장. 사진=연합뉴스
아내와 함께 잭슨홀에 나타난 제롬 파월 의장. 사진=연합뉴스

잭슨홀 미팅이후 국제금융시장은

파월 의장은 “물가 안정은 연준의 책임이며, 우리 경제의 기반”이라며 “물가 안정 없이는 어떤 조치로도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면 경기 침체의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아울러 1970년대 인플레이션 통제 실패가 결국 볼커 시대의 고금리 정책을 불러왔다고 상기시켰다.

파월 의장은 “1980년대 초 볼커 의장의 인플레이션 억제 성공은 앞서 15년간 물가를 낮추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실패한 뒤에야 나온 것”이라면서 “우리 목표는 지금 단호하게 행동함으로써 그런 결과(물가 안정 실패)를 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볼커 시대로 되돌아 가보자. 1979년 8월부터 1980년 4월까지 불과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폴 볼커 전 의장은 기준금리를 약 11%에서 17.5%로 크게 인상했다. 이 기간 중에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8%에서 14.5%로 높아졌다.

하지만 1980년 여름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면서 연준은 금리를 인하했는데, 1980년 7월 기준금리는 9%로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후 물가는 하락세였지만 여전히 12%를 웃도는 고(高)물가를 유지했는데, 결국 연준은 다시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을 재개했다. 1982년 겨울 들어 물가는 3년 만에 10%를 하회했지만 기준금리는 1980년 당시보다 더 높았고, 계속해서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던 연준은 1985년이 되어서야 8%를 밑도는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파월 의장이 볼커 의장을 소환한 이유는 분명하다. 파월 의장은 볼커 의장의 소환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그간 꾸준히 제기했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일축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잭슨홀을 앞두고 내년도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었던 각종 지표들(연방기금금리선물, OIS 등) 역시 앞섰던 상반기 당시 수준으로 다시 복귀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6월 9%대를 웃돈 이후 7월에 8.5%로 낮아졌다. 아마도 6월이 연간으로 물가 고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정점을 확인한 이후에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하반기 이후 일부 지표의 둔화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며, 이번 잭슨홀 미팅을 통해 기준금리 인상이 조기에 종료되거나 빠르게 인하 기조로 전환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글쓴이

공동락 이코노미스트

공동락은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이코노미스트 겸 채권 애널리스트로 재직중이다. 이데일리 채권전문기자로 출발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권 투자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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