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국가도 ‘바퀴벌레’한테 배워라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진화 멈춘 채 3억년 생존...어떤 환경도 극복 ‘미생물과 공생’ 시스템 진화가 생존비결 플랫폼 경제도 유사...’공생’해야 살아남는다
[하영균 상도록저자/에너지 11 기술대표] 바퀴벌레는 생존력이 매우 뛰어난 동물이다. 대학에서 곤충학을 공부했기에 바퀴벌레에 관한 연구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때 배운 것중 하나가 바퀴벌레에게는 제대로 된 살충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보다 특이한 점은 바퀴벌레는 진화 과정에서 거의 진화를 하지 않은 상태로 멈추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진화했기 때문에? 그렇지도 않다. 정반대로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그냥 수억년을 보냈다.
원시 상태로 3억년을 이어온 비결은
흙을 빼고는 뭐든지 먹을 정도로 강한 식욕을 갖고 있지만, 그 동물은 소화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는 소화를 하지 못한다. 위에는 대신 소화를 해주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 위속에서 바퀴벌레가 강력한 이빨로 부수어 놓은 잡다한 유기물들을 미생물이 분해한다. 미생물들이 분해해서 만들어 둔 좋은 부산물을 바퀴벌레가 흡수하는 식이다. 즉 자체 소화기능을 다른 미생물에게 맡기고, 바퀴벌레는 미생물이 이미 먹고 남은 찌꺼기를 흡수하는 셈이다.
바퀴벌레 생존력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생물 중에는 어떤 유기물이든 분해를 할 수 있는 미생물이 있다. 유기물이란 탄소로 만들어진 에너지 덩어리다. 이것을 식량으로 먹고 사는 미생물이 바퀴벌레의 위에서 공생하는 것이다. 바퀴벌레의 입장에서는 미생물이 분해해주기 때문에 소화기관을 발달시킬 이유가 없다. 미생물의 입장에서는 이동하며 먹이를 찾을 필요가 없다. 바퀴벌레가 먹으라고 보내준 것을 열심히 먹고 흡수 가능한 유기물을 적당히 남겨두기만 하면 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맺은 터라 굳이 진화를 감행할 필요도 없다. 진화의 산물은 생존과 연관되는 것인데, 가장 효과적인 생존법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진화의 법칙이다. 바퀴벌레와 미생물은 서로 진화를 하지 않는 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현 상태로 유지하면서 3억년 이상을 살아왔다(바퀴벌레의 수명은 6개월에서 1년정도다).

바퀴벌레를 죽이는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바퀴벌레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위에 미생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퀴벌레가 알에서 태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어미의 똥을 집어먹는 행동이다. 이를 통해 어미의 똥 속에 있는 미생물을 자신의 위속으로 이식을 한다. 그때부터 새끼 바퀴벌레는 미생물과 공생을 시작한다. 이렇게 공생하는 관계를 맺어 온 바퀴벌레는 가장 강력한 생존능력을 가진 벌레가 됐다. 어떤 살충제를 뿌려도 바퀴벌레를 죽이지 못한다고 한다(우리가 아는 바퀴벌레 살충제는 살충제가 아니라, 신경마비제일 뿐이다).
바퀴벌레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생존 메커니즘을 파괴하면 된다. 새끼 바퀴벌레에게 미생물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하면 씨를 말릴 수 있다. 미생물이 자라지 못하도록 음식물에 붕소를 섞어서 놓아두면 이를 먹은 바퀴벌레 위속 미생물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미생물이 별로없는 어미 똥을 먹은 새끼벌레도 소화를 못하게 된다. 바퀴벌레의 행동과학 분석을 통해서 찾아낸 박멸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이를 광범위하게 할수 없기 때문에 바퀴벌레가 박멸되지 않았다. 어쩌면 바퀴벌레는 여느 생명체의 진화와는 다른 형태의 삶을 택한 덕분에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게 된 것이다.
바퀴벌레 진화의 방향은 개체의 진화가 아니라 시스템의 진화를 선택한 셈이다. 다른 동물들은 개체 진화를 통해서 내장 기관이나 소화 기능을 강화했다. 반면 바퀴벌레는 소화기관의 진화보다는, 오히려 환경 적응에 가장 강한 방법으로서 어떤 먹이든 소화를 해낼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떤 유기물이든 분해하는 다양한 미생물을 자신의 몸속에서 배양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시스템의 진화로 환경적응력을 극단적으로 높였기에 수억 년 동안 생존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진화의 방향 중 하나로 먹이 하나만을 먹는 식으로 세분화해 진화한 생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코알라다. 이 동물은 유칼립투스(Eucalyptus globulus, 또는 Tasmanian bluegum)의 잎만 먹는다. 유칼립투스 잎에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코알라는 하루 15시간 이상 잠을 자면서 유칼립투스의 독성을 해독한다. 유칼립투스가 독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은 이 먹이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다. 코알라만 독성을 해독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바퀴벌레도 먹이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그것을 분해해서 영양분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진화,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한다
시스템으로 진화를 한다는 것은,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개별 존재들이 공생의 방식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퀴벌레의 경우는 개체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잘 도망갈 수 있는 다리와 어떤 작은 공간에서도 숨어서 지낼 수 있는 유연한 몸, 서로간의 소통을 통해 종족을 보존할 수 있는 화학적 유인물질 페르몬(Pheromone) 감지능력을 발달시켰다. 이 페르몬은 분비하면 1~2㎞ 내의 모든 바퀴벌레들이 모여들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위기상황이 오면 바퀴벌레는 스스로 페르몬을 분비해 동료들을 불러모은다. 바퀴벌레 잡는 끈적이를 설치하면, 붙잡힌 바퀴벌레들이 구출해 달라며 페르몬을 분비하고 동료들이 몰려든다. 집에서 끈적이를 사용하면 그 집 주위로 바퀴벌레들이 떼지어 모여드는 이유다.
한 쪽이 극단적으로 생존력을 높이는 진화를 했다면, 또 한 쪽인 미생물은 바퀴벌레의 위속에서 어떤 유기물이든 소화해내도록 진화했다. 모든 유기물 즉 탄소로 구성된 모든 것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바퀴벌레를 죽이는 약조차 미생물이 분해해버린다. 그런 이유로 바퀴벌레를 죽이는 약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공생은 서로간의 생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유지된다. 어느 한쪽만의 진화로는 공생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바퀴벌레가 이렇게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같은 공생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한 덕분이다.
플랫폼 경제가 대표적인 ‘시스템 진화’
경제학적 관점으로 이 현상을 해석해 보면, 산업생태계도 개별 기업의 경쟁이 아니라 시스템 경쟁으로 진화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경제적 진화를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진화도 필요하고 시스템 진화도 필요하다. 인류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진화시켜왔다. 개별 기업은 기술 진보나 시장 환경의 변화에 의해서 언제든지 사라지고 다시 생길 수 있다. 끊임없이 기술 혁신이 이루어져야 그 시장에서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매커니즘 또는 시스템을 장악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바퀴벌레가 진화를 하지 않아도 종족을 번성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어떤 환경 조건이든 먹이를 구하고 소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 진화가 이루어져서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진화도 ‘시스템 진화’로 방향을 바꾼다면 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 그럴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최근 확산일로에 있는 플랫폼 시스템이다. 이런 플랫폼은 시스템을 장악함으로써 절대적인 지배권을 갖게 된다. 플랫폼이라는 시스템을 장악한 기업은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사라진다. ‘승자독식’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바퀴벌레와 유사한 형태로 진화를 한 동물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인간도 어쩌면 멸종을 시키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 적응에 뛰어난 동물이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승자독식을 하고 있는 곤충일지도 모른다.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환경변화에도 적응을 잘하고 살아남는다.
’재벌’도 시스템 진화한 것...’공생’이 경쟁력의 핵심
이제 개별 기업의 경쟁이 아니라 시스템의 경쟁으로 형태가 바뀌고 있다. 국가 대 국가의 경쟁이 될 수 있고, 지역 클러스터끼리 경쟁할 수 있다. 기업 집단과 집단으로도 경쟁한다. 한국은 이미 기업집단 즉 ‘재벌’이라는 형태의 진화를 통해 나름 성공적으로 국제 경쟁에서 이기고 있다. 시스템 경쟁력을 높이면 독점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이 된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스템 경쟁력에 의해서 살아남을 수 있고 그 시스템에 속해 있는 기업도 살아남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의 경쟁력은 시스템 참여자들이 공생관계를 철저히 이해하고 공생의 이익을 위해서 진화를 거듭할 때 가능하다. 일시적으로 시스템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만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생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진화를 해야 한다.
한 두 기업이 시스템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순간 시스템은 경쟁력을 잃어버린다. 경쟁력을 갖춘 시스템이라고 해도 시스템내 공생을 기반하지 않은 채 독점을 노리는 시스템 운영 기업이나 기관이 등장하게 되면 그 시스템은 경쟁력을 잃어버린다. 그런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 그러니 경제의 진화도 공생에 기반한 시스템 진화를 이룰 때 보다 경쟁력 있게 된다는 점은 바퀴벌레의 공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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