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니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 순간에서] ‘우리의 무죄’를 증언해줄 목격자를 찾을 수 있을까

일본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의 한 장면. 주인공 텟베이는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한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의 한 장면. 주인공 텟베이는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한다.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가볍게 웃어넘길 만큼 사소한 일이라도 의심을 받게 되면 억울하기 그지없기는 마찬가지다. 분명한 사실이 부인당할 때 증명할 길이 없는 상황이라면 숨이 막힐 것 같고 고구마 백 개쯤 한꺼번에 먹은 듯한 답답한 기분이 된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어느 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필자의 집 식탁은 6인용인데 1인용 의자가 6개 대신 3개만 있다. 대신 맞은편에는 3인용의 긴 벤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벤치에는 등받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 등받이 없는 벤치가 사건의 발단이 됐다.

기억은 거짓을 만들고

주방 공간을 넓히기 위해 가로로 놓았던 식탁을 세로로 바꾸면서 필자는 싱겁지만, 기가 막힌 시비에 휘말려들게 됐다. 원래 위치에서는 벤치 의자의 뒤에 벽이 있어서 등받이가 없어도 벽에 등을 댄 채 식사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위치를 변경하자 벤치에 앉을 때 등을 기댈 데가 없어졌다.

남편은 갑자기 왜 의자를 새로 바꿨냐면서 원래 여기 있던 등받이 의자는 어디에 뒀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처음에는 싱거운 농담인 줄 알았다. 이 식탁을 쓴 지가 5년은 됐을 텐데, 설마 여태 등받이 없는 벤치형 의자에 앉아서 식사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러나 남편의 표정은 너무 진지했다. 원래 등받이 없는 벤치였음을 믿지 않았다.

필자는 증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원래 등받이가 없는 3인용 벤치라는 걸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미 성인의 나이기에 최소한 그 정도 사실은 증명해줄 거라고 믿었던 아이들조차 식탁 한쪽에 등받이 없는 벤치형 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원래 등받이 의자 6개가 아니었냐고 물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필자는 꼼짝없이 의자 3개를 버리고 3인용 벤치로 바꾼 범인이 돼 버렸다. 기억은 이렇게 거짓을 만든다.

백번을 양보해 아이들은 늘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았던 터라 기억을 못한다고 치자. 남편은 식사 때마다 늘 벤치를 밖으로 끌어내 앉곤 했는데도, 매일같이 자신이 어떤 의자를 끌어내고 있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만약에 이 일이 심각한 경우였다고 한다면 필자는 꼼짝없이 증인 한 사람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 신세가 될 터였다.

‘무죄 증명’이 그리 쉬울까

어쩌다 일이 꼬여서 송사에 휘말렸다고 치자. 자신의 무죄를 쉽게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그 당시 주변에 목격자들이 많았다고 치자. 그들 중에 누군가 자신의 무죄를 증언해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너무 뻔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주변에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을 찾아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상식에 가까울 만큼 당연한 것일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삶은 상식적이지도 산술적이지도 않더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신뢰감을 잔뜩 싣고서, 당당하게 달고 다니는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공정한 기관이 아닌 것이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의 한 장면. 주인공 텟베이는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려 경찰에 집힌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의 한 장면. 주인공 텟베이는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려 경찰에 집힌다.

일본 사법시스템 고발하는 영화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2008년에 개봉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일본 영화로, ‘홍상수의 남자’ 카세 료가 주연을 맡았다. 형사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99.9%가 유죄로 판결되는 일본 사법 시스템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영화다. 카세 료는 이 영화로 그해 각종 일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수오 마사유키는 ‘쉘 위 댄스’를 연출한 감독.

가네코 텟베이(카세 료 분)는 만원 전철에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오인을 받는다. 그는 목격자를 찾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하지만 초만원 지하철에 탄 수많은 승객 중 그가 치한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줄 목격자는 없었다. 여학생은 자신의 엉덩이를 더듬던 손이 텟베이의 손이라고 믿는다. 텟베이의 변호사는 현장과 똑같은 상황까지 만들어 재현하면서 텟베이가 치한으로 오인되는 과정을 관객에게 설득시킨다. 텟베이가 치한이라고 생각한 여학생의 주장은 누가 듣기에도 허점투성이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여학생은 치한의 소매를 흘낏 본 것에 불과했고 사람들과 섞여 전철에서 내리면서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은 텟베이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로 꽉 차 있지만, 누구도 치한이 한 짓을 보지 못했고 오직 자신의 부분적인 시각적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던 여학생은 자신이 용케 잡은 범인을 결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범인을 제 손으로 잡았다는 사실, 분노를 투사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이 그나마 자신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말하자면 자신의 위안을 위해선 희생물이 필요하다. 옷소매 색깔이 비슷하고 동선의 방향이 비슷하다는 어설픈 이유만으로 꼼짝없이 치한으로 내몰린 텟베이는 처음에는 법의 공정성을 믿는다. 자신이 범죄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

주인공의 “항소하겠습니다”와 영화 ‘재심’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범죄자’라고 규정된 틀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사법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스템 유지 이외에는 다른 목적성에 관심도 없다. 그가 어떤 사연으로 그 틀 안에 들어오게 됐는지, 그가 그 상황 안에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어떤 식으로든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에게는 정의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시스템은 감정도, 결백을 증명하려는 진실 따위에도 관심이 없다. 자신은 결백하니까 어떻게든 증명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달은 후에도 텟베이는 자신의 결백에 대한 주장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엔딩 씬에 나오는 선명한 텟베이의 목소리, “항소하겠습니다”는 낭랑하고 당당하며 사뭇 발랄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일본에서 형사 사건의 99.9%가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형사사건 기소는, 사법 시스템은 과연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라도 누명을 쓴 사람이 있을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서 판사는 한 번이라도 의심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은 시스템에게 판단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맡겨버리는 책임 전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험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코 포기 하지 않은 것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또 다른 특성이며 인간이 위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영화 중에 <재심>이라는 영화가 있다. 2017년에 발표된 이 영화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한 청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청년은 ‘재심 전문 변호사’의 조력으로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대비되는데, 사법정의에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준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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