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억을 믿지마라...조작됐으니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니시카와 미아 여성감독의 영화 ‘유레루’ 기억은 심리에 따라 어떻게 조작될까

영화 '유레루'의 한 장면
영화 '유레루'의 한 장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상대방이 자기 말을 믿지 않는 눈치가 보이면 고개를 치켜세우고 내뱉는 말이 있다.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라든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시각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시각이 과연 그렇게 믿을 만한 감각인가 의심하는 순간과 만나게 된다. 시각을 바탕으로 한 기억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격언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영상이나 사진은 편집으로 감쪽같이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에 의한 시각적 ‘기억의 조작’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대로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탁월한 영화 ‘유레루’

지난 2006년에 발표한 니시카와 미아 감독의 <유레루>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계속해서 관객의 혼란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일본의 여성 감독 니시카와 미아의 작품이다. <아주 긴 변명>,<우리 의사 선생님>등도 감독했던 그녀는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게 설득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유레루>란 흔들리다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 동생으로 나오는 오다기리 죠, 형으로 나오는 카가와 데루유키는 외모에서부터 여성편력, 생활방식까지 판이하게 다르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형제는 첫 장면부터 서로의 관계가 원만치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자아낸다. 오다기리 죠는 스타일만 멋진 것이 아니라 포토그래퍼로서 창작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도시에서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 있는 반면, 형인 카가와 데루유키는 고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버지가 경영하는 주유소 사업을 도우며 늘 기름 냄새에 절어 살아간다.

멋진 동생은 당연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외모나 능력도 별로인 형은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노총각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인 여성 한 사람으로 인해 두 사람의 억눌린 감정은 엇갈리며 전혀 엉뚱한 곳으로 전개된다. 면역력이 취약해지면 병이 발생하듯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첩첩이 쌓여온 형제간의 갈등과 억압된 감정들은 위급한 상황이 되자 마치 이성과 도덕으로 치장한 피부가 찢어지고 고름이 밀려 나오듯 노출된다.

문제의 발단이 된 이 여성과 두 형제 사이에는 각기 다른 의미의 관계가 형성된다. 형은 진지하게 이 여성을 좋아하지만, 동생에게 그녀는 그냥 잠깐 즐기는 대상에 불과하다. 이 여성은 두 형제에게 억압돼 있던 정서를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의 역할을 한다. 이 여성이 아니라면 어쩌면 두 형제는 피부밑 깊숙한 곳에 깔려 있는 자신들의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 적확히 짚자면 깊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찜찜하기 짝이 없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 동네에는 어린 시절부터 건너다녔던 흔들거리는 다리가 있었고 그 밑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어린 시절, 형은 동생의 손을 꼭 붙들고 이 다리를 지나다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낡고 위험해진 이 다리에서 공교롭게도 사고가 발생한다. 형과 함께 다리를 건너던 이 여성이 떨어져서 죽은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형제간에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가 촉발된다.

형이 여자를 죽인게 아닌가

사고 당시 다리 아래쪽에서 식물들을 근접 촬영하던 동생은 우연히 고개를 들게 되고 그 장면을 목격했다. 결국 형은 살인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는데 처음에는 형을 변호했던 동생이 자신의 증언을 번복한다.

사실 사고 당시 목격했던 상황은 정확하지 않고 애매했다. 사고장면의 회상을 어떻게 조작하는가는 그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형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었다고 짐작한 동생은 의심을 키우기 시작하고 자신의 기억도 조작한다. 부정확한 부분을 메우는 것은 심리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유레루'의 한 장면.
영화 ‘유레루’의 한 장면.

이보다 더 극대화한 영화가 있다. 한참 일찍인 1950년에 발표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다. 숲속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전혀 다른 증언을 한다. 오프닝 씬에서 화자는 자신이 살면서 들은 가장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라고 서두를 꺼낸다. 무서운 것은 살인사건 자체가 아니라 객관성을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그런 근거가 없어진다는 것은 혼란 그 자체이며, 무서운 일이란 바로 그런 혼란 속에 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늘 그런 혼란 속에서 산다.

어릴 때는 누가 천사이고 누가 악당인지 분명하고 세상은 흑과 백으로 명확하게 나뉘어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구분선은 희미해진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단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런 판단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도 생겨난다는 점은 긍정적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처지라면 이 상황이 다르게 보일 수도, 그래서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체험하고 인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하기가 힘들어진다. 나중에 보니 내가 틀렸다는 깨닫게 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믿는 것이 정말 그런 것인지 혼란스러워지고, 두 번 세 번 확인하거나 아예 입을 다물게 된다.

어린 시절 본 영화는 왜 다르게 기억될까

어린 시절에 감명 깊게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을 성인이 된 후에 다시 봤을 때 내 눈을 의심할 때가 더럭 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장면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수시로 발생한다. 나는 무슨 이유로 그 장면을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 더 좋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바닥의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바다와도 같은 내 무의식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일이 기억을 조작해왔던 것은 아닐까.

‘경험, 인상, 기억 흔적은 사후에 새로운 경험과 관련을 맺으며 수정되고 새로운 의미와 심리적인 효과를 부여받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들은 살면서 수시로 찾아온다.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면서, 자신을 성찰할 기회도 갖게 된다. 강한 믿음이 더 위험할 때가 많다. 자신을 너무 믿지 마시라.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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