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도 학벌, 학력주의가 존재하는가?

독일은 졸업한 동문들을 중심으로 하는 학벌 같은 것이 없다. 사회에서 동문이라는 이유로 뭉치는 경우는 더더욱 낯설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 캠퍼스 전경.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 캠퍼스 전경.

지난 글에서 한국의 심각한 출산율 감소의 한 원인으로 한국 사회의 피로도, 특히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한 한국 학생들의 심각한 과로와 비용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이런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나)이 문제의 후속으로 필자의 지도교수(함부르크대학 법학과 알렉산더 프뤨스 교수)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독일 대학교육과 경쟁력 유지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이러한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는 한국인들이 자녀의 교육에 집중적으로 올인하는 이유가 “학벌”에 대한 열망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 탓이다. 이 열망이 사회적으로 발생시키는 비용은 사교육 시장을 육성시켰고, 학습의 일부를 사교육 기관이 담당하도록 하면서 과열경쟁을 심화시켰고, 우리 안에 내재한 불편한 경쟁 심리가 다양한 교육 문제로 나타나게 만들었다고 본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사회관계를 학벌을 통한 등수로 이해하는 왜곡된 시각, 명문대면 만사가 ‘오케이’될 거라믿는 위험천만한 사고는,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사회관계 곳곳에서 일상처럼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학벌’ 주제로 지도교수와의 인터뷰

필자 또한 한국에서 30대까지 살았기 때문에 무한한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소위 명문대학교를 졸업하면 누릴 수 있는 심리적 보상이 어떤 측면에서는 ‘노력한 대가’인 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사회에서나 개인 생활에서나 비교우위를 통한 경쟁이 우리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큰 틀일 수 있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어떤 현상을 파악하고 설명할 때마다 ‘비교분석’이라는 틀을 기본으로 내세우는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사회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필자 또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접하게 된 가장 큰 문화충격은 “경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 수 있으며, 비교우위의 심리적 우월성은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가치적 판단 기제로 작용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와중에 경쟁이 발전의 기반이 되지 않는데 독일 교육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지도교수인 알렉산더 프뤨스 교수와의 인터뷰를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아래와 같이 요약해봤다.

최수정: 한국은 소위 명문대라는 대학이 명확히 존재하고 대입성적을 통한 커트라인이 평생 학벌 자부심 또는 학벌 콤플렉스로 따라다닐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입성적이 학생의 미래에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한국 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재정적으로 매우 심각한 수준의 지출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학벌주의와 학부대학을 중심으로 한 동문 파벌이 존재한다고 보는가?

프뤨스 교수: 이는 매우 새로운 정보다. 부모와 자녀가 대학입학 과정에서 그렇게 많은 노력을 투입하는 것은 독일에서 낯선 모습이다. 우선 독일은 졸업한 동문들을 중심으로 하는 학벌 같은 것이 없다. 사회에서 동문이라는 이유로 뭉치는 경우는 더더욱 낯설다. 독일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증명은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에 있지 않고, 해당 전문가로서 자격(증)을 갖추고 있는가에 있다. 예를 들어 법대를 나온 경우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되고, 의사는 의사고시를 봐야 하고, 공학자들은 그 분야 학위를 취득하면 된다.

대부분 국립대학...연구역량 차이 없어

최수정: 독일은 학교에 따라 전혀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가?

프뤨스 교수: 개인적인 경험으로 평가해보면 여러 대학 사이에 강점과 약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다른 대학과 확연하게 차이 날 정도로 심각하지 않고, 대부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대학 어느 과에 따라 매우 명망 높고 연구능력이 뛰어난 교수는 존재할 수 있으나, 그런 현상이 소위 독일의 일부 대학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최수정: 그러면 독일에서 학벌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프뤨스 교수: 독일의 대학은 대부분 재정을 정부에 의존하는 국립대학 형태이며, 그 수준도 상당히 평준화되어 있다. 대학교의 연구역량이 학교마다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학교의 명망이나 학교의 동문파워를 보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마다 매우 개인적이고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공부할 대학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모교에서 교편 잡는 건 부끄러운 일

최수정: 독일에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해당 모교에서 교편을 잡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그런지,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는 건지?

프뤨스 교수: 독일에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할 경우 반드시 다른 대학에 가서 교편을 잡는다. 일부 주에서는 이것이 의무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나,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모두 그래왔고 그래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의 근간에는 독일사회가 추구하는 “학문적 부패”를 막기 위한 전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 임명된 관리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행정을 펼치면 부패의 고리에 걸리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과 유사하다. 모교에 머무르는 것이 부지불식간 ‘학문적 부패’에 쉽게 전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대학을 옮길 때 모교에서 오퍼를 받은 바 있었으나 당연히 거절했다. 퇴직하고 명예교수로 봉직하는 경우는 어떨지 모르지만 모교로 돌아가는 것은 독일에서 그렇게 좋은 선택으로 보지 않는다.

독일 대학의 강의실 풍경.
독일 대학의 강의실 풍경.

독일도 일부 경쟁을 받아들인다

최수정: 독일에서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경쟁을 요구하지 않는 논리는 현실에서 큰 문제는 없는가?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국 모두 비교우위를 통한 인재선발, 경쟁강화로 고도의 성장을 이루어내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의 고등학문 체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는가?

프뤨스 교수: 독일의 대학은 정부의 예산지원에 거의 100% 의존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교통비를 내는 것 외에 대학교육을 받는 비용을 전액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얘기다. 내국인, 외국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식 교육제도는 기본적으로 영미식의 경쟁주의적 교육제도와는 다른 식으로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학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강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에서의 대학교원 채용방식이 바뀌고 있다. 조교수가 되더라도 3년간의 실적평가를 통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정교수로 승진할 수 없다. 과거에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승진되는 절차였다.

대학에서 다양한 형태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시험 합격의 정원을 줄이거나 점수를 높이는 것으로 학생들의 노력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육제도가 학생들에게 다소 여유로운 시간을 보장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이 역으로 “나태”한 태도로 이어지는 경우도 당연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경쟁제도를 일부 수용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이다.(인터뷰 끝)

필자가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독일이 한국의 대학교육에 비해 다른 점은 경쟁하지 않지만, 모두들 자기 분야를 향해 진지하고 깊이 있는 정진을 이어가는 점이다. 어느 학문 분야나 기본적인 기준을 충족하면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는 태도는 학벌중심의 사회보다는 능력 중심의 사회를 지향한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명문대학을 나왔다면 그 사람말이 다 옳게 들리고 권위가 있다는 식의 태도는, 본질적인 사회경쟁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다. 학벌중심의 사회는 사회구성원간 이질감을 낳게 하고 결속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일의 교육체제가 반드시 우리에게 옳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독일에는 학력차별도, 학교간 순수혈통주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겠다.

글쓴이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