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부부싸움에 국제기구가 끼어드는가?

ESG 앞세운 규제가 우리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자신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에 대해 ESG활동을 공개하라는 주주의 요구를 거부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자신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에 대해 ESG활동을 공개하라는 주주의 요구를 거부했다. 사진=연합뉴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지난 달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소문 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확인시켜 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하여 각국 국가원수들만 30명 가까이 참석했지만, 눈에 띄는 진전은 없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할 일이 많은 중국과 러시아의 정상이 빠졌고 인도는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

그나마 주최국인 영국이 성과로 내세운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공시기준을 만드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친환경 활동,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노력 등을 평가하는데 여러 기관들이 간여했다. 영국이 주도하는 TCFD(기후변화관련 재무공개 태스크포스), 미국이 만든 SASB(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 UN이 후원하는 GRI(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 등이 마치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워런 버핏이 거부한 ESG 공시를

그런데 이번 COP26에서 국제회계기준(IFRS) 협회가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심의회(ISSB)라는 조직을 따로 설립한 뒤 내년 6월말까지 ESG의 표준 공시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IFRS는 원래 기업 회계에 관한 원칙을 만드는 곳이다. 그러니까 비재무적 요소인 ESG에 기웃거리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통일된 국제기준을 만드는 노하우는 충분하다. 그 노하우를 ISSB에 접목시켜 ESG에도 공시기준을 제정한다면, 훌륭한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참가국들은 그 제안에 큰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미국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은 그런 움직임에 반대한다. 아니 ESG에 관한 한 공시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워런 버핏은 재산의 99%를 죽은 뒤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밝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이다. 50여 명의 직원들과 틈나는 대로 사회공헌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제3자가 자기의 그런 노력을 수치로 평가하거나 회사의 지배구조를 드러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난 1월 어떤 주주가 ESG에 관한 버크셔 헤셔웨이의 활동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자 그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공개서한을 다른 주주들에게 뿌렸다. 소수의 직원들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도 바쁜데, ESG 활동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업무에 엮이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그런 입장 때문에 미국 안에서는 버크셔 헤셔웨이의 ESG 평가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워렌 버핏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기업의 평판 리스크나 사회적 책임과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자칫 하면 남의 집 부부싸움에 제3자가 끼어드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연합뉴스와 네이버 포털 서비스 간의 분쟁이다. 헌법적 가치인 ‘국민들의 알 권리’를 둘러싼 큰 논쟁이라서 지금 대권 후보들까지 그 다툼에 얽혀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통신과 네이버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한답시고 해당 기업에게 자료를 요구하고 잘잘못을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오지랖이다. 개별 사안이 아니라 전반적인 기업문화나 성향을 판단한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비현실적이다.

비재무적 요소인 ESG를 어찌 평가하나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공시기준은 우리에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삼성, 롯데,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우리나라의 주요 대기업들은 지금까지 상속과정에서 적지 않은 가족 간 다툼과 법적 소송을 불러왔다. 분명 지배구조와 소유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파악한답시고 기업의 은밀한 소유구조에 관한 정보를 공개토록 하면, 해당 기업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국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게 되어 ‘김치 디스카운트’가 생길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비재무적 요소는커녕 재무적 요소에 대한 제3자의 평가에도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는 1980년대 후반 일본계 은행들의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원칙인데, 그 유용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은행의 안전성은 중앙은행이나 예금자보호 제도 등 금융 인프라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 자기자본비율의 영향은 크게 받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 이후 100여 년에 걸쳐 은행 자기자본비율이 꾸준히 하락했지만, 은행산업이 더 위험해 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파산은 훨씬 줄었다. 한편 은행채 스프레드(은행채 금리 – 국채 금리)는 해당은행 레버리지 비율과 크게 상관없었다. 결국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야 은행이 안전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 지금의 BIS 자기자본 규제는 1980년대 후반 유럽계 은행들이 일본계 은행들의 레버리지 확대를 막으려는, 동업자들의 시기심에서 나온 것이 사실이다. ESG에 관한 표준 공시기준도 같은 길을 가기 쉽다.

‘김치 디스카운트’ 없도록 선제대응해야

결론은 이러하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국제기준을 잘 좇아가서 모범생 소리를 듣는 데 만족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우리의 몸에 맞는 국제기준이 정해지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물론 ESG의 표준 공시기준을 정하려는 국제적 흐름에 저항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무작정 박수 치지 말고 반대할 것은 반대하면서 우리의 이익을 관철시켜야 한다. 경제부처가 좀 더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2022년에 다듬어질 ESG 국제 공시기준이 ‘김치 디스카운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내에서 대선을 치르는 동안에도 금융감독 당국은 해외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원칙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주도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글쓴이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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