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사람들은 뭘 갖고 시위할까
[신나리의 파나마에서 살아남기]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옮긴 우리가족 3개월만에 목격한 파나마의 대규모 시위 군대 없는 나라, 경찰력도 부족...시위 확산세 중남미 3대 부호국이지만 ‘정권 부패’ 못참아
카이로에서 파나마로...정처없는 주재원 가족
지난 7년간의 이집트 카이로 생활을 뒤로 하고 중남미로 넘어왔다. 남편이 2023년 5월 갑작스럽게 파나마라는 새로운 나라로 주재지 발령이 나면서 중남미 하늘아래 살게 됐다. 중국, 이집트, 파나마. 언제쯤 고국에 정착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은 우리 가족의 가장이나 자식들, 나에게 또다른 기대와 설렘을 던졌다. 그리고 이 곳에 온 지 3개월이 됐다.
파나마는 북미와 남미사이에 있는 ‘개미 허리’같은 위치에 있는 나라다. 인구 430만명 정도다. 1900년대 초까지는 콜롬비아의 영토였으나 1903년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했다. 특이하게 ‘발보아’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화폐는 사실상 달러이며, 동전만 생산할 뿐 나머지 지폐는 모두 미국 달러를 쓴다.
최근 여러차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언급해서 다시 한번 관심을 끈 곳이 바로 파나마다.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출장지가 어디냐’는 삼성 직원의 질문에 그는 “출장 가면 보통 현지 매장을 점검하거나 호텔에서 운동하는 편인데, 파나마 운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거대한 풍경도 장관인데 인간의 지혜와 노동력으로 위대한 자연의 힘을 활용했다는 게 놀라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파나마 운하’는 바로 파나마 공화국의 랜드마크다.
시위대 막을 경찰, 군대가 없다
파나마 운하 또한 1999년까지 미국이 관리하다 그 후에 파나마로 권리가 이전되었으니 얼마나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큰 나라이겠는가? 다음에 파나마 운하에 대해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이집트에서 수에즈 운하를 본 경험이 있으니 두 운하를 비교하는 글을 올릴 생각이다.
이 곳에 온지 3개월 밖에 안됐지만, 벌써 이 나라의 정치가 궁금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의 시위’ 때문이다.
최근 집권중인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대통령이 ‘꼬브레 파나마’ 구리 광산의 40년 조업 계약 연장을 승인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자 나도 한국에서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일이 생각났다.
파나마 정부는 지난 10월 23일부터 시위가 격화되자 각급 학교들의 대면 수업을 금지하고 온라인수업을 진행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시위 사태가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한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갑작스럽게 도로가 통제되어 동네를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다른 길을 찾아 헤매어 20분이면 돌아올 길을 한 시간 반이나 되어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파나마에는 군대가 없다. 미국에서 파나마 운하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파나마 정부가 공공군대를 갖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규모 집회가 발생할 때 시위를 통제하거나 제지할 병력이나 경찰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파나마의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11정도 밖에 되지않으니 도로를 막아버리면 어디를 가지도 못하는 형국이 된다.
“부패정권 계약 철회하라”
지난 10월 20일 발생한 시위는 “파나마 정부와 캐나다 회사인 미네라 파나마 간의 광산개발 계약 승인법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파나마의 수도인 파나마 시티와 아라이한 등과 같은 도심 외곽에서 시작되어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사람들이 막고, 도로 앞에서 나무를 불태우며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점령하고 도로를 봉쇄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대통령 궁과 우리 가족이 살고있는 지역인 punta pacifica, calle 50, cinta costera 등에까지 수 천명의 시위대가 진출하며 법 승인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한편, 자신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시민 단체들은 “국회에서 통과된 이 법에 많은 자문과 연구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만에 결정이 된 것”이라며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캐나다 회사에 광산의 운영권을 40년 동안 더 가질 수 있게 하는 법인데, 구리 광산의 개발로 인해 빈민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크지 않으며 그로 인한 자연 파괴 등 더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 정부에 크게 화가 난 모습이다.

파나마도 급등한 물가에 ‘민심 흉흉’
대통령 궁 근처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는 파나마인들은 이번 일에 이어 그 다음에는 공립학교 선생님들,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자신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시위를 벌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파나마 도심 시위에는 인플레로 인한 시민들의 신음이 깔려있다. 지난 7월에도 가파른 물가 상승에 반발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달러를 사용하는 파나마는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생필품과 공산품을 자체 생산하는 것 보다는 수입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인플레 고통을 감내하기 어렵게 되자 시위에 나섰는데, 앞으로 다른 곳으로 번져나갈 조짐이다.
이 곳에 7년을 넘게 살아온 한국의 주재원 가족은 “이렇게 격렬한 시위는 처음 본다”며 적잖이 놀라는 눈치이다. 도로가 봉쇄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한다. 마라톤 대회를 한다든지 하는 큰 행사로 인해 봉쇄된 적은 있었지만, 시위로 인한 교통통제는 처음이라는 반응이다.
한인 가족의 안주인은 “20년동안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한번씩 외곽에서 시위는 있었지만 대체로 무척 평화로운 나라거든요. 최근에는 기름값이 오르자 멀리서 채소를 재배하는 분들이 물류비용 상승에 대해 저항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파나마 정부는 바우처등을 통해서 그 분들께 보상을 했어요. 파나마는 중남미에서 3번째로 잘사는 나라이고 꽤 민주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1990년에 이미 여성대통령도 선출된 적이 있거든요. 어떤 분들은 내년 대선 때문에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세력이 있을거라는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이렇게 학교까지 닫으며 시위를 하는 모습이 너무 어색하네요. 대통령이 엊그제 대국민 발표를 통해 더이상 광산개발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시위대나 시민단체는 그 정도에서 시위를 멈출것 같지 않아 걱정이에요. 수퍼에 조금씩 물건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얼른 장을 봐두세요”라 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팬더믹때 이미 온라인 수업을 했던 터라 큰 타격이 없지만, 도로 폐쇄와 지하철 운행 중단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가지도 못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필자 또한 파나마 대학교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수강 중인데 온라인 수강으로 전환해야 했다.
불안하게 시작하는 파나마 살이
이 시위를 틈타 과격한 사람들은 상점을 부수기도 하고 상점에 침입해 물품을 약탈하기도 했다. 파나마 주민들이 낯선 우리는 꼼짝없이 집안에 틀어앉아서 이번 사태가 평화롭게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지구촌 전체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정착한 지 3개월밖에 안된 파나마의 불안정한 시국으로 이방인 가족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외국에 산다는 것은, 가끔은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여러가지 상황을 내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다. 이곳에 온지 세 달 만에 중남미의 매운맛을 본 걸까? 뉴스에선 11월 중순까지 시위대가 시위를 계속할 지도 모른다고 하니 파나마 살이가 예상치 못한 마음고생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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