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으로 새로운 공화국을!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윤석열 쫓아내는 상황 이후를 생각하자 尹은 ‘전쟁 정치의 결과’일 뿐 원인 아냐 ‘죽임의 정치’ 버리고 ‘공존의 정치’ 모색을 ‘합리적 보수’ 동의할 개헌과 ‘대연정’ 비전

지난 4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시민촛불’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시민촛불’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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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이 울렸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도무지 믿기 어려웠던 윤석열의 ‘12.3 친위 쿠데타’가 무위로 끝났다. 그는 민주당의 국회 폭거에 경고하기 위해서였다는, 누구도 설득하지 못할 이유를 댔다. 국회, 특히 야당들을 ‘반국가세력’이라 규정하고 무력화시키는 게 거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번 비상계엄은 명백한 ‘내란’ 범죄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그는 당연히 탄핵당하고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사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에 대한 탄핵안이 상정되고 이번 내란 범죄를 수사할 상설특검안이 발의되었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비상계엄 해제에는 찬성했던 한동훈계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통령 탄핵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서다. 탄핵 가결로 윤석열의 임무를 정지시키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진행되기 어려울 터인데, 참으로 암담하고 한심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한 마디로 윤석열이 탄핵당하면 민주당이 집권할 게 뻔해서란다. 한동훈을 비롯한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준비도 안 되어 있고 탄핵이 이루어지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폭락할 터이니, ‘윤석열 이후’를 위한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맞느니 차라리 당장은 국민들의 큰 비난을 받더라도 탄핵을 저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 아니 그들이 무슨 신줏단지처럼 모신다는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져도 당리당략부터 챙기겠다는 거다.

전쟁 정치의 결과로 제왕적 대통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윤석열.
전쟁 정치의 결과로 제왕적 대통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윤석열.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의지도 없단 말인가

어쩌다 우리 정치가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되었을까?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은 윤석열의 폭거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대통령 자리에 머물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스스로 하야하지 않는 한, 지금 같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끝낼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충분히 예견되는 2차 계엄령 시도는 막을 수 있나? 참으로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다.

곧 있을 탄핵 표결 결과를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가결되든 부결되든 이 지점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해 둘 일이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87년 체제’ 민주주의가 이제 그 생명을 다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 체제는 한 마디로 윤석열 같은 정신착란에 빠진 인물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허용하여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순식간에 허물어 버릴 수 있는 체제다. 지금 이 체제의 조종이 울리고 있다. 이제 미련 없이 이별하자.

우리 민주주의가 맞고 있는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으려면, 우리는 무언가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그게 국민의힘 8명의 의원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합리적 보수’ 전반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윤석열 이후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찾아 ‘대연정’을 이루는 데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먼저 윤석열을 퇴진시켜야 그 이후를 설계할 수 있다는 건 논리적으로 분명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최소 수준에서나마 윤석열 이후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여야와 사회 전반의 공유된 비전 없이는 그를 권좌에서 쫓아낼 정치적 방법이 없다는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

‘죽임의 정치’가 아니라 ‘공존의 정치’를

이런 맥락에서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증 교사 사건에서 무죄를 받고 나오면서 한 말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정치가 이렇게 서로 죽이고 밟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함께 가는 그런 정치면 좋겠습니다. 죽임의 정치보다 이제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합시다. 이렇게 정부 여당에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아마도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간절하게 바랄 정치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바로 이런 ‘공존의 정치’에 대한 희망, 이것이야말로 현시점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서로 죽이고 밟는 정치가 아니라 공존하고 함께 갈 수 있는 정치, ‘죽임의 정치’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재명 대표는 그 열쇠가 정부여당에 있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그렇다. 이 대표가 희망하는 공존의 정치는 지금과 같이 무분별하게 정적을 사법적으로 괴롭히고 비상계엄이나 선포하는 따위의 행태부터 그만두어야 가능할 터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무능하고 무도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 땅의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전쟁 정치’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지 않은가?

이번 쿠테타 시도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지금 우리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도 팽배해 있는 죽임의 정치 문화는 근본적으로는 공존과 공생, 곧 ‘공화(共和)’를 불가능하게 하는(또는 ‘공화’가 처음부터 없었던) 우리의 거친 민주주의의 구조와 제도적 틀이 빚어낸 것이다. 바로 이런 공화 없는 민주주의라는 토양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과 박근혜 탄핵은 양 진영에 깊은 절망과 상대에 대한 극단적 분노를 쌓았고, 그게 지금과 같은 전쟁정치를 만들어 냈다. 검사 윤석열은 바로 이 전쟁정치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것이고. 지금 필요한 건 우리 민주주의가 잊어버렸거나 아예 처음부터 갖추지 못했던 그 공화를 가능하게 할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모색이다.

권력분점 속에서 공동선 추구하는 정치

이 새로운 공화적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서로 이해관계와 지향을 달리하는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갈등 속에서도 권력을 분점하면서 적극적으로 ‘공동선’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사회 세력들이 서로 싸우면서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규범과 민주적으로 정의로운 절차를 확립하고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서로를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 없는 경쟁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 그 바탕 위에서 경쟁의 승자라도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없도록 하는 권력의 분점과 상호 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승자독식적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헌정 질서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반공화적인 단순다수결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도나 정당법 등과 같은 정치 관계법과 제도 전반을 함께 손보아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공약했던 ‘정치 교체’가 지금 정말로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나 사퇴만을 목적으로 하는 개헌을 넘어서는, 그야말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원대한 비전이다. 이런 비전이 있어야 합리적 보수를 포함하여 사회의 절대다수 구성원들이 윤석열 이후를 흔쾌히 바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임기 단축 개헌 2.0’

물론 이런 방향의 정치 대개혁에 대한 합의를 실제로 이끌어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가 필요한 모두를 한꺼번에 개혁하자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필요한 합의는 일단 새롭게 출발하기에 충분한 만큼만 가능한 대로 하면 된다. 나머지는 장기적인 로드맵에 따르면 될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합의의 요점은 이질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와 견해들이 첨예한 자기주장을 펼치면서도 공동선에 대한 추구는 위협받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와 규칙의 확립이다. 말하자면 아름답게 이별하기 위한 만남이고, 잘 싸우기 위한 화해다. 다만 단순한 ‘반윤석열’을 너머 제2의 윤석열이 다시는 나오지 않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정치적 틀에 대한 합의면 된다. 그 합의는 지나치게 두꺼울 필요는 없지만, 다만 공화를 위해 너무 메마르지는 않아야 한다.

우리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독점이라는 구조적 결함을 가진 헌정 설계가 필연적으로 빚어낼 수밖에 없는 전쟁 정치의 덫이다. 단순히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나라 전체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몰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우리의 헌정적 틀 자체가 문제다. 이 틀을 넘어설 담대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정치권이 무슨 ‘미션 임파서블’ 같은 일을 하라는 요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게 바로 진짜 정치의 요체가 아닐까 싶다. 무슨 ‘3당 합당’ 같은 야합을 하라는 게 아니다. ‘내각제’라는 고리를 매개로 가능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DJP연합’ 같은 실험을 새로운 조건 위에서 새롭게 시도해 보자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다가 외면받았지만, 진보와 보수가 마음껏 다투고 싸우기 위한 ‘대연정’을 지금 진짜로 해보자는 거다.

이 제안은 그동안 많이 논의되어 온 ‘임기 단축 개헌’이라는 대안의 새로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새 버전에는 단순히 ‘이재명 대통령’과 또 다른 버전의 ‘적폐청산’만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새 헌법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공존하고 공생하며 권력을 분점하고 공유하는 걸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비전이 먼저 마련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 보수도 참여하는 대타협이 이루어져야 탄핵이든 뭐든 윤석열 이후의 정치체제에 대한 전폭적인 시민들의 지지도 가능할 것이다.

마침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 등 5명이 윤 대통령에게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했다. 내가 볼 때 이런 제안은 윤 대통령에게 할 게 아니라 야당들에게 해야 한다. 야당들이 이 제안을 받아 새로운 공화국을 열기 위한 로드맵을 잘 설계해 주면 좋겠다. 내 생각엔 탄핵을 해서 윤석열의 직무부터 정지시키는 게 우선적 과제지만, 그게 임기 단축 개헌과 모순되는 일은 아닐 터이다. 어떻게든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보자.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공정의 배신>, <공화주의자 노무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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