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나
비교우위를 목표하지 않는 독일 사회 수학경시대회 1등해도 초콜릿 한 개뿐 대학은 평준화...공부하고싶은 애들만 진학 태어나면서부터 경쟁해야 하는 한국과 대비
심각한 출산율, 국가위기 상황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필자가 한국 뉴스를 들으니 2023년 2분기 합계 출산율이 0.7%로 떨어졌다고 한다. 한국이란 나라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평가도 있고, 머잖아 한국인이 자연멸종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24년 한국 정부는 긴축예산을 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관련 지원정책에는 올해보다 25.3% 늘어난 17조 59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출산율 저하가 멈추거나 개선될까?
이번 글에서는 한국에서 10년이상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를 둘 낳고 살았던 필자의 경험을 보태어 한국 사회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의 한국에서의 10년은 결혼과 출산, 양육, 그리고 직장생활에서의 번민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만약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자녀를 둘까지 낳고 싶은 생각도 없을 뿐 아니라 자녀를 꼭 낳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부부에게 출산은 과도한 사회적 부담
직장여성에게 출산은 축복도 사회적 기여도 아닌, 능력의 다운그레이드 그 자체가 될 수 밖에 없다. 남녀가 교육의 기회 균등을 보장받았다면 출산이후 부부의 삶도 부부간 양성평등이 보장되어야 했을 것이다. 법으로 보장된 것과 달리 살아보면 그것이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이 자녀를 낳으면 결국 피할 수 없는 모성과 싸워야 하며, 저하되는 노동생산성의 비난을 오롯이 여성 혼자 견뎌내야 한다. 그렇다고 남성이 여유로와지는가 묻는다면 분명 그렇지도 않다. 늘어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의 양육부담이다. 심리적, 경제적 부담과 함께 사회적 기대는 여전히 온전한 직장인으로서의 노동생산성이다.
육아휴직이 남녀에게 모두 보장되어 있다고 남자가 자발적으로 육아휴직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남녀가 직장생활을 해서 유지할 수 있는 생활수준에서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측면의 문제는 이미 많이 논의되어 왔고 사회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사회가 가진 과도한 “경쟁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것이 이 “경쟁”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다른 식으로 말하면, 오늘날의 출산율 망국의 모습을 만든 것도 이 “경쟁”이라는 것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삶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처럼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경쟁문화를 권장하지 않는 독일 사회
계획에 없던 독일이주 10년 동안 아이 둘을 독일 교육체제에서 교육시키면서 필자는 독일에서 사는 삶이 한국에서의 삶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학교를 다니면서 “경쟁”, “비교우위”라는 단어를 듣지 않고 자란다. 아이들에게 과도한 경쟁체제의 당위성을 가르친다면 그 가정의 부모는 학교생활 중 언젠가 학부모 상담의 대상이 된다. 왜? 독일은 경쟁을 통한 승리를 아름다운 승리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수학경시대회 금상을 받아도 부상으로 초콜렛 한 개가 전부다. 이것은 아이에게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다른 친구들은 다른 분야에서 잘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 아이는 수학을 잘할 뿐이다.
경쟁사회의 룰을 포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초중고등학교의 등수가 사라진다. 그리고 대학의 경쟁이 사라진다. 대학은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곳이 된다. 포기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가는 곳이다. 공부가 체질상 잘 맞는 사람은 공부를 더 하면 되고, 공부가 안 맞는 사람은 대학을 안 가면 되는 것이다.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기에 일정 점수를 받아 대학입학자격시험(Abitur)을 통과한 사람에게 언제나 기회를 준다. 18세에 대학을 가든, 25세에 대학을 가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비교우위’에서 자유로운 독일의 고등교육
그렇다고 독일의 고등학문 수준이 낮은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의 대학은 졸업하기 매우 어렵게 되어 있고 교수는 학생들에게 강도높은 학업량을 매학기 부여한다.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 학문과 맞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대학을 중퇴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대학까지 무료로 가르쳐주는 대신 국가는 목표로 한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집중한다. 결국 그 과정을 이겨낸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고등학문을 받은 인재로 인정받는다.
독일에서는 엄격한 고등교육과정을 빠르게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을 일반적으로 전문가이자 엘리트로 본다. 어느 대학을 나오든 상관없다. 특화된 과정도 있지만 대학의 학문수준이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대학을 나오든 학위과정을 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독일인들은 왜 공부를 하는가? 바로 “자기동기부여(self-motivation)”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식의 공부 태도는 중고등학교에서 점점 심화되고 대학을 가는 아이들의 생각 속에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찍 도서관에 나와 두꺼운 전공서적을 끼고 앉아서 꼼짝도 않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걸까? 아이들의 생각이 여물어지고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 공부가 그들의 목표 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 아이들은 자기가 세운 목표를 위해 달린다. 이들 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에 바로 가지 않는 이유 역시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한국의 과도한 경쟁체제가 원인 아닐까?
독일의 경쟁없는 교육제도를 언급한 이유는 한국인들의 삶 속에 깊게 드리워진 경쟁체제의 트랙이 결국 한국과 한국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번듯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한국사회에서 들여야 하는 경제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어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한 사교육은 초등학교 예체능과외와 함께 주요과목별 사교육비까지, 필자가 듣기에는 엄두도 나지 않는 금액이다. 이것은 오로지 자식을 가진 부모의 몫이지 사회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초래하는 악순환은 부부의 노후설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학을 보내고, 결혼을 시킬 때까지 자녀에게 들여야 하는 경제적 부담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노후와 직결된다.
간단히 생각하면 과외 대신 적당히 학교교육만 받고 일정 수준의 성적을 넘기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주면 사교육이 필요없다. 본격적인 공부 과정은 대학이 되는 것이다. 대학은 연구중심의 대학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요구되는 학업수준을 마친 학생들에게 단계적으로 고등학문의 길을 열어주면 되는 것이다. 결국 고등학문의 수준을 높이고 우수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어야 국가경쟁력도 올라간다.
독일 교육제도 속에서 불만이 없을 수는 없지만, 독일 교육의 가장 큰 핵심이 “자율성”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나”의 선택이다. 사회가 나를 억울한 구조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잡지 않은 것은 나의 문제일 뿐이다. 가난해서 공부를 못했다거나 장애가 있어서 공부를 못했다는 건 독일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과정을 마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문제다.
대학진학이 아닌 다양한 선택의 길이 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대학을 가지 않고 보다 실용적인 전문대과정을 밟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아니면 더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삶을 윤택하게 누리는 길이 될 수 있다. 대학을 나온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가졌다뿐이지 그것이 바로 좋은 회사를 갈 수 있는 증명서는 되지 못한다.
독일에서도 인문사회학이나 문학을 전공하면 취직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럴 바에는 전문대를 나와 은행원이 되는 것이 낫다. 아니면 전문대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독일인들은 문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을 공부한다. 왜? 그걸 하고 싶으니까. 문학을 전공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도 하고 영화 산업에 뛰어드는 이들도 많다. 그건 그들의 선택일 뿐이고 그들의 삶의 질은 그들의 연봉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쟁을 통해서만 성장이 있을 수 있고, 성공이 보장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학교육을 평준화한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이들은 다른 것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 방과후 과정은 독일에서도 보편적이다. 부모가 일을 마칠 때까지 학교에서 다양한 방과후 학습을 하고, 자녀가 있는 부모는 오후 4시에 퇴근하여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갈 수 있다. 부부가 다른 직장에 다녀도 아이들 방학에 맞추어 같이 휴가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것은 부부의 당연한 권리다. 경쟁사회는 이런 자잘하지만 가정생활 유지에 중요한 것들을 용인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인 것이다.
경쟁사회추종의 미신,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물론 독일에 살면서 독일 정부가 출산과 함께 지원하는 다양한 혜택을 보면 독일이 한국보다 더 복지제도가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사회구성원 간 가열찬 경쟁구도를 통해서만 성장이 가능한 것처럼 믿는 “경쟁사회”에 대한 미신이다. 습관적인 비교가 생활화된 사회에서 누군가는 열위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우위를 차지한다. 그런 식의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열위로 대접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악착같이 노력하고, 안되면 편법을 써서라도 사회적 우위를 누리고 싶어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대학의 서열이다. 한국인에게 대학서열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한다. 교육제도에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 비교우위는 한국인들의 삶과 인생을 지배한다. 그 사고관념에서 탈피하는 것, 그 끝없는 경쟁의 트랙에서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한 개인의 선택일 때는 그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사회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한다면 비용을 나눠가지게 된다. 우리 사회가 경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출산율의 하락을 막는 근본적인 대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특징인 경쟁사회는 과도한 학업경쟁과 사교육, 노후빈곤의 악순환으로 연결되며, 그 가운데 자녀의 출산이라도 포기해야 “삶의 안정”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 주는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는 삶은 젊은 세대에게도 불행한 삶이다. 빛이 밝고 높을수록 그 그림자는 길고 어두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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