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K-민주주의’를 상상하자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파시즘이 온다(3) 내란의 완전한 종식 위해서 개헌 꼭 필요 ‘한국형 양원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제안 하원은 순수 단순다수결제로 의원 뽑고 상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비례성 확대 하원에 총리 선출 및 불신임권한 부여하고 상원에 하원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 부여해

지난해 12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이 표결에 부쳐지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이 표결에 부쳐지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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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을 넘어서

한없이 뻔뻔하고 파렴치했을 뿐만 아니라 극도로 무능하기까지 했던 윤석열 대통령 시대가 끝났다. 지난 4일 윤석열 파면을 끌어냈던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은 정말 깔끔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아가 모든 시민에 대한 평등한 존중,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 대한국민 같은 민주공화주의의 원칙들과 개념들로 가득한 감동적인 판결문이었다. 덕분에 우리 사회의 위대한 역사적 성취였던 민주주의는 윤석열의 야비하고도 무모한 도발을 견뎌내고 다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역사적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정치권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대선을 향해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게 거의 확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정치적 과정만으로도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가 어떤 정치적 자질과 비전을 가졌는지, 과연 차기 정부는 우리 사회의 산적한 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정책 방향과 역량을 갖추었는지가 국민적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은 윤석열의 내란 때문에 크게 흔들렸던 우리 민주주의를 어떻게 안정시키고 더 성숙시킬지에 대한 전망을 온 국민이 토론하고 공유하는 민주적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헌은 윤석열 파면 이후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고, 이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제시해야 할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정치적 비전의 중요한 일부여야 한다. 이번 내란이 단지 윤석열 개인의 빗나간 성정과 인식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만 보지 않는 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우리 헌정 질서의 한계와 문제를 찾아내서 손보는 게 당연한 역사적 과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엄령 조항 자체를 없애자고 할 수도 있고, 과도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제한하며 극단적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찾아 나서자고 할 수도 있다. 소수의 엘리트 헌법재판관들이 대통령 탄핵과 같이 국가적 운명이 걸린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지금의 사법심사 제도를 그대로 둘 것인지에 관해서도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벌써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비록 사흘 만에 철회하기는 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불쑥 개헌 국민투표와 대선을 동시에 치르자는 설익은 제안을 내놓는 바람에 개헌 논의 자체가 아예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버렸다. 우 의장의 문제의식과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개헌 문제는 결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닐 터이다. 더구나 시민적 참여라는 계기는 완전히 생략한 채 정치권의 정략적 합의에만 기대 개헌을 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의 제안은 완전한 정치적 헛발질이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에 이 국면에서 정말 중요한 개헌 논의 자체가 완전히 짓눌리게 생겼다.

그렇더라도 우 의장과 개헌 논의에 대한 지금과 같은 식의 비판과 공격은 과도하다 못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 제안을 했다고 우 의장이 내란 세력과 내통했다느니 ‘수박’이니 하며 비난을 해대는 건, 자신들하고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는 극우 세력의 행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지금 윤석열이 내란과 함께 불러 깨운 극우 파시즘의 망령과 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가지고 있는데, 새삼 ‘우리 안의 파시즘’ 문제도 절대 가볍지 않겠다 싶어 마음이 무겁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버린 건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조기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제안을 철회했다. 사진= 연합뉴스
우원식 국회의장은 조기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제안을 철회했다. 사진= 연합뉴스

내란 종식을 위한 개헌

다들 먼저 내란을 종식해야 한다고 하지만, 도대체 내란이 언제 어떻게 종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도 없다. 윤석열 파면이 끝이 아니라는 데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렇다면 새 정부가 출범하면 내란이 종식되는가? 당장 한덕수의 위헌적 헌법재판관 임명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 내란을 주도하거나 동조하는 세력이 곳곳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들 모두를 찾아내서 척결하고 처단해야 내란이 종식될까? 말이야 쉽지만 그런 일은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쉽게 가능하지도 않고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건 문재인 정부 때 ‘적폐청산’의 경험을 떠올려 보기만 하면 된다. 계엄을 지지하고 탄핵에도 반대했던 30% 내외의 일반 국민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참된 내란 종식은 다시는 12.3 내란 사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민주주의의 틀을 새롭게 재구성할 때만 가능하다. 우리 헌법 때문에 내란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우리 헌법 덕분에 윤석열을 견제하고 탄핵할 수 있었던 것도 맞다. 그러나 12.3 계엄은 조금만 더 정교하게 기획되고 몇 가지 우연이 내란 세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했더라면 성공할 수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을 집중시킨 우리 헌법의 허점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게다가 시민의 압력으로 국회의 탄핵 의결을 끌어내고도 헌법재판소의 최종 인용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120일 넘는 날들을 떠올려 보라. 이런 식의 상황 전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원천적인 제도적 틀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란 종식과 개헌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민주적 새 정부의 출범이 내란 종식의 출발점인 건 맞지만, 참된 내란 극복은 다시는 내란에 대한 기획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거나 잠재적인 내란 세력이 아예 성장할 수 없도록 민주적 헌정 질서를 정비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이번에 계엄을 옹호하거나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던 많은 정치인들과 국민들, 곧 잠재적 극우 파시즘 세력을 전부 법적으로 단죄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라면, 그들에게도 일정한 정치적 공간을 열어 두되 민주적으로 순치하고 그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거나 남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라도 개헌은 꼭 필요하다.

‘K-민주주의’를 창조하자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헌의 초점은 단순히 무슨 대통령 4년 중임제나 내각제(의회제) 같은 게 되어서는 안 된다. 우원식 의장의 제안처럼 어떻게든 개헌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데 매달릴 일도 아니다. 개헌의 요체는 우리의 민주적 헌정 질서가 극우 파시즘 세력 같은 적들에 의해 침탈당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대안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해 온 역사성과 그것이 강제하는 경로의존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확인된 우리 헌정 질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한국형 민주주의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이상적인 민주주의 모델을 다른 나라들에서 모방하여 도입하자고 무턱대고 외칠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어떤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껏 만들어 온 구체적인 정치 현실에서 출발하되 그 현실이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을 차근차근 도출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헤겔 말마따나, 모든 현실적인 것은 또한 이성적인 것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운용하고 있는 87년 체제 민주주의는 우리 역사 속에서 나름의 실천적 근거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확립되고 유지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물론 불가피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 그 한계 또한 분명해지고 있다. 새로운 실천적 합리성을 갖추기 위한 자기혁신이 절실하다. 이제 나는 이런 관점에서, 그러나 더 깊은 토론을 위한 아주 조심스러운 개인적 견해의 하나로, 우리의 새로운 헌정 질서의 큰 윤곽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의 헌정 질서에서 문제는 단순히 제왕적 대통령제만이 아니다. 이 제도는 필연적으로 적대주의적 정치 양극화를 낳을 수밖에 없는 단순다수결 국회 구성과 연결되어 민주적 정치 과정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판결문에서 지적한 12.3 내란의 중요한 정치적 배경이다. 그런 만큼 권력구조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함께 연동하여 개혁하는 과정 없이는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대통령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경로 의존성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민주화 그 자체로 이해된 대통령 직선제를 그냥 단순히 의회중심제로 바꾸는 방향으로 쉽게 국민적 합의가 형성될 수 있을까? 설사 제왕적 대통령제를 책임 총리가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꾼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양당제에서는 빈번하게 출현할 야대여소 ‘동거정부’가 새로운 차원의 문제들을 낳을 것임에 틀림없다.

단순다수결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지금 제도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는 민주당은 물론 피해자일 수도 있는 국민의힘마저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12.3 내란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대패한 데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전체 지지율로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비해 근소하게만 적은 의석을 차지하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이 당은 두 번 연속이나 비슷한 총선 성적표를 받아 놓고도,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을 텐데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비례대표제 확대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으로선 영남 지역의 절대적인 정치적 맹주 역할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의 수혜자인 민주당이 반대할 것도 불문가지다.

이런 배경 위에서 나는 ‘한국형 양원제’와 결합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새로운 K-민주주의의 헌정 질서 모델로 제안하고자 한다. 이 모델의 핵심 아이디어는 <선거 방식을 달리하는> 양원제다. 일단 하원은 <순수 단순다수결제>에 기초하여 구성한다. 지금의 우리 국회 구성 원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만큼, 현재의 국회 구성 방식은 큰 틀에서 그대로 두면 된다. 그러나 상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구성한다. 지금의 우리 국회에서 비례대표제 몫을 떼 내고 좀 더 확장해서 권역별로 선출하여 구성하면 된다. 여기서 하원은 <책임총리제를 핵심으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총리 선출 및 불신임 권한을 독점적으로 갖고, 상원은 대신 하원에서 제출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다.

대통령제는 유지된다. 그러나 국무총리의 선출 권한을 국회에 주어 사실상의 내치를 전담하게 하고,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도 없애 상원에 이월한다. 단순다수결로 구성되는 하원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양당제가 형성되겠지만, 대신 정부 구성의 안정성이 확보된다. 반면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석이 배분되는 상원에는 하원의 주류 양당은 물론 여러 소수 독립 정당들도 함께 진출하여 다당제가 형성될 것인데(여기서 위성정당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원의 여당은 상원의 소수 정당과의 연합 없이는 어떤 법률안도 쉽게 통과시킬 수 없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승자독식형 제왕적 대통령제와 결합한 양당제가 빚어내는 적대주의적 정치 양극화는 결정적으로 완화되면서 문제해결적 숙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될 것이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권력 구조와 정치 제도를 도입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제안은 국무총리가 있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현재의 대통령제를 좀 더 건설적으로 발전시키고, 단순다수결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고 있는, 사실은 역시 한국에만 독특한 지금의 국회 구성 원리를 좀 더 생산적으로 개선해 보자는 데 초점이 있다. 우리가 발전시켜 왔고 또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할 K-민주주의는 세계의 다른 민주주의 모델을 참조하되 우리의 역사적 경험, 정치적 전통 및 조건에 맞는 창조적인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다. 반파시즘 민주 세력의 압도적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K-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우리의 상상력과 토론을 위한 공간을 활짝 열어 보자.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공정의 배신>, <공화주의자 노무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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