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 유일한 ‘한국학교’를 아시나요?
[신나리의 피라미드에서 아침을] 1979년 외교관 직원들과 교민들 합심 “아이들에 우리말과 글, 문화를 가르치자” 교육부 인가받은 정식학교...’코리아’ 자부심도
[신나리 이집트 통신원] “이집트에 가면 아이들은 학교 문제를 어떻게 해야해요?”
필자가 처음 이집트 카이로에 주재원 가족으로 올 때 아이들은 한국 학령으로 초등학교 2학년, 5학년이었다. 가장 큰 고민은 당연히 아이들 교육문제. 첫째 아이는 4년동안 한국 교육을 받았기에 읽기, 쓰기 등의 교육이 되어있어서 별다른 걱정을 안했다. 그래서 국제학교를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딸인 둘째 아이는 이전에 머물렀던 중국에서 현지유치원을 다녔고, 한국에 있는 동안 잠깐 한국 교육을 받은게 다였다.
언어능력이 폭발하는 시기라는 초등 3학년에서 5학년 시기에 이집트에 오게 된 탓에 국제학교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유일한 한국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마음의 위로는커녕 오히려 심적 갈등만 커졌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보통 모국어의 어휘 구사, 읽기 역량에 따라 제 2 외국어 습득 속도도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4년이라는 기간동안 국제학교에 보내 ‘영어교육’ 시키는데 올인해야 할지, 아니면 한국학교를 보내 아이의 모국어 실력을 탄탄히 키워주는게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짧은 주재기간동안 국제학교에서 영어실력을 키우자고 결정하고 아이를 처음 2년 반 동안 ‘영국학교’에 보냈다. 고심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영국학교를 다니던 첫째 아이는 규모가 더 큰 ‘미국학교’로 옮겼다. 둘째 아이는 영어로 말하고 듣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모국어인 우리말의 어휘 습득 능력이 같은 또래 아이 만큼 성장하지 않아 불안이 찾아왔다. 그래서 1년 뒤 한국으로 복귀할 준비도 할 겸 ‘카이로 한국학교(Cairo Korean School)’로 전학을 결정했다. ‘한국학교’는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됐다.

체류하던 처음 2년 반 동안을 영어 듣기, 말하기 학습에 집중했던 아이에게 갑자기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배우게 한다는 게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한국에서 파견 오신 한국 초등학교 선생님의 정성어린 가르침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식 수업과 공부를 빠르게 받아들였고, 필자의 불안감도 눈녹듯 사라졌다. 그 학교 얘기를 해보려 한다.
아프리카 대륙 유일의 한국정부 인가 학교
‘카이로 한국학교’는 아프리카 대륙에 유일하게 우리정부의 인가를 받은 ‘한국학교’다. 한 반에 3~8명 정도를 수용하는 크지않은 학교지만 컴퓨터실, 소강당, 도서관, 교장실, 행정실 등 시설 갖춘 수준급 학교다. 한국에서 선발되어 온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학습이 부족한 부분에 맞춰서 지극 정성으로 가르치셨고, 영어수업도 하루에 2시간정도 배정해 국제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잊지않고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작년엔 코로나 팬데믹 임에도 선생님의 온라인 지도 아래 연극 연습을 한 뒤, 학예회에서 반 아이들 전체가 주연을 맡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학교는 처음부터 우리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고 건립된 것은 아니었다. 대사관 직원들들과 교민들이 협심해서 만든게 그 시초였다. 1979년 세워진 후 40년 넘은 역사를 가진 ‘전통의 명문학교’인 셈이다. 이집트내 전체 한국 교민이 10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좋은 선생님과 교육환경으로 상당히 수준높은 학교라 할 수 있다. 북아프리카라는 먼 나라에, 경제적으로도 풍족치 않은 열악한 곳에 이렇게 훌륭한 학교라니, 너무 감동적이지 않은가?
공로명 대사와 교민들 합심 “한국을 가르치자”
이 학교의 시작에는 당시 주이집트대사로 부임하셨던 공로명 전외교부장관의 공이 컸다고 한다. 당시는 전교생이 30여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교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사관저 지하실에서 초등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했고, 대사관저 뒷뜰에서는 고학년들의 수업을 진행했다 한다. 선생님은 교사자격증이 있는 교민분들 중에서 서로 돌아가며 아이들의 수업을 진행했다고 교민들은 기억한다.
생각해 보라. 구한말 조선에 왔던 언더우드 가문 정도는 아니어도, 머나먼 타국 이집트에서 자녀들이 국제학교만을 다니는 게 안타까워 우리의 글과 말, 문화를 가르치겠다며 대사관과 교민들이 합심해 설립한 한국학교. 그리고 대사관저에서 우리말을 배우던 한국 아이들. 나중에 우리 정부 예산으로 학교를 정식으로 건립할 때 교민들과 현지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건물 공사비 일부를 십시일반 기부했다고 한다.
1979년부터 2021년까지 이 학교를 졸업한 한국 학생은 모두 53명. 이곳에서 공부했던 아이들중 몇몇은 어른이 되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기도 했다. 한산글로벌 이응석 사장, SH케미컬 김민구 이사가 주인공인데, 현재 이집트에서 큰 사업 등을 진행하며 산업역군으로 멋진 활동중이다.

모래 먼지가 가득하고 교민이라곤 몇 명밖에 없는 이 땅에서 ‘코리아’라는 학교 간판을 걸고 아이들에게 조국의 정서를 가르치고 지킨 우리의 부모님과 대사관 분들의 정성과 열정 ,기업의 후원 등. 이런 것이 없었다면 카이로 한국학교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이 학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한 우리나라 교육부가 인가한 학교다. 이곳에 있는 국제학교 중에는 유명한 미국학교 CAC, CCS, AIS가 있고, 영국학교 MBIS, NCBIS, MCS도 있지만 ‘카이로 한국학교’도 당당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6학년제에 학년마다 한반씩 운영되며 전체 학생은 30명 남짓이다. 교육부 인가를 받은 학교인 만큼 우리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으며, 선생님도 한국에서 선발되어 왔다. 교직원은 김인봉 교장선생님을 포함해 6명의 선생님과 행정실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졸업생 53명중 이집트로 돌아와 사업하기도
우리 가족중 홀로 ‘카이로 한국학교’에 다니고 있는 둘째는 내년 1월에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주재원인 남편의 주재 기간이 연장된 덕에 졸업까지 무사히 할 수 있게 됐다. 이 학교의 졸업생 수가 53명에 그치는 것은, 외국학교와 학제가 맞지않아 보통 6학년 2학기에 국제학교로 옮겼기 때문인데, 올해 새로 부임한 김인봉 교장선생님이 졸업식을 내년 1월로 당기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 바람에 다른 국제학교의 2학기가 시작할 무렵인 1월에 졸업식을 갖게 됐다. 이번에는 무려 4명의 우리 아이들이 졸업장을 받게 된다.

앞으로 많은 교민 자녀들이 카이로 한국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들이 다음세대를 위해 이 나라를 돕고 살리는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지난 2019년 카이로 한국학교 40주년을 맞아 손병철 전 교장선생님께서 쓰신 시(詩)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살구나무 아래 제자를 가르치던 공자처럼
한국인 아이들을 병아리처럼 품어
카이로 한국학교 명패를 내건후
뿌연 모래바람을 헤치고
까따미아에 배움의 촛불을 밝혔다.
대사관저를 뛰어놀던 아이들은
미국으로 한국, 유럽으로 햇살처럼 퍼져가고
한글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할머니가 되고
청년같았던 태권도 사범님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봉황목 가지뻗어 하늘을 가려도
태권도 기합소리
쿵더쿵 장단 소리 울려퍼지는
카이로한국학교는 영원하리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