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KUS가 쏘아올린 공, 유럽을 돌아보게 하다
EU 대외안보전략 송두리째 흔들린 이유는
[최수정 칼럼니스트] 미-영-호주간 신안보협약, 당황한 유럽
지난해초인 2020년 1월 31일 EU와 영국간 브렉시트가 본격 마무리됐다. 영국이 EU를 떠나는 것에 대해, 영국의 큰 실수라고 평가했던 의견이 다수였다. 그런 의견이 전반적으로는 맞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1년여가 흐른 2021년 11월 영국이 겪고 있는 물류대란, 식료품부족, 자동차 오일부족 등등 영국에서 들려오는 암울한 소식은 유럽인들이 옳았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 9월 15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미-영-호주간 신안보협약(AUKUS)이 EU 회원국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뒤통수를 세차게 쳤다.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일구어온, 정치경제적 안정을 통한 EU의 글로벌전략의 현주소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충격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세계의 중심은 이제 더 이상 대서양에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AUKUS 사태는 떠오르는 태양, 중국을 견제하는데 있어 프랑스와 독일이 해줘야 할 역할이 애매해졌음을 보여준 극적인 사건이라 할 것이다.

유럽은 높은 시장구매력와 복지, 풍부한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세계인들이 늘 닮고 싶고, 살고 싶고, 방문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오래된 역사유적이 보여주는 찬란한 20세기 이전 ‘서세동점(서양 세력이 동양을 점령한다)’의 모습을 생각하면 한번은 가보아야 할 곳이 유럽이었다. 국방에 대한 투자보다 복지에 무게를 둔 정책은 유럽을 선망의 국가들이 모인 집합체로 보이게 한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유럽은 2020년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는 그렇게 세계인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곳이었다.
‘태평양 중심’으로 대전환 중인 세계질서
그러나 202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심화된 미중의 갈등 양상을 보면서 세계인들은 확실히 새로운 세계질서가 태평양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미국은 AUKUS라는 앵글로색슨의 안보동맹을 발표해 버렸다. 과거 세계질서는 미국과 영-프-독의 테이블 위에 있었다. 지금의 세계질서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아시아 협력파트너들에게 넘어가버렸다.
유럽이 추구하는 세계질서는 미국과 동일하지는 않다하더라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인권존중과 같은 큰 주제에 있어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유럽의 시장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고 중국의존도는 매우 높아졌다. 전략적 자율성이 매우 낮은 유럽이 태평양 헤게모니 경쟁에서 미국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독일이 지난 9월 총선을 통해 16년 만에 정권을 교체하는 정치적 전환기에 있다는 점, 그리고 2020년 9월 1일에 발표된 독일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드러난 중국에 대한 중립적 태도가 동북아 문제에서 피해보기 싫다는 입장을 나타냈다는 점 등 혼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독일 같지는 않았으나 프랑스 또한 중국경제 의존도가 높다보니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발빠른 영국에게 일격을 당한 유럽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영국이 미국의 오른팔을 낚아챈 격이 된 것이 AUKUS이다. 프랑스도, 독일도 감히 상상도 못할 안보동맹체를 영국이 엮어버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국은 국제판세를 읽는 능력이 이들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프랑스는 물리적으로 호주와의 77조원 규모 디젤잠수함 수출 계약을 날려버렸다. 부랴부랴 독일과 프랑스가 중국 디커플링의 필요성을 인지한 것 같긴 하지만 체질상 급격한 중국 ‘디스’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21년 7월 킬대학에서 발간한 정책보고서는 EU가 중국으로부터 일방적 디커플링 정책을 시도할 경우 전체 평균 0.8%의 GDP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진단했다. 더 나아가 중국이 무역보복할 경우 1.0% GPD 손실이 발생할 것이며, 특히 독일은 더 높은 1.4% GDP 감소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영-호주의 AUKUS 대(對) 유럽의 동아시아 개입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의 AUKUS와 EU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경쟁적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스웨덴 ISDP(안보개발정책연구원, www.isdp.eu)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부분으로, 영국의 발빠른 동북아시아 개입정책은 EU의 발걸음을 더욱 바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ISDP 보고서에 따르면 EU 회원국들 간의 입장차이가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회원국들이 추구하는 개별적 동북아 정책은 영국의 AUKUS 창설과 같은 성과를 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입장차 여전한 EU회원국들
다가오는 2022년 상반기, 프랑스는 EU 이사회 의장국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를 통한 인도-태평양에서의 역할 증대를 위해 보다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르트스트림 2(Nord Stream 2)’, 즉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에 대한 미국의 독일제재 철회 문제로 독일은 EU 내에서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독일이 빨리 인허가 문제를 해결해 천연가스 사업을 본격화하라고 압박을 넣고 있고, EU 국가들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독일의 이기주의적 행태에 대해 비난하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겨울 유럽의 난방비용은 계속해서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U의 전략적 자율성이 가져 올 안보질서 변화
EU내 주요국가들의 입장도 각기 다른 상황에서, AUKUS와 관련해 프랑스는 ‘EU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를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결국 아프간 철수 사태와 함께 AUKUS로 인해 EU에서는 더이상 미국 들러리 역할을 그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런데 EU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할 경우 EU군대창설문제와 맞물리게 되고, 이는 기존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체제와의 중복성으로 인해 유럽 안보체제의 큰 그림이 달라져야 한다. 미국은 긴박해지고 있는 대만해협문제와 관련, 중국 봉쇄를 위해 인도태평양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은 NATO를 통해 대러시아 방어전선을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급작스런 자율성 확보는 역내안보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유럽 쪽에서 병력을 줄이게 될 경우 중동문제와 북아프리카 정세 안정의 직접적인 책임이 고스란히 EU에게 넘어올 것이다.
인도태평양에서 유럽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러한 책임을 떠맡으면서 EU가 인도태평양전략 역량을 강화할 여력이 있을까? 올해 겨울은 EU에 매우 추운 시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실물 경제의 인플레이션이 40년 이래 최대폭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건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안보위기가 유럽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지금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임에 틀림이 없다. 유럽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그 틈새를 공략하는 중국의 외교전략 또한 바빠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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