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어떻게 유능한 윤리정당 될 수 있을까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 출범에 부쳐 ‘오만’이라는 악덕 바이러스부터 걷어내야 민주당에게 ‘자유’는 무엇인가, 안 중요한가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 1차 회의에서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 1차 회의에서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유능한, 윤리정당?

마침내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에도 ‘성찰과 혁신’을 한다며 요란을 떨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왜 대선에서 졌는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은 없이 분열상과 도덕적 해이를 확대재생산해 왔을 뿐이었다. 특히 최근의 돈봉투 사건에 이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에 대한 혼란스러운 대처는 많은 지지자들조차도 민주당의 미래를 심각하게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위원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단지 소속 국회의원들만의 당이 아니다. 단지 당원들만의 정당도 아니다. 민주당은 또한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인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반대자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당이다. 민주당은 말하자면 우리 시민들 모두의 ‘공공재’다. 말로만 맨날 자유민주주의를 떠드는 윤석열 ‘법폭정권’의 폭주가 이제 우리 민주주의를 러시아나 헝가리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비자유주의적(illiberal) 민주주의’로 전락시키고 있는 이 때, 많은 시민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여 법폭정권의 전횡을 막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단순히 민주당의 내년 총선 승리만이 과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그동안 180석을 갖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비난받고 있다. 그냥 이대로는 다시 다수당이 될 것 같지도 않지만, 설사 유권자들의 법폭정권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에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대로는 또 다른 정치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민주당은 무엇을 하려는 정당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으리라는 데 대해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신뢰에는 정치인 개개인은 물론 민주당 전체의 정치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도덕적 신뢰도 포함된다. 곧 김은경 위원장이 밝힌 대로 민주당은 ‘유능한 윤리정당’이 되어야 한다. 과연 민주당이 그런 정당이 될 수 있을까?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에 민주당은 최근 들어 심각해진 아주 고질적인 병 하나를 갖고 있다. 정치인들은 물론 그 핵심 지지층도 물들어 있는 ‘오만’이라는 정치적 악덕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게 민주당을 무능할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이기도 한 정당으로 만들고 있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이 바이러스 같은 악덕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민주당의 혁신은 그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어떻게든 혁신위가 제대로 된 처방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오만이라는 정치적 악덕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때부터 조짐이 나타났다. 어떻게든 다수당이 되겠다는 욕심 말고는 별 다른 명분이 없었지만, 운 좋게도(사실은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의 불합리한 효과 때문에) 민주당은 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오만 바이러스의 더 없이 좋은 숙주가 되었다. 민주당은 그 승리를 무슨 짓을 하든 유권자들이 자신들을 믿고 따라줄 것이라는 신호로 오독했다.

그 오만은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당을 갉아 먹었다. 서울 및 부산 재보선 선거는 치명적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기지도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한 데도 민주당은 스스로 만든 당헌까지 바꾸어가며 후보를 냈다. 처참한 패배와 함께 돌이키기 힘든 지지층의 이반이 이어졌다. 그래도 민주당은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과 이준석 같은 포퓰리스트들이 민주정치의 장을 유린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정권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 오만이라는 바이러스는 민주당을 떠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근본적인 성찰과 혁신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른바 ‘졌잘싸’의 태도가 민주당을 지배했다. 이 오만이 과거에 잉태했던 돈봉투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또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민주당은 ‘검찰 탓’만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이 그렇기는 하겠지만, 제대로 된 자기 성찰부터 절실한 일이었다.

민주당의 위기를 극복해 보겠다고 출범시키려 했던 혁신위가 이래경 위원장 내정자의 ‘천안함 폭침’ 발언 때문에 처음부터 삐걱거렸을 때,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천안함과 관련하여 내뱉었던 언사들은 이 오만이라는 악덕 바이러스가 이제는 민주당의 심장마저 갉아먹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한 과거 정부의 공식 발표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생존 장병이나 함장을 모욕하는 건 사건의 원인에 대한 판단을 떠나 가장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몰상식한 언사는 ‘숭고한 희생’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에게 모든 정치적 이득을 안겨주는 정치적 자살행위임이기도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실제로 어느 조사에서 민주당은 지금 국민의힘에 지지율에서 10% 이상 뒤진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두렵다’는 소감을 내 놓은 적이 있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만큼 인간적이거나 정치적인 차원에서 ‘겸손’의 미덕을 가진 정치인은 드물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미덕은 문 대통령 개인을 넘어 그 지지자들과 민주당으로 확산되지는 못한 것 같다.

내 생각에 여기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다. 지금의 민주당은, 정치인들은 물론 그 핵심 지지자들도, 크게 보면 86세대를 중추로 하고 있다. 다들 아는 대로 이 세대는 (사실 나 자신도 속하는데)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커다란 헌신적 희생을 했다. 또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는 우리 사회의 여러 차원에서 진보적 성숙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세대의 정치적 성공은 우리 민주주의의 질곡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세대가 민주화와 사회 진보에 기여하며 헌신했다는 ‘도덕적 우월성’을 거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는 데 기인한다. 민주당의 오만이라는 정치적 악덕 바이러스는 바로 여기서 싹튼 게 아닌가 싶다.

학생운동 시절 심지어 북한의 주체사상을 포함한 어설픈 좌파사상을 신봉했던 이 세대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과거에 대한 선명하고 냉정한 청산과 성찰 과정 없이 애초 그들이 비웃고 조롱하기까지 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물론 아무도 과거의 사상적 틀에 그대로 매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들은 습관처럼 몸에 배인 과거의 정치적 세계관과 충분히 단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만을 앞세우며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데, 내가 볼 때 바로 이게 문제다.

우선, 그러한 배경은 이 세대가 민주정치와 통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적 전문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나는 참여정부에서나 문재인정부에서 이 세대가 주도해서 내 놓은 많은 정책들이 실패하거나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긴다. 가령 투기세력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기조로 했던 두 정부의 부동산 정책만 떠 올려 보라. 두 정부의 정책은 현실을 움직이는 시장의 힘을 이기지 못해 부동산 가격 폭등을 전혀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권에 대한 불만만 증폭시켜, 결과적으로 정권교체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바로 그 도덕적 우월성과 거기서 잉태된 정치적 오만이 최근 수년 동안 민주당을 괴롭혀 온 ‘도덕정치의 덫’이 작동하기 위한 터전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깃발을 더럽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는 ‘위선의 폭로’다. 보수 진영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수십 년 동안 보수 진영은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정치인들의 도덕적 흠결을 찾아 폭로하고 조롱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고, 그 효과도 엄청났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전히 그런 종류의 도덕성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일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24일 오후 귀국했다. 이 전 대표는 입국 직후 "저의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24일 오후 귀국했다. 이 전 대표는 입국 직후 “저의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제대로 된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는 이 오만 바이러스를 하루아침에 몰아내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람이 문제이긴 하지만, 예컨대 ‘586세대 용퇴’ 같은 게 제대로 된 해법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런 식의 접근은 너무 투박하고, 심지어 폭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세대교체’는 언제나 선호되는 대안이긴 하지만, 그리고 민주당이 청년들을 위한 정치적 공간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열어두어야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옳지만, ‘청년’이라는 정체성이 그 자체로 정치적 가치나 역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김남국 의원은 한때 민주당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 정치인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제도나 규칙을 바꾸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다. 혁신위의 노력만으로 단기간에 민주당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쇄신한다는 건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일 것이다. 그보다는 민주당이 좀 더 제대로 된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몇 가지 초석을 놓겠다는 접근법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사실 민주당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정치적 이념과 가치 위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정치적 지향과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다운 정당이라고 하기 힘든 모습을 많이 보여 왔다. 어떻게든 이걸 바꾸어야 한다.

우리 정치가 도덕적 우월성을 자랑하고 도덕적 비난에만 몰두하는 도덕정치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일은 정치와 공론장을 정책적 토론의 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자면 민주당부터 제대로 된 정책정당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선 때만 되면 캠프 중심으로 숱한 정책들이 후보 소속 정당의 정책으로 공약되지만, 이후의 일상적 정치과정에서는 그 공약들은 그냥 휴지통에 처박혀 버리기 일쑤다. 승리한 쪽에서는 몇 몇 핵심 공약들을 이행하기 위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급조된 공약들은 실행 단계에서 포기되거나 변형되는 일이 다반사다. 패배한 쪽에서는 집권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숱한 공약들을 제대로 거들떠도 안 본다. 지금 민주당이 딱 그러고 있다. 이제 이런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심각한 계파 갈등을 겪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갈등은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는 자신들의 재선 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늘 공천권을 누가 갖고 ‘공천 룰’이 어느 쪽에 유리하냐가 다툼의 핵심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책적 방향이나 노선이 토론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정책적 이해나 역량 같은 것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다. 당원들이나 유권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정책은 정당의 정치적 정체성이나 이념, 가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민주당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위한 어떤 ‘도덕적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이 때의 도덕은 도덕정치에서 문제되는 도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어떤 사회로 만들고 싶어하는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인간적 삶의 양식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래서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같은 문제들에 민주당이 어떤 답을 내리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왜 민주당이 자유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행태를 그냥 보고만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에겐 자유라는 가치는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민주당이 추구하는 자유는 윤석열의 자유와는 어떻게 다른지, 또 아니면 민주당은 자유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지 등에 대해 답을 제시하면서 논쟁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민주당이 무슨 이념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 아니다. 요점은 민주당이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지금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설익은 정책들을 비웃고 있지만, 정작 민주당 자신의 색깔을 담은 정책은 무엇인지 보여준 게 별로 없다. 민주당 역시 집권기에 많은 어설픈 정책들 때문에 지지를 잃어버리곤 했다. 나는 민주당이 이런 데 대해 제대로 성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민주당 혁신의 요체는 결국 민주당이 우리 사회를 제대로 통치할 신뢰할만한 정책 역량을 가졌음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데 있지 않겠는가?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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