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이 시대 정치 리더에게 던지는 교훈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지도자 등극 그녀는 어떻게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켰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을 넘어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찬사를 받으며 정치무대에서 내려왔다. 사진=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을 넘어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찬사를 받으며 정치무대에서 내려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2월 2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공식 퇴임행사를 갖고 전 총리가 되었다. 퇴임행사는 동독 출신 펑크록 가수인 니나 하겐의 곡을 메르켈 총리가 직접 골랐다는 점에서 ‘그녀가 정말 동독 사람이었구나’ 하고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럽 국가들 중 보수적인 국가로 분류되는 독일에서 동독출신의 이혼경력이 있는 젊은 여성(취임 당시 51세)이 총리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동독 사람 메르켈, 21세기 유럽을 지켜내다

16년간의 장기 집권(2005~2021년) 중 4번의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 세계 정치 경제가 출렁일 때도 견고하게 독일을 지켜내고 성장으로 이끌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업적이다.

필자가 2013년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유럽은 프랑스와 독일의 위상이 서로 비등비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수도는 베를린이 되었다. 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가장 먼저 베를린을 쳐다본다는 말이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세계 정치경제는 트럼프 미 대통령 집권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서유럽 국가 내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안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는 서유럽 국가들을 당황하게 했으나 그 가운데 서유럽의 민주주의를 당당하게 지켜낸 이가 바로 독일 총리인 메르켈 이었다.

지난 12월 2일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사진 출처= www.dw.de
지난 12월 2일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사진 출처= www.dw.de

총리 퇴임사 “민주주의 수호” 확고한 신념

메르켈 총리가 퇴임사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강조한 것은 “민주주의의 수호”다. 그녀는 “민주주의의 생명은 비판적 논쟁 능력과 자기 교정 능력”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이해 균형과 상호존중으로 지속되며,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역설했다. 더 나아가 그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몰고오는 그릇된 여론 형성에 대해 단호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2008년 세계금융위기부터 2010년 유로 위기, 2015년 대규모 난민유입으로 인한 사회 혼란 등 국가적으로나 EU 전체로 보나 크나큰 위기가 연이어 일어났다. 이 때마다 그는 특유의 사회적 통합능력과 신중함을 통해 국민들을 단합하게 만들었다.

메르켈리즘이란?

이러한 그의 리더십을 2017년 이코노미스트지(2017년 9월 9일자)는 ‘메르켈리즘(Merkelism)’이라 명명했다. ‘윤리적이지만 이념적이지 않고(Ethical, not ideological), 대응하지만 편견에 젖지 않은(Reactive, not programmatic), 그리고 관망하되 개입하지 않는(detached, not engaged)’ 리더십이 바로 ‘메르켈리즘’이라 했다.

이러한 평가는 독일내 여러 언론을 통해 회자되고 재평가되었다. 그 중 메르켈리즘의 핵심으로 ‘사회적 합의의 존중과 포용’이 가장 적절하다 할 것이다. 메르켈은 재임기간동안 중도층의 의사를 매우 중시해 실용성과 중도성 강화를 통해 극우, 극좌의 세력이 국가의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지난 2020년 2월 튀링겐 주총리 선거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총리 선임의 결정권을 가지게 된 상황에 대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나쁜 날”이라 평한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AfD가 반유럽주의, 인종차별주의 성향의 극우정당이기 때문이다.

2015년 “난민수용” 과단성 과시

독일이 세계 평화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과거의 기록까지 들출 필요가 없다. 미국의 급작스러운 아프칸 철수때 쏟아져 나온 난민들문제 해결에 대해 가장 큰 기여를 한 국가가 바로 독일이다. 경제규모를 볼 때 세계 3위국인 일본의 기여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때에도 대규모 중동 난민을 받은 것으로 인해 지금도 메르켈 전총리가 국내정치에서 자국민들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세계 평화와 인권에 기여하고 있는 가장 인도적인 국가를 꼽으라면 독일일 수밖에 없다.

물론 독일은 자기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에 대해서도 정부 대표들이 지속적이고 일관된 사과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메르켈 총리가 일본을 방문해 아베 일본 총리에게 “과거의 정리가 화해의 전제”라는 직접적 충고를 했던 점은 매우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난민 문제는 오늘날 독일 사회에 여전히 복잡한 정치적 계산을 노출시키고 있다. 대중은 경제적 피해를 무릅쓴 국제사회를 향한 독일의 기여를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이 그 일을 외면할 경우, 유럽 그 어떤 나라도 관망만 할 뿐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독일이 국내 정치 여론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 나라의 위상이 주는 무게 만큼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유럽의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자유세계의 ‘진정한 리더’

메르켈 전 총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념은 매우 결단력 있었다고 할만하다. 그렇기에 메르켈을 “자유세계의 리더(Leader of the free world, 2021년 8월 26일 프랑스 일간지 firstpost)”로 평가하는 것이다. 2021년 9월 유럽대외관계연구소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21세기초 독일 시대정신(German Zeitgeist)”의 상징이다. 만약 EU의 대통령을 선출한다면 메르켈과 마크롱 중 누구를 뽑겠는가는 조사에 메르켈이 41%(마크롱 14%)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도 유럽 전체에 분포한 메르켈 총리에 대한 높은 신뢰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외환경이 메르켈 총리의 퇴임과 함께 독일의 앞날을 힘겹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메르켈 총리가 추진한 2015년의 난민수용정책은 여전히 국민분열을 낳은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 난민정책에 반대하던 극우당(AfD)의 출현은 독일의 중도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도한 뒤 내린 ‘완전한 원자력 폐기’ 방침이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과 맞물려 독일의 에너지 정책과 기후변화정책 모두에 혼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들여오기 위해 취했던 노르트-스트림2 사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위협으로 인해 다시 미국의 강력한 제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러시아간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따라 건설된 파이프라인 경로. 그림출처: www.dw.de
독일-러시아간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따라 건설된 파이프라인 경로. 그림출처: www.dw.de

위기대응능력과 포용력, ‘독일의 시대정신’ 대변

그럼에도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균형외교정책은 독일 경제를 유럽 최강자로 군림하게 했다. EU 전체 GDP의 24.7%(프랑스 17.4%, 이탈리아 12.8%)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은 비록 메르켈 총리가 퇴임해 한동안 정치적 전환기를 맞이하더라도 그 영향력이 약화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리고 통일 독일을 안정기로 이끈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한국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메르켈 총리의 위기대응 능력과 다른 진영을 통합하는 포용력은 ‘독일 시대정신’을 대표할 뿐 아니라 많은 국가 리더들이 참고해야 할 교과서 같은 정치 리더십이었다고 평가할만 하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국가로는 미국이 있고, 그 도전국은 중국이겠지만, 세계에게 가장 존경받은 총리를 가진 나라는 아마 독일일 것이다.

글쓴이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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