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금리, 그리고 죄수들의 딜레마

[공동락의 중앙은행 엿보기] 비(非)미국 중앙은행들이 직면한 게임이론 강달러 극성에 금리인상 러시...’역 환율전쟁’ 한은도 물가안정→’환율 방어’로 논리 수정

미 강달러에 대해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하지 않으면 환율전쟁에서 패배, 금리를 인상해도 완벽한 승리보다는 외환보유액을 허비한 채 버티기 하는 양상이 될 전망이다. 그림=위키트리
미 강달러에 대해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하지 않으면 환율전쟁에서 패배, 금리를 인상해도 완벽한 승리보다는 외환보유액을 허비한 채 버티기 하는 양상이 될 전망이다. 그림=위키트리

‘금리 인상’ 목표가 변했다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다시 ‘빅 스텝(50bp)’으로 인상했다. 지난 7월 당시 사상 처음으로 빅 스텝을 단행할 당시만 하더라도 다시는 50bp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보였던 상황이 불과 3개월 만에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9월 말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국 연준의 잭슨홀 미팅, 8월 물가 쇼크 등을 통해 종전과 비교할 때 “(연준의 행보에 대한) 전제가 달라졌다”며 빅 스텝 재개를 시사했다. 따라서 엄밀히 보면 이번 인상은 통화당국이 자신들의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포워드 가이던스를 수정해 적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위반이든 수정이든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에 변화가 발생할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변화가 발생한 원인이 그간 한국은행이 강조했던 ‘기준금리 인상의 목적들’과 구분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10월 빅 스텝 인상에 대해 한국은행은 핵심 원인을 ‘환율 및 대외 여건 변화’를 들었다. 그동안 미국과의 대내외 금리 격차나 자본유출 이슈에 대해 웬만해서는 통화정책과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기피했던 상황과 비교할 때 사뭇 달라진 대응이다.

실제 이 한은 총재는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대될 경우 환율과 대외 변수를 금통위원들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이번 빅 스텝 결정이 그간 이뤄졌던 인상과는 성격 면에서 명확하게 구분되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올해 8월까진 물가안정...지금은 환율

한국은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을 매우 신속하게 진행한 국가다. 전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재임 당시였던 지난해 5월부터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 지속된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변화를 꾀했다. 이후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을 시작해 10월까지 총 250bp의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런데 이번 10월 이전에 이뤄진 총 200bp의 금리 인상은 목적 면에서 구분이 필요하다. 동일한 기준금리 인상이라도 그 성격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성격에 따라 인상 폭이나 강도에도 차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즉, 이주열 총재 재임 당시에 이뤄진 기준금리 인상은 ‘통화정책 정상화와 금융안정’이 핵심 목적이었다. 당시 금리 인상은 각각 25bp씩 총 3차례에 걸쳐 전체 인상 폭은 75bp였다. 기준금리가 0.50%에서 1.25%까지 인상된 것이다. 또 코로나19 이후 크게 낮아진 금리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복귀하고, 급격하게 풀린 유동성을 회수한다는 의미가 컸다.

그 다음은 이창용 총재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부터 지난 8월까지 이뤄졌던 기준금리 인상으로 핵심 목적은 ‘물가안정’이다. 해당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은 총 4회에 걸쳐 7월 사상 첫 빅 스텝을 포함, 전체 인상 폭은 125bp였다. 기준금리가 1.25%에서 2.50%로 인상된 것이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11월까지도 물가 상승세가 코로나19 및 공급망 병목현상 등으로 야기된 ‘일시적인(transitory) 현상’이란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2021년 연말부터 물가 상승에 대한 견해를 수정하고, 본격적인 물가 견제를 선언했다. 연준이 3월부터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을 개시한 이후 각국 통화당국들도 일사분란한 행보로 인플레이션 대응에 나섰다.

지금까지 언급된 기준금리 인상은 한은이 비교적 자신들 만의 보폭과 목표에 부합하는 행보가 가능했던 인상으로 볼 수 있다. 이 총재가 대외 변수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기준금리 인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외국 중앙은행간 수싸움...역환율전쟁

이에 반해 환율 변수를 기준금리 인상 과정에서 핵심 요인으로 지목한 10월 이후부터는 종전과는 매우 다른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가 국내적인 사안에 국한됐다면 향후에는 대외 여건과 더 나아가 대내외 변수들 간의 상호 작용까지도 통화정책 결정에 반영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0월 금통위에서 빅 스텝 인상의 이유로 환율이 부각된 것은 미 연준의 긴축 강화에 따른 여파가 크다.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통화당국들이 동시에 직면한 문제로, 자칫 인상 폭이 미흡하거나 트렌드에서 소외될 경우 환율 경로를 통해 부담이 배가될 수 있다.

특히 환율 대응은 기준금리 인상 폭을 높였을 때 미칠 수 있는 효과보다는 인상 폭을 크게 하지 않았을 때에 미칠 부작용이 더 크게 반영되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통화당국의 대응 강도가 앞선 두 국면에 비해 의외로 커질 여지도 있다.

환율 방어가 왜 죄수의 딜레마 일까. 미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 중앙은행들의 외환시장 개입 효과는 글로벌 달러화 강세의 큰 흐름을 전환하기보다는 자국통화의 약세 속도를 완화하는 일시적인 성격이 강하며, 그 효과 역시 제한적일 여지가 크다. 그럼에도 자국통화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관리해야 하는 미국외 국가들은 외환보유액 감소에 따른 대외건전성 약화에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한데 대해 각국의 통화당국들이 동시에 같은 행보(금리 인상)를 취하면 중간 경로인 외환시장을 통해 강력한 상호 작용을 유발한다.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쉽게 패해서는 안되는 ‘역(逆) 환율전쟁(reverse currency war)’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이는 미국 외 국가들간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환율이 향후에도 꾸준히 통화당국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전제한다면 한국에서 ‘빅 스텝’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질 여지가 적지 않다.

글쓴이

공동락 이코노미스트

공동락은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이코노미스트 겸 채권 애널리스트로 재직중이다. 이데일리 채권전문기자로 출발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권 투자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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