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왜 ‘잔 받침’에 차 마셨을까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근대 유럽의 ‘잔 받침에 차 마시기’ 유행한 까닭은? 기원설도 다양...조지 오웰의 홍차수필도 언급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유럽의 과거 홍차문화 중 매우 의아스럽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잔 받침(Saucer)에 차를 부어 마시는 관습이다.
18~19세기 경 차 마시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계층에 관계없이 의외로 잔 받침에 부어서 마시는 장면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영국과 러시아 그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연구 자료들에 의하면 뜨거운 차를 식혀서 마시기 위해서 그랬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된다. 따라서 식혀서 마신다는 것이 주 목적이다 보니 차뿐만 아니라 커피 역시 잔 받침에 부어서 마시기도 했다. 일단 먼저 찻잔에 차를 붓고 이것을 다시 잔 받침에 옮겨 부어 마셨다.
필자가 의아스럽다고 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첫 번째는 무엇이 그리 급해서 잔 받침에 옮겨 식혀가면서 마셨을까 하는 극히 현대적 관점에서의 궁금함이다. 두 번째는 굳이 찻잔에 먼저 붓고 이것을 다시 잔 받침에 옮겨 부은 이유다. 야외에서 마실 경우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식탁에서 잔 받침에 마실 때도 각자 앞에는 찻잔도 놓여 있다. 식탁 위에서 여러 명이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보면 각자의 잔을 앞에 두고 잔 받침으로 마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찻잔에 차를 붓고 있다.
이 사람도 다시 잔 받침에 옮길 것이다. 차를 식히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면 (적어도 테이블 같은 곳에서는) 티팟에서 잔 받침에 바로 부어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찻잔에 차를 붓고 우유와 설탕을 넣어 잘 섞기 위함이 아닐까하고 짐작은 해본다. 과거의 관습이나 전통을 현대적 관점에서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중국 문향배, 일본 다도, 러시아 음용법 등 다양한 기원설

대부분의 관습이 그러하듯이 이것 또한 기원은 불분명하다. 그런 가운데서 비교적 설득력 있는 것이 중국 문향배 음용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문향배(聞香杯)는 우롱차처럼 향이 강한 차의 향 음미를 위해 사용하는 다구로 두 개가 한 셋트다. 지름이 작고 길쭉한 문향배에 먼저 차를 따르고 위에 품명배(品茗杯)를 모자처럼 씌워 순식간에 뒤집어 차는 품명배에 옮겨서 마시고 문향배에서는 향을 맡는 방식이다. 유럽인들이 문향배를 찻잔으로 보고 마시는 품명배를 잔 받침으로 봤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일본 다도 즉 맛차(抹茶) 음용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맛차를 마시는 주둥이가 넓은 큰 잔(찻사발) 또한 유럽인들 눈에는 자신들의 작은 잔 보다는 오히려 잔 받침에 가깝게 보였을 수도 있다. 세 번째 설은 유럽으로 초기에 전해진 중국 찻잔은 대부분 손잡이가 없었다보니 뜨거운 잔을 손으로 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유럽인들이 잔 받침에 옮겨 붓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상류층에 비해 여유롭게 차 마실 시간이 없는 상인들이나 서민층 음용법이었다고 한다. 이 주장은 논거가 약해 보이는 것이 차 자체가 매우 비쌌는데 서민층이 어떻게 마실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잔 받침에 마시는 모습을 그린 러시아 그림이 많은 것으로 보아 나름의 근거는 있다고 보아진다.
18세기 찻잔받침의 테두리 지금보다 상당히 높아

오늘날 사용하는 얕고 평평한 잔 받침으로는 차나 커피를 부어서 마시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그림에 나오는 잔 받침들은 테두리가 꽤 높다. 실제로 18~19세기에 제작되어 사용된 찻잔 셋트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것들 중에는 잔 받침 테두리가 상당히 높은 것들도 있다. 찻잔 없이 잔 받침만 따로 놓고 보면 키 작은 작은 사발처럼 보일 정도다.
단순히 잔 받침 역할만 했다고 볼 수 없는 근거가 된다. 심지어 이런 모양의 잔 받침에는 컵 링(Cup-Ring)이 없는 경우도 많다. 컵 링은 잔 받침 중심부에 원형으로 살짝 도드라지게 입체감을 줘서 잔을 안정적으로 놓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컵 링은 18세기 중반 무렵 도입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이후에 생산된 잔 받침에 컵 링이 없다는 것은 이 잔 받침의 목적이 단순한 “잔 받침”이 아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런 음용법이 18세기 전반(全般)에 걸쳐 유행한 것에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다만 이 음용법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 다르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이미 상류층에서는 점잖치 못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떤 자료에는 빅토리아 여왕(재위:1837 ~ 1901년) 시기까지 유행했다고도 되어있다. 문화적 관습이 상류층에서 서민층으로 전해진다는 관점에서 보면 낮은 계층에서는 꽤 오랫동안 이 관습이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20세기까지도 존속 했을 수도
<동물농장>, <1984년> 등의 소설로 잘 알려진 영국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1946년 1월 12일자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London Evening Standard)紙에 기고한 <한 잔의 맛있는 홍차 - A nice cup of tea>라는 글은 홍차 수필로 아주 유명하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 뿐만 아니라 차와 관련하여 이해하기 힘든 사회적 관습들도 있고...”하면서 예를 든 것이 “차를 잔 받침에 부어서 마시는 것이 왜 점잖지 못한 것으로 간주될까?” 이다. 이 문장으로 보면 그 당시에도 이 관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는 것과 또 고급스런 행위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뜻밖인 것은 이 글에서 보면 조지 오웰은 “차를 잔 받침에 부어서 마시는 것”을 점잖지 못한 행위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시각으로는 매우 낯설고 어색해 보이는 차 마시는 방법이 역사의 한 때 유행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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