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민주주의’는 안된다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목숨걸고 끝까지 경쟁하는 ‘오징어게임’ ‘국민의 기본권’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윤석열, ‘오징어게임’式 민주주의에 착각 문제는 이런 극우적 지지세력 많다는 것 당장 탄핵하고, ‘제2 윤석열’ 귀환 막아야
‘오징어게임 민주주의’
성공했더라면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을 12.3 내란 사태는, 다른 한 편에서 명백한 자유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한, 지독하게 ‘웃픈’ 블랙코미디적 요소도 갖고 있었다. 진작부터 나는 윤석열이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을 곡해하고 있으며 그는 결코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었지만(칼럼: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진짜로 박정희의 유신체제 같은 것이었으며 그런 신념에 따라 친위 쿠데타까지 일으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내란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애먼 자유민주주의 개념마저도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 상황이다. 무슨 이런 황당하고 참담한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윤석열과 함께 적지 않은 내란 지지자들이 이해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말하자면 넷플리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에서 묘사되고 있는 민주주의 같은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게임 참여자들은 막대한 상금에 눈이 멀어 스스로 게임 감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되면서 그 상금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자 많은 참여자들은 게임을 그만두고 싶어한다. 그러자 주최 측은 게임을 계속할지 말지를 두고 찬반 투표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서, 이를 통해 참여자들의 ‘민주적’ 선택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게 정말 민주주의일까?
이게 정말 민주주의일까?
그러나 ‘다수결주의’라는 외양을 지녔지만, 이런 건 결코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오징어게임 속의 투표에서는 게임을 계속하겠다는 쪽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으면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게임을 계속해야 하지만, 단순한 다수결만으로는 반대하는 다른 참여자들이 목숨을 걸도록 강제할 정당성은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규칙은 그 게임 감옥을 지배하는 주최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었을 뿐이다. 그 투표 절차가 정말로 민주적이려면, 더 이상의 게임을 원하지 않는 누구든 바로 그 감옥을 떠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이런 게 허용되는 민주주의를 바로 ‘자유’-민주주의라 부른다.
자유민주주의가 ‘오징어게임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다름 아니라 모든 시민이 자신의 기본적 자유와 생명을 ‘기본권’으로서 보장받기 때문이다. 이 기본권은 원칙적으로 어떤 다수결로도 침해될 수 없다.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는 그냥 단순한 다수결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와 같은 종류의 기본권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헌정화된’ 민주주의다. 우리는 이를 달리 ‘민주공화국’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윤석열과 그를 지지하는 내란 세력은 바로 이 민주적 헌정 질서를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허물려 했다. 확실히 윤석열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정당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그 선출 규칙은 다수결 원칙이다. 그는, 단 0.73% 차이였지만, 어쨌든 이재명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흔히 ‘제왕적’이라고 부르는 막강한 대통령 권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권한이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한 채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반대 세력을 마음대로 억누르고 처단할 수 있는 그런 식의 ‘비상대권’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오징어게임의 감옥에서 시행되었던 그런 종류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이해하면서 그 황당한 일을 저질렀던 거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우리는 지금 윤석열의 어처구니없는 내란 시도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개념도 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있다. 앞서 언급한 칼럼에서 이야기한 대로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보장하며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민주적 정치체제”로, “이 체제에서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민주권, 다당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모든 국민의 기본권, 삼권 분립 등이 보장된다.” 윤석열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이런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단순하지는 않다. 자유민주주의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내란 역시, 자신이 이해한 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그 자체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지금 다양한 차원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모색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한 하위 유형은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 민주주의인데, 이 민주주의는 한 마디로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정치 영역에만 한정해서 인정하고 사회경제적 영역에서는 기본적으로 무제한적인 시장 자유의 원리에 의존한다. 말하자면 “보수적” 자유민주주의다. 1980년대 이래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신자유주의 시대이래,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추구하도록 강요받았던 모델이다.
지금은 쇠퇴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이 신자유주의적 기본 경향은 아직도 지속하고 있고 많은 사회적, 정치적 악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함께 사회의 통합과 민주적 연대를 위한 토대를 허물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준동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이 그 귀결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 윤석열과 내란 지지세력을 낳고 길렀다.
한편 자유민주주의에는 “사회적(또는 복지국가적)” 민주주의라는 다른 유형도 있는데, 여기서는 단지 정치적 영역의 기본권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도 민주주의와 시민들이 누려야 할 광범위한 기본권, 곧 ‘사회권’을 보장한다. 말하자면 “진보적” 자유민주주의다. 주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추구해 왔지만, 넓게 보면 ‘뉴딜 정책’을 통해 나름의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했던 미국의 민주당 같은 중도좌파 정당들도 이런 유형의 민주주의를 지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권 선진국’을 외치는 조국혁신당은 물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을 표방해 왔으며 지금은 ‘기본 사회 건설’을 외치고 있는 민주당도, 적어도 추상적 구호 차원에서는, 같은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세계적 수준에서 볼 때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이 “사회적” 민주주의의 경향과 제도가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가 추동했던 신자유주의에 의해 해체되고 위축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이 한창일 때, 사회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표방했던 미국과 유럽의 중도좌파 정당들은, 심지어 스스로 앞장서 신자유주의에 굴복하면서 그 지지기반인 노동자계급과 중산층이 극우 포퓰리즘 세력에게 포획되도록 방치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도 이런 경향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제2의 윤석열을 막으려면
가장 큰 걱정은 온 국민이 생생하게 지켜본 명백한 내란 및 폭동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의 30%에 가까운 국민들이 극우화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윤석열의 탄핵에 반대하고 계엄령에 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오징어게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우리 자유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심각하게 병들어 있음을 방증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1차적으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진행된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를 배경으로 이해되어야 할 터이다. 국민의힘과 극우 정치 세력이 12.3 내란 같은 명백한 체제 부정 시도마저도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정쟁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 특유의 지역주의와 무속화된 기독교 및 역사적 경험에 따른 세대 갈등 같은 요인들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차원의 문제도 놓치면 안 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참여자들이 살인적인 부채 때문에 자발적으로 게임 감옥에 들어가기를 선택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게임을 계속하자는 쪽에 투표했듯이, 또 미국과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좌파 정당들을 지지해 왔던 노동자계급이 극우 포퓰리즘에 포획되었듯이, 경제적 절망과 사회적 무시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의 많은 하층 시민들도 수구 기득권 세력의 극우적 선동에 휘둘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 배경에는 단순히 기득권 세력의 지지만이 아니라 ‘촛불 혁명’ 이후 집권했던 민주당 정부의 여러 무신경한 민생 경제 방기가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부동산 폭등,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한적인 생존 위기에 몰렸던 소상공인들에 대한 냉정한 국가적 무시, 청년들의 불투명한 미래 전망 등이 바로 윤석열 집권의 동력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로서는 지금 윤석열에게 조롱당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적 헌정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윤석열을 하루빨리 구속하고 처벌할 뿐만 아니라 조속한 탄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후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어야 위기에 처한 우리의 헌정 체제는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님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언제든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
아마도 곧 제6공화국 헌정 체제는 다시 안정을 되찾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뿌리에서 흔들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치유책을 찾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미국에서 트럼프가 귀환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오징어게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또 다른 ‘윤석열’이 어떤 형식으로든 귀환할지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고장 난 우리 헌정 체제의 작동 원리와 제도를 새롭게 다듬으면서, 점점 더 심화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병리들도 함께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고 안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 체제가 가진 근본적인 모순과 한계를 인식하고 제대로 된 해법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과제가 크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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