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이기면, 유럽에 봄이 올까?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러의 승리 분위기에 최악 시나리오 우려 푸틴은 큰 전리품, EU· 나토는 분열 불가피 동유럽 난민문제, 포퓰리즘 정당 득세도 ‘러시아가 원하는 유럽질서’에 거부감 강해
우크라이나는 끝나는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략한 지난 2022년 2월 24일 이후 벌써 전쟁이 약 3년째를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내건 기치는 ‘특별군사작전’으로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돈바스 지역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러시아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2주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한 것처럼 단기간에 우크라이나의 주요 거점을 점령한 후 원하는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당시 중국은 올림픽을 폐막한 직후였고 푸틴에게 그 올림픽 기간만을 피해 줄 것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대규모 군사훈련 정보를 획득하였음에도 차마 우크라이나 수도에 전격 군사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 시행되었다는 소식이 전세계에 타전되었을 때 모두들 “우크라이나는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온갖 분석을 통해 러시아가 이러한 특수작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전쟁이 아닌 단기간의 특수군사작전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우크라이나가 저렇게 질기게 버틸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사충돌을 2014년 러시아의 전격적 크림반도 병합과 같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크림반도 사태와는 달리 서구는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및 감축, 러시아 해외 자산 압류, 러시아 은행의 국제결제시스템(SWIFT) 퇴출, 전략물자 러시아 수출 금지, 서방 기업의 러시아 시장 철수, 러시아와의 인적·문화 교류 중단 등 러시아를 강력히 제재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허용하면서 미국과 서유럽은 제공가능한 무기를 빠르게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해 3월 25일, 러시아는 돈바스 해방과 우크라이나 군사력 파괴가 성공적이었다는 자평과 함께 제1차 과업을 완수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때 초기 휴전협상이 시작된 적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원했던 요구사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포기 및 우크라이나 중립화, 비나치화, 비무장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허용, 크림반도 합병 공식인정 및 돈바스 지역의 독립국화였다. 결국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협상은 결렬됐다.
그 후 러시아가 몇 주안에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對)우크라이나 특수작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2023년에 공식적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특수작전을 전쟁상황으로 언급하는 수준으로 양측의 격전은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이어졌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대응할 정도의 자체 방어력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서유럽의 전폭적인 지지가 바로 우크라이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특히 지난 21개월간 미국의 지원이 없었으면 우크라이나가 대러시아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전쟁 피로감
그러나 이런 미국의 지원이 지금 위기에 놓여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의회에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614억 달러(약 80조원)가 미 하원에서 승인받지 못하자 12월 14일 개최된 EU 정상회의에서 500억 유로(약 71조원)의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가 거부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의 경우 반우크라이나 정서가 센 공화당 의원들이 미국 본토 남부국경문제를 우선 해결하지 않고는 우크라이나 지원법안을 통과시켜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EU에서는 헝가리가 자국에 대한 보조금 지급금액이 민주주의 퇴보와 사법부 개혁 미비를 빌미로 지급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지원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Kiel Institute for the World Economy, IFW)에서 2023년 12월 7일에 발표된 “우크라이나 지원약속 추적”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약속된 원조는 2023년 8월부터 10월 사이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2022년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90% 감소한 수치다.

이렇게 우크라이나 지원의 핵심축을 이루는 두 곳에서 재정지원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일제히 모든 언론에서 우크라이나가 2024년에 패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쏟아내고 있다. 신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이기게 된다면?
미국과 EU에서 재정지원법안이 부결되자 쏟아진 언론 기사들의 제목이 바로 “만약 러시아가 이긴다면?(what if Russia wins?)”이었다. 전 독일연방 국방부 참모총장인 니코 랭과 뮌헨 연방군사학교 교수인 카를로 마살라는 EU가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에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외에도 더 큰 목적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러시아가 만약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이는 유럽의 실질적인 분열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본다.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가 가져올 도미노 효과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영구적 분열, 핵무장 요구 세력의 대두, 극우세력 확대 등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러시아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자행해 왔던 숙청, 살인, 아동 납치 및 고문 등의 폭력적 사태가 상시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끝없는 난민행렬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고 지금의 난민도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난민 문제보다 심각한 동유럽난민문제가 닥칠 것이며, 이는 EU 전 회원국의 안전을 근본적으로 흔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EU 각 회원국들, 또는 NATO회원국들이 느끼는 극도의 안보위협, 이로 인해 발생하는 회원국내 정치의 분열상황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먼저 각국의 많은 정치세력들이 극우화될 것이다. 포퓰리즘 정당이 정치중심에 등장하면서 NATO 회원국들의 탈퇴, EU 회원국들의 탈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서유럽 주요 국가내 존재하는 극단주의적 좌파와 우파들이 연합정권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러시아가 원하는 유럽질서 속에 종속되는 것이 자국의 안전에 유리하다고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는 EU 외곽에 존재하는 친러시아 세력들에게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시켜주고, 세계 질서가 러시아, 중국, 이란 그리고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UN을 통해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종국에 이는 EU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세계 질서의 종말을 의미하며, 그 비용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들어가는 비용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수준에 해당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전망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예상과도 거의 일치한다. 이 신문은 그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자행한 대량 학살, 거세, 강간, 고문, 아동 납치 등 끊임없는 인권유린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며, 유럽으로의 대량난민 발생, 그리고 유럽정치의 극우화가 도미노처럼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푸틴에게는 세계 밀생산의 1/4에 대한 가격결정권을 안겨줄 것이다. 이로써 그는 핵무기, 가스에너지, 그리고 식량까지 무기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푸틴의 성공은 NATO의 무력함을 증명하는 것이고, 유럽의 안보분열 가속화와 함께 전세계적 국지전의 수출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란 전망도 함께 한다.

러시아가 원하는 휴전이 가능할까
이 때문에 미국과 EU가 러시아 승리를 인정하게 된다면 NATO의 분열과 함께 핀란드, 발트 3국에 이르는 더 큰 규모의 대치상황이 유럽에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규범에 입각한 세계질서 추구’라는 공공재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원하는 질서가 유럽을 지배하고, 유럽의 붕괴를 의미하게 된다. 유럽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지원을 포기하는 것은 지금의 대가보다 더 크고 더 엄중한 위협을 알면서 스스로 용인하는 꼴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존립에 관한 문제다.
따라서 2024년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우크라이나와 평화조약을 맺거나 휴전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당장 유럽의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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