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소비자가 아니다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표계산만 하는 선거운동 아닌지 돌아봐야 민주당, 공동체를 지키려는 ‘시민다움’을 지켜줘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당직자들이 지난해 11월 24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겠다"며 국민 앞에 사죄의 절을 올렸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당직자들이 지난해 11월 24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겠다"며 국민 앞에 사죄의 절을 올렸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의 이유 있는 ‘고전’

이번 대선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여러모로 쉽지 않은 선거다. 무엇보다도 민주당이 인기가 없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집권했고 20대 총선에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금 민주당은 거대한 심판의 물결에 휩쓸려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주된 이유라지만, 다른 이유도 많다. 많은 시민이 기대했던 개혁을 제대로 못했다거나 이런 저런 ‘내로남불’ 시비에 휘말리면서 주류 586세대가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투의 비판도 크지만, 특히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숱한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는 사정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래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늘 ‘정권재창출’보다 ‘정권교체’가 더 많은 시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 본인의 약점도 작지 않다. 전과4범이니 형수 욕설 논란이니 하는 비교적 사소한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치적으로 내세우던 대장동 사업에 대해 이런저런 의혹들이 제기되어 곤혹을 치르고 있다. 특검 요구도 거세고, 수사 진행에 따라 어떤 사태가 전개될지 모른다. 그밖에 그가 그동안 공직을 거치면서 보여주었던 정책 집행력과 ‘사이다 발언’ 같은 장점은 그를 후보로 만든 동력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그가 권위적이고 독단적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틀림없이 후보 본인은 물론 캠프나 민주당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선거전에 임하고 있을 게다. 그래서 아마도 한 표라도 더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유세 방식이나 일정을 계획하고 또 이런 저런 공약도 다듬고 할 것이다. 또 그런 맥락에서 한동안 ‘매타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볐고, 사찰이며 교회고 안 다니는 곳이 없었다. 부분적 사시부활에서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공약도 쏟아냈다. 독선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행보도 눈에 띈다. 곳곳에서 민주당과 본인의 이런저런 문제들에 사과도 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쓴다. 심지어 그의 대표 공약쯤으로 이해되던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국민적 동의를 전제한다면서 후퇴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등 실용주의와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도층 지지자가 많은 경선 경쟁 상대 이낙연 전 대표에게 민주당 ‘국가비전· 국민통합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기는 등 사람을 챙기는 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민주당은 어디로 가고있나

다 좋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행보는 다른 한 편에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를 모호하게 한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민주당과 이 후보는 우리 사회의 ‘진보’를 대변하는데 중도층을 잡겠다며 너무 ‘우클릭’을 하고 혼란스러운 정책들을 내세우는 거 아니냐는 거다. 너무 선거 승리에만 집착하면서 정당 정치의 본연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부동산 세금 관련 공약 같은 것은 그 동안의 정부 정책 기조를 뒤집어 사태를 더 악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자아낸다. 심지어 국민의 힘과 민주당의 차이가 무어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물론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에서 전세계 대부분의 정당들, 특히 중도 좌파 정당들과 정치가들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선 결선투표 없는 단순다수결 대통령 선거제도 때문에 증폭된 측면도 크다. 다수결 선거 민주주의 자체가 집권을 노리는 모든 정당으로 하여금 중간층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게끔 강제하여 정체성이 애매한 ‘포괄정당’이 되도록 만들기 마련인데,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 및 선거제도는 좀 더 구조적으로 그런 경향을 강화하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사정이 때로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는 좀 더 복잡하게 분석이 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최근 서구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 위기 현상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영국의 노동당, 미국의 민주당, 프랑스의 사회당 등은 중도표를 흡수한다면서 점차 본래의 정체성을 흐리다가 결국 본래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노동자계급 및 사회 하층으로부터 외면 받게 되어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이루어졌고, 미국에서는 유사-파시스트 트럼프가 집권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당이 사실상 소멸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믿었던 중도 좌파 정당의 정체성 변질에 실망한 하층 노동자계급이 지금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주의’로 극우 포퓰리즘을 선택했고, 서구 민주주의는 전례 없는 위기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라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물론 우리나라는 서구 사회들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가령 우리나라에는 해외 이주민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지난 서울 및 부산 재보선 선거에서도 확인되었던 바이지만, 그 동안 ‘민주당이 버린 사람들’의 정치적 복수가 걱정이다. 어처구니없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고통에 빠진 많은 사람들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당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숱한 자영업자들이 그들이다. 바로 이들이 지금 ‘묻지마 정권교체’를 외치고 있는 핵심 유권자층일 텐데, 이들의 정치적 복수 의지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국민의 힘 윤석렬 후보 측의 이른바 ‘본부장’ 문제가 실제로 확인되고 그의 정치적 무능과 무모함이 드러나면서 지지율의 ‘골든크로스’가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은 아직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정권교체 여론은 드높고, ‘야권 후보 단일화’ 같은 일이 일어나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민주당과 이 후보는 이런 상황을 겸손하고 냉정하게 살피면서 성찰과 혁신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를 대하는 자세에 문제 없나

제일 걱정스러운 건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중도층을 잡겠다면서 혹시라도 우리 시민 유권자들을 그저 소소한 표계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시민들을 자신들의 표를 주고 이익이 되는 정책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로만 취급하는 데서 출발한다. 선거 민주주의에서 어느 정당이든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전제 같지만, 이런 출발점은 사실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민주당 같이 기득권 세력의 ‘사회적 권력’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평범한 시민들의 열망에 바탕을 둔 ‘시민의 힘’을 자양분으로 성장해 온 정당에게는 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민주당은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민주당은 이번 대선 슬로건을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으로 바꾸었다. 지금까지의 잘못에 대한 성찰의 의미도 담고, 새롭게 재창출될 이재명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삶을 위해 이익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전하려 하는 듯하다. 얼핏 잘못된 게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새 슬로건은 민주당이 우리 시민들을 그저 냉정한 손익계산자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민주당과 이 후보가 정치적 효능감을 강조하면서 중도층 공략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선명한 ‘정체성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요점은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민주적 진보 정치의 가장 근본인 시민들의 ‘시민성(citizenship)’ 또는 ‘시민다움’이라는 자원을 잊지 말라는 데 있다. 우리 시민들은 그저 손익 계산이나 하면서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일구어오지 않았다. 물론 시민들도 인간으로서 이런 저런 물질적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위협당할 때는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집값 폭등이나 자영업의 생존 위기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도전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해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일정한 정치적 가치와 인식틀을 통해 매개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시민들은 정치적 판단을 하면서 단순히 물질적 이해관계에만 매달리는 냉정한 손익계산자가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기꺼이 자신들의 이익을 뒤로 밀어 둘 용의가 있는 존재들이다. 이 점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5년 전의 ‘촛불혁명’만 떠 올려 보면 된다. 그 추운 겨울에도 우리 시민들은 몇 달이고 소중한 자기 시간과 경비를 들여 광장으로 모여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폭력 진압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엄청난 자제력을 보였고 스스로 나서 거리와 광장도 깨끗하게 청소하는 등 놀라운 시민적 헌신을 보이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평화적 저항을 통해 불의한 정권을 권좌에서 몰아냈다. 그 때 시민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물질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의 안녕과 품격에 대한 ‘민주적 우환의식’ 때문에 광장으로 나왔다. 바로 이런 게 시민성이고 시민다움이다.

지난해 12월4일 전북 군산을 방문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4일 전북 군산을 방문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사진=연합뉴스

시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하라

박근혜 전대통령의 사면으로 그 촛불혁명의 정신이 빛이 바랬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촛불의 초점을 박근혜 탄핵과 단죄에만 두면 안 된다. 민주당 정부의 진짜 패착은 그 촛불의 성취를 누리면서도 그 참된 지향인 ‘공동선의 정치’를 실천하는 데 충실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촛불 이후 지금까지 치러진 대부분의 선거에서 이겼지만, 그 승리를 어정쩡한 표계산의 결과로 오해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개혁은 자꾸만 미루고 부동산 문제에 대한 땜질 식 처방이나 서울 및 부산 시장 억지 공천 같은 일을 일삼았을 뿐이다. 그 결과 지금 엄청난 정치적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자신의 진짜 정치적 자산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탓이다. 이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후보는 지금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좋다. 그러나 어떤 대한민국인가? 시민들은 지금 우리 시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더 나은 대한민국에 대한 정치적 비전과 희망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이 그저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으리라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숱한 근본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부동산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지독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 사회적 파편화, 이제는 젠더 차원에서마저 첨예화된 사회 갈등, 여전히 꿈쩍도 않는 분단체제, 미래 세대의 인간성을 좀먹고 있는 숱한 교육 병리 등 일일이 언급하는 것조차 버겁다.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 위기 문제 같은 건 어떤가? 우리 시민들은 이 후보가 이런 문제들에 어떤 비전과 희망을 갖고 접근하려 하는지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한다. 여기에 응답하라.

그러나 여기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우리 시민들은 그런 문제들을 그저 지도자의 리더십에만 맡기려 하지 않고 스스로 함께 참여하여 해결하기를 바란다. 훌륭한 지도자는 공동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평범한 시민들의 이런 시민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게끔 배려하고 그것을 불러 내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시민들은 언제나 그런 부름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시민들을 믿고 시민들과 함께 하려는 정치가 절실하다. 시민다움에 호소하라.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피어나)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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