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차(茶) 못지 않은 가을차도 있다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한국은 봄차, 인도 닐기리는 겨울차 선호 ‘철관음’, ‘봉황단총’같은 우롱차는 가을차, 겨울차 뛰어나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왼쪽)과 세컨드 플러스(오른쪽). 수색 만큼이나 맛과 향이 다르다. 사진= 구글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왼쪽)과 세컨드 플러스(오른쪽). 수색 만큼이나 맛과 향이 다르다. 사진= 구글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추운 겨울이 지나고 오는 봄은 누구에게나 반갑다. 봄을 싫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봄은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설렘을 주지만, 차를 사랑하는 사람은 햇차에 대한 기대감으로 더욱 더 봄이 반가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4월20일 곡우(穀雨) 전후에 채엽하기 시작하면 10월까지도 찻잎을 딸 수 있다. 그럼에도 차 애호가들은 곡우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우전(雨前)이라고 불리는 이른 봄 녹차를 특히 좋아한다. 연녹색의 여린 찻잎이 주는 싱그러운 푸르름도 좋고, 대체로 다른 계절에 만든 차 보다 맛과 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계절이 변하면 찻잎 속 성분의 구성비가 달라진다.
계절이 변하면 찻잎 속 성분의 구성비가 달라진다.

뿌리에서 겨울 보낸 영양분 가득 찬 ‘이른 봄’ 차

이른 봄에 만든 차일수록 맛과 향이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에너지)을 만든다. 차나무 역시 뜨거운 여름동안 열심히 광합성 작용을 해서 만든 영양분을 모두 다 뿌리로 내려 보내 저장한다. 추운 겨울 동안 뿌리에 저장했다가, 이른 봄에 그 영양분을 내 보내서 새싹을 만든다. 뿌리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농축된 영양분이 가득 차 있는 새싹과 어린잎으로 만든 것이 바로 햇차다. 그래서 햇차의 맛과 향이 특히 좋은 것이다. 게다가 이른 봄은 일조량도 부족하고 날씨도 아직 쌀쌀한 편이라 찻잎이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이렇게 천천히 자라면서 찻잎에 영양분이 꽉꽉 채워지는 것도 맛과 향이 좋은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여기에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난 후에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감상까지 더해져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중국, 일본, 인도의 다즐링처럼 뚜렷한 겨울이 있는 차 생산지에서는 대체로 봄 차가 훨씬 더 대접 받는 편이다.

하지만 반드시 봄 차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생산지의 특수성에 따라 다른 계절에 만든 차도 좋은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봄이 아니라 다른 계절에 만든 차가 맛과 향이 더 풍부해 훨씬 더 선호되는 경우도 많다.

다즐링의 3월.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진=문기영
다즐링의 3월.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진=문기영

스리랑카는 건조기에 생산된 차를 으뜸으로

스리랑카(이전 이름이 실론으로 실론티는 스리랑카 홍차라는 뜻이다)는 적도 인근에 위치하여 일년내내 덥고 홍차 또한 연중 생산된다. 따라서 계절에 따라 맛과 향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신 차나무가 재배되는 곳이 대부분 산악지역이라 고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른 것이 스리랑카 홍차의 가장 큰 특징이다. 1,200m 이상을 고지대, 600~1,200m 사이를 중지대, 600m 이하를 저지대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한 각 지역에서 제일 맛있는 차가 생산되는 시기는 대체로 건기다. 지형 특징으로 인해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구별되는 스리랑카 기후에서 해당 차 생산지가 건기에 해당될 때 생산된 차가 가장 좋은 품질로 선호된다. 서쪽에 위치한 딤불라는 1~3월, 동쪽에 위치한 우바는 7~9월이 가장 맛있는 차가 생산되는 퀄리티 시즌(Quality Season)으로 불린다.

인도 닐기리에서 생산된 ‘겨울 차’

인도 남부에 위치한 닐기리 역시 적도 인근이라 연중 홍차가 생산된다. 닐기리의 차 생산지는 전체적으로 고원지대에 위치한다. 차 생산지의 평균고도가 1,700m 정도 되고 높은 곳은 2,400m까지에 이른다. 이러다 보니 적도 인근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해당하는 12~3월 사이의 고지대에서는 기온이 내려가 서리가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시기에 생산된 차는 ‘서리 차(Frost Tea)’ 혹은 ‘겨울 차(Winter Flush)’라고 불리면서 맛과 향이 좋아 가장 인기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자라면서 찻잎에 영양분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일본 녹차밭. 가계채엽을 위해 단정히 정리되어 있다. 사진=구글
일본 녹차밭. 가계채엽을 위해 단정히 정리되어 있다. 사진=구글

우리나라, 일본, 중국은 봄 차가 특히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 차 생산 시기는 4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로 짧다고 할 순 없지만, 곡우(4월20일)전후에서 시작하여 입하(5월5일)전후까지 생산되는 차가 최고품질로서 대우받으면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좀 더 길게 봐도 소만(5월21일)까지 한 달 남짓 된다. 그 이후 생산되는 차(근래에는 일손이 부족해 생산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는 가격도 낮아지고 차 애호가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일본과 중국도 최고품질이 생산되면서 차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는 시기는 각각 이치반차(一番茶) 와 청명차(淸明茶) -혹은 명전차(明前茶)-가 생산되는 시기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른 봄의 매우 한정된 기간이다.

봄 차, 여름 차 각각 매력있는 다즐링 홍차

이와는 달리 여름 차 또한 봄 차 못지않게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각광받는 것이 다즐링 홍차다.

‘퍼스트 플러시(First Flush)’라고 알려진 다즐링의 봄 차(Spring Flush)는 3~4월에 생산되면서 녹차에 가까울 정도로 산화도가 낮다. 푸르고 신선하며 꽃 향으로 가득 찬 맛과 향은 매년 봄 전 세계 홍차애호가들을 흥분시킨다.

5~6월에 생산되는 ‘세컨드 플러시(Second Flush)’라고 알려진 여름 차(Summer Flush)는 전혀 다른 맛과 향으로 또 한번 홍차애호가들을 설레게 한다.

일조량이 많아지고 기온이 올라가는 계절변화와 함께 찻잎 속 성분의 구성비도 달라진다. 여기에 맞춰 산화도를 높이는 등 가공방법에 변화를 줘서 맛과 향을 훨씬 풍성하고 복합적으로 만든다.

아삼홍차는 무덥고 습한 기후 덕분에 매력이 강해진다. 봄 차와 여름 차가 각각 다른 개성과 매력으로 차별화 되는 다즐링과 달리 아삼홍차는 5~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 차인 세컨드 플러시가 맛과 향이 훨씬 더 풍성하다. 이 시기의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습한 날씨가 아삼홍차 특유의 바디감 있고 농도 짙은 적색 수색을 가져오면서 강한 몰트 향, 꿀 향을 발현시킨다.

3~4월에 생산되는 봄 차는 풀 향(Weedy)이 나는 떫은 맛이 강한 편이라 선호되지 않는다. 인도는 생산량의 대부분을 국내 소비하고 수출량은 15% 전후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출되는 아삼홍차는 대부분 세컨드 플러시이고 우리가 유럽회사들로부터 구입하는 것 역시 대부분 세컨드 플러시라고 보면 된다. 종종 패키지에 ‘세컨드 플러시’라고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당연한 것을 강조한 의미 없는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그늘막이 나무 아래로 아삼 다원이 펼쳐져 있다. 사진=문기영
햇빛을 가리기 위한 그늘막이 나무 아래로 아삼 다원이 펼쳐져 있다. 사진=문기영

우롱차는 가을 차, 겨울 차도 맛있다

뿐만 아니라 ‘철관음’, ‘봉황단총’ 같은 우롱차는 가을 차, 겨울 차 품질도 봄 차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더 뛰어난 경우도 많다. 대만 우롱차인 ‘동방미인’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주로 생산한다. 독특한 맛과 향을 발현시키는데 필수요소인 소록엽선이라는 곤충이 이 무렵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싹과 잎으로만 만들지만, 차의 맛과 향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차나무 품종, 재배되는 지역의 자연환경, 가공방법 같은 변수들이 차의 맛과 향에 다양성을 가지고 온다. 이에 더하여 앞에서 본 것처럼 채엽 시기도 또 하나의 변수가 된다. 차의 맛과 향의 다양성에는 그 한계가 없는 것 같다.

글쓴이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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