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핵심 원리인 ‘법치’를 이해못하는 대통령 MBC탄압은 자유민주주의서 용납안될 일 독일서 도입됐으나 김기춘등이 왜곡 변용해 진보도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할 이유없어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순방을 마치고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영접 나온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순방을 마치고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영접 나온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고?

세간에서는 한때 문재인 정부를 ‘참여정부 시즌 2’라고 평가하곤 했는데, 지금 윤석열 정부는 아마 ‘MB 정부 시즌 2’라고 해야 하나 싶은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다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최근의 이주호 교육부 장관 재임명을 보고 있노라면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 가장 좋았다”라고 했던 윤 대통령의 과거 평가가 결코 지나가는 말이 아님을 새삼 실감한다. 여하튼 이주호 장관이 지명된 이후 ‘2022년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두고 다시 그 시절의 ‘건국절’ 논란 같은 일이 재연되고 있다. 역사교과서 현대사 부분 집필 지침에서 교육부가 연구진이 제안한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한 탓이다.

어느 교육부 관료는 연구진에게 이제 ‘정치의 시간’이 왔다며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라고 사실상의 압박을 가했다는데, 논란의 배경은 명백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나 이 장관은 물론이고 우리 보수 일반이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교육부 관료들이 그에 장단을 맞춘 탓일 게다. 이에 역사과 개발연구진은 “자유민주주의로는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다양성과 포용적 가치를 좁히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그동안 진보 진영에서는 자유민주주의 개념만 강조하면 가령 ‘사회민주주의’ 같은 진보 지향이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해 왔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식의 논란이 무슨 ‘블랙 코미디’ 같다고 해왔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들은 결코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인데도 자유민주주의를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행태를 보이고, 우리 진보는 사실은 자유민주주의를 결코 적대시할 필요가 없음에도 이에 대해 무턱대고 경계부터 하곤 해서다. 이번 문제는 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던 교육부의 너무도 명백한 정치적 편향 때문에 생겨난 일이기는 하지만, 이참에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하는 논란이 제대로 정리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게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의’라는 말 때문에 생기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본디 사상이나 이념이라기보다는 정치 체제나 질서를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통용되는 이해에 따르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보장하며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민주적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다. 이 체제에서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민주권, 다당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모든 국민의 기본권, 삼권 분립 등이 보장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 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고, 심지어 이를 무기로 정치적 상대를 이념적으로 압박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취임사에서부터 유엔 대표 연설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유, 자유, 자유’만을 외치던 윤 대통령부터 그렇다. 그는 아주 신념에 찬 자유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지만, 지난 반년 동안 그가 보여 온 정치 행보만 보더라도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우선,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법치, 곧 ‘법의 지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념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신뢰하는 검사 및 법률가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앉히는 인사에 대해 그러는 게 ‘법치국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법률가들의 지배’와 ‘법의 지배’를 혼동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법의 지배(rule of law)’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람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상태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단순히 법률가라는 특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법을 수단으로 하는 지배(rule by law)’와는 다르다. 그가 법치국가를 말한 맥락은 거의 언어도단에 가깝다. 이렇게 검찰총장 출신인 그도 법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정부가 보여온 그동안의 실제 통치 행태를 보면 문제가 단순히 제대로 된 법치 개념을 사용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법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질서는 흔히 ‘법의 제국’이라고도 이야기되는데, 이런 제국이 성립하려면 법은 보편적이어야 하고 입법자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며 제대로 공표되어야 하고 이해가능하고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국회를 통한 입법과정은 필수다. 이런 조건을 적용하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달랑 ‘시행령’ 하나를 고쳐 검찰의 수사 범위를 거의 무제한으로 확대하고 경찰국을 신설한 일은 전혀 법치가 아니다. 그런 일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력자들이 법의 모호함이나 불완전함을 악용한 전형적인 사례로 법치의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아무리 법을 집행하는 정부의 재량권을 인정하더라도 정부는 앞서 말한 ‘법의 제국’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에 부합하게 행위해야 하는데,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국회의 입법과정을 무시하거나 에둘러 임의로 만든 시행령에 따른 정부 통치는 그런 조건을 근본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근거가 될 다른 사례도 많다. 한 고교생이 그린 ‘윤설열차’라는 만평을 두고 문화체육부 장관까지 나서 경고하고 제재를 가한 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최근 ‘비속어’ 논란과 관련하여 여당인 국민의 힘이 공영방송 MBC를 검찰에 고발하고 대통령실이 급기야 MBC가 ‘가짜뉴스’를 유포했다며 공적 공간인 대통령 전속기 탑승을 불허한 일은 매우 심각하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 중의 하나는 언론의 자유다. 대통령 전용기라는 공적 영역을 자신의 사적 공간으로 여기는 듯한 저런 치졸한 조치는 자기 입맛에 맞는 언론만 수용하겠다며 사실상 언론의 자기 검열을 강제하는 행위로,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명백한 언론탄압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더 더욱 놀라운 일은 윤대통령이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무슨 영웅적인 통치 행위를 하는 양 으스대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자유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예도 들어보자. 이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탈북민 송환’이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등을 빌미로 전 정권에 대해 ‘친북’ 이미지를 덮어씌우려 하고, 국가보안법을 꺼내들어 북한 관련 서적들을 소지했다는 등의 이유로 시민들을 소환하고 체포하는 이른바 ‘공안몰이’를 강화하고 있다. 이 역시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통치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 ‘양심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라 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정부라면 무슨 사상이나 정치적 지향을 빌미삼아 정치적 상대를 공격한다거나 시민을 형사적으로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가령 중국이나 북한식 체제가 우리 민주주의 체제보다 더 좋다고 보거나 자본주의를 철폐해야만 우리 시민들의 참다운 인간적 삶이 보장된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도, 그가 무슨 폭력적인 국가 전복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사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엔 등에 의해서 바로 그런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폐지를 권고받은 대표적인 ‘악법’이다. 무슨 공안 검사처럼 ‘종북 주사파’와는 함께 하지 않겠다며 전투적 대결 의지를 천명했던 윤대통령이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과 서울시청 사이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15차 집회가 열렸다. 주최측 추산 40만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사진=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과 서울시청 사이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15차 집회가 열렸다. 주최측 추산 40만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사진= 연합뉴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민주주의

이쯤 되면 이제 우리가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결코 지나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이런 게 자유민주주의라고?’ 반문하면서 윤 대통령과 보수 세력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진보는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를 외칠 뿐 이 강력한 정치적 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외려 그냥 민주주의만 이야기하는 걸로는 북한이나 중국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도 용납하자는 거냐는 반격에 속수무책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리 진보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데는 일정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우리 보수는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문구를 근거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야 옳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 문구는 박정희의 전체주의적 종신 집권을 정당화하려고 유신헌법에 처음 도입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박정희 세력의 후예인 우리 보수가 이런 유신체제나 최소한 그와 유사한 질서를 염두에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만도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보수는 최근 들어서는 재분배 정책이나 공동선을 위한 각종 국가 규제를 비판하며 시장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외치는데, 이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유신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니고, 신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는 정치사상이나 신념이지 정치 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유신헌법을 정초했던 김기춘 등이 유신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독일 헌법의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독일은 흔히 ‘전투적 민주주의’ 또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독특한 민주주의 개념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나치에 의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진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개념으로, 한 마디로 민주주의의 적들에 맞서 아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민주주의 체제를 가리킨다. 유신헌법의 정초자들은 이 개념을 변용하여 북한이나 우리 내부의 동조자들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박정희의 독재와 종신 집권이 필요하다는 궤변과 함께, 독일 헌법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압축하여 우리 헌법에 새겨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 우리 보수는 바로 그 표현을 근거로 자유민주주의만이 우리나라의 정치적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헌법이 말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곧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 보수가 이해하는 방식의 자유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헌법 전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을 구성하는 변경불가능한 핵심 가치와 원리를 가리킨다”고 해석하면서, 특히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법치라는 세 원리를 강조했다. 이에 따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한 마디로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 가치와 원리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물론 그 개념은 맥락이나 입장에 따라서는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뜻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 개념의 원조 격인 독일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따르면 우리 보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와 대립하거나 구분되는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원리를 강조한,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무턱대고 적대감을 보이는 우리 진보도 사실은 우리 보수의 잘못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들은 오도되고 오해된 개념 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는 아주 반-자유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진보는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우리 보수의 반-자유민주주의적 행태를 내재적으로 비판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지금 교육부가 새로운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억지로 삽입하려는 것은, 그 개념을 민주주의와 대립시킨다는 점에서 틀렸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반-자유민주주의적이라서 문제라고 해야 한다.

국가가 하나의 역사 해석만을 교과서를 통해 미래의 시민들에게 강제하려는 행위는 우리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이제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라는 지긋지긋한 비생산적 논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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