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나는 죽지 않았어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죽음 그 표현 불가능한 상실감 그린 영화들 마약·섹스로 트라우마를 이기려하지만...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은 대체 불가능한 감정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그 통한을 표현할 길이 없다.
생성소멸. 모든 인간은 숙명적으로 죽음이라는 운명을 손에 쥐고 태어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늪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성장기를 거치고 삶의 여정을 걷다가 사고로, 혹은 병으로 죽기도 하고, 설령 별 탈 없이 잘 살았다 해도 노화를 맞으며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걷기 마련이다. 상실감과 허무감은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상실감과 싸우는 영화속 캐릭터들
영화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해준다. 영화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는 상실감 같은 감정을 영상으로 형상화해 위안을 주는 매체다. 실제로 인간들이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듯이 영화 속 캐릭터들도 부단히 노력한다. 관객은 영화 속 캐릭터와 상황에 대해 ‘몰입과 거리 두기’라는 상반되는 두 개의 기제를 반복하면서 현 상황과 자신이 위치해야 할 가장 적절한 ‘심리적 공간’을 찾게 된다. 영화관을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비장해 보이거나 혹은 편안해 보인다면 그들은 상황을 새롭게 해석할 힘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를 잃은 딸, 남자들을 찾아다녀도
떠오르는 몇 편의 영화들이 있는데 두 편만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영화는 <파더 앤 도터>다. 2015년에 개봉한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미국 영화로 러셀 크로우가 아버지(제이크) 역을,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성인이 된 딸(케이티) 역을 했는데 아버지를 잃은 딸의 상실감을 그려내고 있다. 유명 작가인 아버지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하다가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한다. 딸과의 관계가 남달리 밀접했던 아버지는 딸의 양육권을 얻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무리하며 글을 쓰다가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만다. 딸을 되찾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집필했던 유작이 바로 <파더 앤 도터>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딸 사이의 밀착관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남긴 심리적 공간을 채워줄 것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체 불가능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성인이 된 딸의 모습으로 씬이 바뀌는데 케이티는 심리학 학위를 따고 사회봉사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하는 일은 케이티가 아동기와 사춘기를 지내면서 아버지의 상실로 인한 트라우마와 어떤 처절한 투쟁을 해왔을지 짐작하게 만든다. 케이티가 욕망하고 갈구하는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만족감’이다. 아버지가 계속 살아있었더라면 어린 시절에 성취했다고 느꼈던 느낌, 즉 심리적 포만감은 결코 똑같은 성질로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실감은 이전의 기억 위에 덮인 더 많은 알파를 첨가해 다른 성질의 것으로 변화시킨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상실감과 허무감으로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 때마다 케이티는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단 한 번의 관계로 끝난다. 케이티에게 필요했던 것은 관계의 형성이 아니라 바닥이 없어 보이는 공간의 일시적인 채워짐이 주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일반적인 남녀관계의 시작이라고 오해하는 상대 남성에게 혼란과 모욕감을 안겨준다. 남자들은 창녀라고 욕하며 사라진다.
그런 케이티에게 특별한 남자가 나타난다. 케이티는 그 남자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케이티가 그 남자를 다른 남자들과 구별 짓는 이유는 아버지와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 그는 아버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고 애초부터 아버지의 책 <파더 앤 도터>를 언급하며 접근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남자가 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할 리 만무하기 때문에 케이티는 수시로 상실감이라는 구멍 속으로 추락하면서 옛 습성을 반복해 동거남과 갈등을 일으킨다. 과연 정상적인 삶이란 불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케이티의 변화 가능성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케이티는 술집에서 남자를 따라 나가려던 순간 주크박스에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감전된 듯이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그 노래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불렀던 노래 <close to you>였다. 케이티는 빨리 나오라고 채근하는 다른 남자에게 꺼지라고 소리친 뒤 주크박스를 붙들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말한다.
“아빠, 너무 너무 보고 싶어요.”
이때 케이티의 언어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문제의 핵심이었던 말을 밖으로 꺼낼 수 있음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언어화된다는 것은 감정과 거리를 둘 능력이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은 딸, ‘악마의 코스’ 도보여행 끝에...
또 다른 영화, 리즈 위더스푼이 주인공을 맡은 <와일드>는 2015년에 개봉한 장 마크 발레 감독의 미국 영화로 로드 무비 형식을 통해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셰릴 스트레이트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은 힘들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삶의 유일한 지지적 자원이었던 어머니가 척추암으로 사망하면서 어렵게 버텨왔던 삶의 틀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만다. 결혼해서 이해심 많은 남편까지 있었지만 셰릴을 구원해주지는 못한다. 셰릴은 마약과 섹스로 점철된 무절제의 구덩이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정신을 들게 만든 것 역시 어머니와 관계에 대한 기억의 소환이었다. 사실 골목에서 아무 남자와 섹스를 할 때도 어머니의 환영은 골목 밖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무절제한 생활 덕분에 얻게 된 원치 않은 임신은 그녀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죄책감과 자기 경멸을 불러온다. 원치 않았지만 잠시 어머니의 위치에 놓이게 된 셰릴은 낙태를 통해 자식을 죽임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인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자신의 입으로 시인한다. 그런 인식은 엄마의 예쁘고 착한 딸이었던 예전의 이미지를 소환하고 그 상태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첫 단계인 자기 극복의 수단으로 그녀가 택한 것은 ‘퍼시틱 크레스트 트레일’ 트래킹이다. 완주까지 평균 152일이 걸리고 환경도 극단적이라서 ‘악마의 코스’라고 불리는 도보 여행 코스다.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외부적 환경을 버티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고독을 견디어내어야 한다.
셰릴이 겪은 정체성의 상실은 또 다른 의미의 죽음이었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죽지 않았지만 죽은 자신을 버티기 위해 택한 방식이 무분별한 섹스와 마약이었다면, 그녀가 새로운 탄생을 위해 최후로 택한 방식은 극한의 도보 여행을 통해 허깨비가 되어버린 자신의 실체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트래킹 코스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셰릴은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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