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 관계’ 규칙
이강인-손흥민 갈등에서 생각해볼 이야기 독일 학교에선 ‘공동체 행동규칙’ 가르쳐 친구 흠이나 잘못 지적하면 경고 받고 ‘잘났다’는 자랑, 타인 열등감 만드는 잘못 회사에서도 동료의 이기적 행동 용납안해
지난 2월 한국을 시끄럽게 달궜던 주제는 “선후배 간 하극상”이었다.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이강인 선수와 손흥민 선수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선후배간 예의” 문제와 “사회 관계에서의 하극상”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지면과 화상에 넘쳐났다. 많은 한국인들은 어린 선수의 예의없는 행동에 분노했다. 그리고 팀 주장에게 대드는 팀원의 하극상 문제 또한 크게 부각되었다. 일부는 이 선후배 문화가 한국에만 유독 심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필자 또한 한국의 선후배 문화를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한달만 늦게 태어나도 위아래가 나누어지는 문화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만든다고 본다. 같은 나이임에도 학교를 늦게 갔다고 선후배가 형성되고, 나이가 많음에도 군대를 늦게 갔다고 고참과 부하의 관계가 바뀌고, 직장을 늦게 갔다고 나이 많은 후배를 싫으니 아예 뽑지를 말아야 한다는 의식은 한국인인 필자가 보기에도 정상적인 선을 넘은 불편한 문화인 것은 사실이다.
독일학교는 독일만의 행동규칙을 요구한다
독일에서 10년을 넘게 살다보니 깨닫게 된 것 하나는, 독일 사회는 ‘공동체 행동규칙’이 분명한 나라라는 점이다. 독일도 특유의 서열문화가 존재한다. 자유분방한 문화의 미국 환경에서 자란 독일아이들은 아무리 독일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해도 독일 학교에 오면 적응에 매우 힘들어한다. 독일은 자유분방한 아이들을 방임하지 않는다. 독일인들조차 힘들어 하는 문화적 틀이 있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독일인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독일에는 특유의 손글씨 문화가 있다. 이 문화가 얼마나 엄격한지. 아이들은 저학년때는 알파벳 인쇄체를 배우고, 이어 바로 연결해서 쓰는 필기체를 배워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집착적인 독일의 쓰기문화는 외국인인 필자에게 참으로 난감할 뿐이었다. 학교에서 엄격하게 필기체를 배운 독일인들은 평소 생활에서 손글씨 쓸 때 인쇄체를 쓰지 않는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온 아이들에게 필기체는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숙제검사를 엄격하게 한다. 숙제과제물을 꼼꼼히 챙겨서 제자리에 넣어놓지 않으면 그것도 성적에 반영한다. 선생은 수업준비태도가 좋지 않다고 표시한다. 뿐인가? 학생은 수업시간에 손들고 지목된 경우에만 발표를 할 수 있다. 만약 그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하면 안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이 다 끝난 뒤에 말해야 한다.
이런 문화는 관공서에 가서도 볼 수 있다. 아무리 급하다고 공무원이 다른 사람과 말하고 있을 때 끼여들어서는 안 되고, 뒤에 급한 사람이 있다고 공무원이 대화를 급하게 마무리하지도 않는다. 예외적인 사유를 이야기하려고 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 또한 모두들 예외적이고 특별하다고 딱잘라 말한다. ‘너만 특별하다’고 가르치는 일은 절대 없다.
독일학교에서 팀워크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위계질서 문화와는 다르지만 독일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독일식으로 선을 지키도록 훈련받는다. 서구사회라서 매우 개방적일 것 같지만, 독일은 독일식의 공동체 문화를 매우 강조한다.
학교생활에서는 “우리”라는 개념을 가르친다기 보다, 함께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점을 가르친다. 예를 들고 싶은 것 중 바로 “팀 프로젝트”이다. 이를 수행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항상 섞어 놓기 때문에 성적이 좋거나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아이들에게 이 수업은 가장 난이도 높은, 또는 좋은 점수를 포기해야 하는 수업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팀플(팀 프로젝트)은 온갖 종류의 아이들을 만나게 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절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아이, 약속시간을 맞추지 않는 아이, 결정적일 때 아프다고 안 나오는 아이 등등.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어깨에 올라타 그 혜택을 누리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속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같이 발표하는 아이들끼리 정말 맞추기 힘든 경우가 아니면 팀플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타협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서 리더격인 아이들 중 매우 독선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발표수업에서 아예 발표 자체를 안 하겠다고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실패”로 나쁜 점수를 받게 된다. 아이들은 타협을 배워야 하고 부족한 아이들을 도와야 하고 누군가 아프면 그 아이의 몫도 나눠 감당해야 한다. 아주 탁월하지 않아도 큰 실수 없이 마무리되면 선생님은 당연히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준다. 이런 과정이 10학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반복된다. 아이들은 성공하는 법이 아니라 망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본인의 점수로 연결된다.
필자의 큰아들 경험을 얘기해 보겠다. 선생님이 팀플을 서로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짜라고 했더니 공부 잘하는 몇 명이 자기들끼리만 팀을 짠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우리 아들에게도 오퍼를 줬다. 그러나 큰아이는 그 오퍼를 거절하고, 성적이 좋지는 않지만 친하고 무난한 친구들과 팀을 꾸렸다. 이유를 물어보자, 공부 잘하는 아이들 4명은 다들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무척 세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제한된 시간 안에 타협안을 찾을 수 없고 서로 자기식으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기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힐 정도로 싸워야 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면 아들의 팀원들은 무슨 기준으로 골랐냐고 물어보니, 서로 친하고 자신이 리서치와 서면을 담당하면, 독일어 수정은 A가 잘 하기 때문에 그 애한테 맡기고, B는 공부는 잘 못하지만 말하는 건 잘 하니까 그 애한테 발표량을 좀 더 줄 거라고 했다. 결국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서 빠른 시간에 잘할 수 있었고, 예상했던 점수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서로 싸우지 않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고 게으른 친구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단점을 비하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맡기고 부담이 되면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른 방법을 찾게 한다.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매우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타협을 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팀플은 발표를 잘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독일학교에서 성적만큼 중요한 사회관계
이처럼 독일의 학교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은 사회관계 형성에 관한 부분이다. 아무리 지적으로 뛰어난 학생이라 할지라도 독일 사회가 기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동급생끼리 비교하여 누군가를 열등하다거나 제외시키겠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그 아이는 ‘요주의’ 인물이 된다. 사회적응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의미다.
큰 아이가 9학년 때 영어점수를 2점 받은 적이 있었다. 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왔기 때문에 필자도 놀랐고 아들도 놀랐다. 그 이유는 큰 아이가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의 실수를 지적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다른 사람을 여러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거나 부끄럽게 만든 것과 똑같으며, 그런 행동은 동급생인 친구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었다. 선생님이 큰 아이를 불러서 “네가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친구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된다.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영어시간에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일일이 고치는 것은 본인에게도 좋은 버릇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았다. 독일에서는 잘났다고 잘 난 점을 부각해 말하면 안된다. 그리고 자랑해서도 안된다. 독일 사회는 영미권 사회와 다르게 겸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식의 자기과시 방식을 매우 부적절한 자기표현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잘 했다고 큰 상을 주지 않고 큰 칭찬도 주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열등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은 칭찬받는 그 아이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공부는 생활의 한 일면일 뿐이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함께 자라는 아이들 모두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학교에서 배우는 “타인에 대한 존중”은 필자 아이들의 언어습관에서도 나타난다. 비교하지 않는 태도를 배워온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지나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 갈 준비에 들어가는 동안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독일이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비교보다 타인의 장점을 찾아 인정하는 태도였다. 그러다 보니 공부 잘하는 것은 그냥 하나의 장점일 뿐이지 그것이 전부가 되는 일은 절대 없다.
독일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적에는 객관적인 시험점수가 50~60%만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사회생활과 수업참여 정도에 따라 주관적인 성적이 40~50% 된다. 독일인들은 이런 선생님의 주관적인 판단에 대해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인정한다. 그 주관적 평가(평판)라는 것이 현실에서 업무를 할 때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평가에서 이기적인 행동으로는 좋은 점수를 절대 받을 수 없다. 회사에서도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이가 있으면 그 동료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나빠지기 마련이다. 수면 아래에 있던 갈등이 수면 바깥으로 올라와 폭발한다면 이는 주변인들의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뜻이다.

공동체와 타인에 대한 존중은 ‘보이지 않는 실력’
한국은 실력이 중심인 사회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시험과 점수로 모든 것을 표시하며, 그것에 의해서만 사람들이 수긍한다. 다른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하면 불공정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물론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보이는 수치가 목적한 성과를 보장한다고 볼 수는 없다. 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고, 실력이라는 요소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믿는다면 모두 실력에만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능력우선주의가 공동체의 집합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위험성은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의 “공동선”에 대한 기여가 없는 인간은 장기적으로 그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없는 인간형이 되기 쉽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은 학창시절 시험성적 외 사회관계에 대한 성적을 10년 동안 계속 평가하고 개선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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