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함께’ 해야 하는 언어학적인 이유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대항’의 With, 언제 ‘함께’라는 뜻 됐을까
- ‘에티모버스’는 어원을 뜻하는 é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저자가 합성한 말이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의 올바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말은 우리가 쓰는 언어에도 적용된다. 오늘날 무심코 쓰는 어휘들의 어원에는 개념이 처음 형성될 당시 사람들의 사유가 비유와 함께 담겨 있어 인류의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심오한 세계관을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는 이후 변화의 궤적 탐색을 통해 지금 우리 생각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게 해 주고, 이로써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해 준다.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 교수]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정책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하였다. 중증 환자 위주로 관리해나가며 차근차근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정책이다. 이를 일각에서는 ‘위드 코로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올바른 영어 표현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일본의 언론에서 만든 말을 우리 언론이 직수입해서 쓴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옳은 지적이다. 과연 이 말은 일반적인 영어권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코로나’(corona)는 영어권에서는 coronavirus 혹은 정식 명칭인 ‘Covid-19’이라 하고, 또 전치사 with만으로는 의도한 의미를 전하기에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와 함께 살기’를 뜻하는 ‘Living with Corona-19’와 같은 표현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with의 놀라운 변신...마치 코로나19처럼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전치사 with(위드)의 의미이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함께’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어휘는 처음부터 그러한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인 ‘~에 대항하여’(against)의 의미로 쓰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대립’을 뜻하다가 이후에 정반대인 ‘공존’을 뜻하게 된 것이다. 이는, 놀랍게도, 지금 인류가 처해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황 변화와 너무나 흡사하다. 처음에는 코로나를 퇴치하려고 방역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이제는 코로나와의 공존을 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영어(Old English)에서 with는 ‘~에 대항하여’(against)나 ‘~의 맞은편에’(opposite), 혹은 ‘멀리’(away), ‘~와 떨어져서’(apart) 등의 뜻을 가졌었는데, 이는 현대 영어의 여러 단어에서 그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우선 withhold(주지 않다)는 어떤 것을 자신만이 가지고(hold) 남에게 주지 않는다(against)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with는 ‘남에게 대항해서’라는 뜻을 내고 있다.
또 다른 단어 withstand(견뎌내다)는 그저 단순히 서 있는(stand)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에 대항하여(against) 견뎌내거나 이겨내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도 with는 외부적 환경이나 조건에 대항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withdraw(철수하다, 물러나다)는 끌어당긴다는 뜻의 draw에 ‘멀리’(away)라는 뜻의 with가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이 세 어휘 어디에서도 ‘함께’라는 뜻은 찾을 수 없다.
자주 쓰이지 않는 동사이지만 withsay와 withspeak를 아시는가? 이들의 의미는 결코 “함께 말하다”가 아닌데도 종종 학습자들이나 사전을 찾지 않는 귀차니스트 번역가들이 잘못 해석하는 동사들이다. 여기서도 with는 대항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직역하면 ‘~에 대항하여 말하다, ~와 반대로 말하다`가 되어 이들 동사는 ‘부인하다, 반박하다(deny, contradict)을 뜻한다.
with의 어근이 독일어에서는 wider가 되었는데, 이것은 현대 독일어에서도 아예 본래의 의미인 ‘~에 맞서서`(against)를 뜻하게 되었다(‘함께’는 mit가 맡게 되었다). 그래서 withsay, withspeak와 동일한 구성인 독일어 widersagen, widersprechen도 `부인하다, 반박하다, 반대 의견을 말하다’를 뜻한다. 네덜란드어 동사 wederzeggen(weerzeggen)와 weerspreken도 마찬가지다.
한편, ‘과부, 미망인’을 뜻하는 widow도 고대 영어 widewe에서 온 말로 이 역시 with와 같은 어원으로 ‘~와 떨어져서’(apart)라는 의미가 발현된 것이다. 즉 남편과 분리된 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함께’라는 관념은 없다.
이렇듯, 고대 영어에서 ‘대항하여’, ‘멀리’, ‘떨어져서’ 등을 뜻하던 with가 중세 영어(Middle English)에 이르러 ‘연합’, ‘결합’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된 것인지가 참으로 궁금하다. 일반적으로는 고대 스칸디나비아어(Old Norse)의 ‘vidh’가 ‘함께’를 뜻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또한 라틴어 ‘cum’의 영향도 받아서 그 의미가 ‘함께’로 바뀌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그 같은 의미의 이동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위드 코로나’도 최고의 성과를
어차피 이 부분은 추정 이외의 것은 불가능하니 편하게 추정을 해 보자. 필자의 생각은 이러하다. 어떤 미지의 물체가 내게 접근해 온다면 이것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견뎌내거나 이겨내거나 회피해야 할 것이다. 모두 대항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미지의 물체가 ‘접근해 온다’는 개념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리고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이는 곧바로 인접성과 머무름으로 인해 ‘동반’의 의미로 전환하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고 있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접근해 올 때 우리는 이에 대항하여 싸우고 견디고 이겨내거나 최대한 회피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첫 단계에서 행했던 방역이요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에게 접근한 바이러스는 결코 떠나지 않고 이제 우리에게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게 된 이유이다.
영어의 전치사 with의 의미 전이는 우리에게 인간 사유의 전이를 설명해 준다. 미지의 것의 접근은 항상 처음에는 경계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대항이나 분리, 즉 회피나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 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함께 공존하는 것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사유는 변하지 않는다. 동일한 패턴을 반복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그 패턴을 거부하지 말고 거기에 잘 맞추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방역정책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제는 바이러스와 함께 가는 ‘위드 코로나’ 시대이다. 이 정책에서도 세계가 깜짝 놀랄 성공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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