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이’의 의미론적 평가, 그 너머 보이는 것은
[이창봉의 언어문화 산책] ‘전제’를 잘못 세워...해명도 ‘일탈적’ 윤석열 후보, 잇따른 표현 실수들 평소 ‘독서 안한 티’...후보 자질 의심돼
[이창봉 가톨릭대 영문학 교수]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방명록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는 문장에서 ‘반듯이’의 맞춤법이 틀렸다는 지적과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는 표현의 의미 해석 관련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진영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지적과 비판이 이어지자 이를 반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11월 12일자 기사)는 과거에 민주당 홍영표 후보도 ‘반듯이’라고 맞춤법을 틀린 예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윤석열 후보의 해명을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윤 후보는 ‘반듯이’를 ‘똑바로의 의미’로 쓴 것이며 “제가 과거 함께 근무한 호남 출신 동료들이 잘 쓰는 말이다. ‘반듯이 해라’ 이런 말 많이 해서 그렇게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의미적 논란을 언어학적으로 자세히 분석해 보자.

‘~을 반듯이 세우다’는 ‘~이 비뚤어짐’을 전제함
언어 현상은 신비하다. 화자가 한 문장을 발화했을 때 그 명제적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논리적 및 화용적 의미들(전제, 함의, 대화상 함축)을 함께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여기서 주목할 의미가 전제(presupposition)의 의미이다. 화자가 ‘~을 반듯이 세우다’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그것의 목적어가 ‘쓰러져 있거나 비뚤어져 있는 상태에 있다’는 전제의 의미를 함께 전달한다.
‘전제’란 문장 발화가 적절하기 위해서 화자와 청자가 그것이 참(true)이라고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명제를 말한다. 윤석열 후보의 해명대로 ‘반듯이 세우겠다’를 ‘똑바로 하다’의 뜻으로 썼다면 이 표현의 목적어인 ‘오월 정신’이 ‘쓰러져 있거나 비뚤어져 있다’는 전제를 함께 전달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재명 후보가 “군사반란으로 집단학살을 자행한 반국가세력 민정당의 후예인 국민의 힘 대선후보가 오월 정신을 반듯이 세우겠다고 하는 건 오월 정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의미로, 오월정신 모독”이라고 비판한 것은 의미론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문장 내의 전제가 성립하지 않거나 그 문장 바로 다음에 전제를 부정하는 문장이 오면 담화가 일탈적(anomalous)이 되고 혼동을 준다. 간단한 예로 필자가 “나는 더 이상 유니클로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을 하면 ‘더 이상’이라는 전제 유발 표현 (presupposition trigger) 때문에 “나는 유니클로에 간 적이 있다”는 전제(presupposition)의 의미를 함께 전달한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유니클로에 가지 않겠다. 나는 유니클로에 간 적이 없다”라고 그 문장의 바로 뒤에 전제를 부정하는 문장을 연속적으로 말하면 전체 발화가 일탈적이 된다.
이번 윤석열 후보의 방명록 문구 다음에 후보 본인과 윤 후보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해명과 설명을 모두 반영해서 담화를 연장해 보면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 오월 정신은 비뚤어져 있지 않습니다“라고 들린다. 바로 여기서 이 일탈적 의미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청자인 상대 진영 정치인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아무리 윤석열 후보가 해명을 하더라도 그가 방명록에 쓴 문장은 의미론적 측면에서 볼 때 전제가 부정된 의미적 충돌(semantic crash)로 인해 매끈한 문장이 아니며 그런 논란을 야기한 책임은 화자인 윤석열 후보 자신의 몫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윤후보 잇따른 설화...배경은 ‘독서 부족’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더욱 주목하는 것이 있다. 사실 윤석열 후보의 언어가 문제가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6월에도 윤석열 후보는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적은 방명록에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써서 어떻게 ‘새 지평선을 열다’라는 이상한 표현을 썼느냐고 비아냥적 조롱과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윤 후보는 왜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새 지평을 열다’ 혹은 ‘~ 정신을 기억하다/간직하다/새기다’ 등의 표현을 적절히 구사하지 못했던 것일까? 언어학 분야에서 의미적으로 잘 어울리는 연이은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널리 쓰이는 표현을 ‘연어(collocation)’라고 부른다. 한 언어를 고급 수준으로 구사하는 데에 있어서 튼실한 바탕이 되는 것이 이런 자연스러운 연어 표현을 많이 알고 적절히 사용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남의 말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익힌 많은 표현들을 이런 식의 연어 표현으로 자기 머리와 가슴 속에 저장하고 있다가 자기가 창조적으로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어 구사할 때 응용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읽기는 말하기와 쓰기에 먹이를 준다(Reading feeds on speaking and writing)”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책 읽기가 중요한 것이다. 바로 자기 머리와 가슴 속에 앞으로 응용할 표현들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윤 후보가 위에서 예를 든 기초적인 연어 표현들조차 확실히 자신의 언어의 일부로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평소 독서를 별로 하지 않았으며 그의 머리와 가슴에 있는 지식의 양, 생각의 깊이, 감성의 폭이 저급한 수준임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혹자는 그까짓 몇 번의 말실수로 너무 한 사람을 정치적 의도로 심하게 비판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이 말실수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정직하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 화자가 구사하는 언어 표현을 보면 그의 사람됨과 지적 수준과 생각의 깊이까지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운석열 후보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대통령 후보다. 그러기에 그의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좋든 싫든 검증과 평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윤 후보의 일련의 말실수와 부족한 언어 능력은 그가 국사(國事)를 책임지고 총괄할만한 소양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충분히 의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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