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정치’의 덫을 어떻게 빠져 나올까?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검찰과 조선일보가 노리고 있는 것은 ‘사적 도덕’과 ‘공적 도덕’ 구분 어려운 한국 ‘도덕적 진보’는 민주당이 지향해야할 가치
‘남국의 강’을 어떻게 건널까?
‘돈봉투 사건’에 이어 민주당이 다시금 ‘도덕정치‘의 덫에 빠져들었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과 함께 제기된 도덕성 논란이 민주당에 대한 또 다른 정치적 비수로 꽂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힘은 물론 진보 언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언론이 김 의원의 위선과 민주당의 안이한 대응을 비판하고 있고, 여론도 이에 상당한 정도로 호응을 하는 모양이다. 민주당이 ‘조국의 강’에 이어 ‘남국의 강’에 빠졌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민주당 쪽에선 이번 사건 역시 검찰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민주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전략적 카드 중의 하나일 거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김 의원 본인도 처음에 그런 차원에서 대응했고, 많은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양이원영 의원은 ‘코인 투자가 비도덕적이냐’라고 반문하면서 김 의원에 대한 비난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마녀 사냥’이라고 규정했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김난국 의원을 비판한 민주당의 청년 정치인들을 ‘좌표 찍기’까지 해 가며 공격을 가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러나 도덕 정치의 힘은 가공할 만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단 누군가에 대한 도덕적 낙인이 찍히고 나면, 적절하게 제어되지 않은 여론은 급속하게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편으로 결집해서 그 비판 대상에게 가혹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곤 한다. 여론은 이런 경우 때로는 그 근거의 올바름 따위는 제대로 따지지도 않은 채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격적 조롱과 모욕, 심지어 인권 침해마저 도덕의 이름으로 자행하기도 한다.
그런 도덕적 단죄의 대상이 되는 개인은 물론 배후의 관련자들이나 정치 집단은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바로 이런 도덕정치의 덫을 피하고 자신의 인격적 고결성과 정치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해야 했던 많은 이들을 기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고, 노회찬 전 의원이 그랬으며,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그랬다.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는 정의연 마포쉼터의 ‘손 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우리는 많은 도덕정치적 사건들에서 여론을 요동치게 했던 의혹들이 나중에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이 난 일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도덕정치의 덫은 아무리 부당해 보여도 그 부당함이 증명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에서 결정적 영향력이 있는 여론의 힘은 폭풍처럼 순식간에 비난받는 개인의 인격과 중요한 정치적 지반을 초토화시켜 버리곤 한다. 지금 검찰과 조선일보는 정확히 이 지점을 노리고 있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닌 게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각종 SNS와 시장화되고 권력화된 언론 때문에 건강하고 이성적인 민주적 숙의를 위한 공론장이 거의 죽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정치를 과도하게 규정하고 있는 이 도덕정치의 잘못된 지배를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검찰과 언론 탓만 한다고 이 도덕정치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새삼 도덕과 정치의 관계를 묻게 된다. 도덕정치의 덫을 극복하려면 우리는 정치에서 도덕을 아예 추방시켜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김남국 의원은 도대체 도덕적으로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사적 도덕’과 ‘공적 도덕’
도덕정치가 꼭 우리나라에서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르윈스키 스캔들’로 큰 정치적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폭로된 것이 발단이었는데, 그는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다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특검의 조사까지 있었고, 그것은 하원의 탄핵 결의로 이어졌더랬다. 그러나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그 세기의 스캔들은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의 도덕성이 문제였다. 백안관에서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도 문제였지만,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거짓말과 르윈스키에 대한 위증 강요 의혹도 정치적 반대자들과 일부 여론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평가가 흥미롭다. 그는 이 스캔들이 기본적으로 클린턴의 내밀한 사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정치적 도덕의 잣대로 재단할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심지어 클린턴의 거짓말조차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여러 선거에서 표현된 미국민들의 여론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독일에서는 2012년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의 부패 관련 의혹이 제기된 일이 있었다.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다. 그가 친구의 은행에서 시중 금리보다 조금 싼 이자로 융자를 받았으며, 여행지의 친구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룸을 업그레이드 받았고, 아들 생일에 30~40유로(약 5만원) 정도 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 정도가 제기된 의혹들이다. 그밖에 그는 그런 문제를 처음 폭로한 언론에 전화를 걸어 항의한 일이 있는데, 이 일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우리나라 같으면 잠깐의 소동으로 끝났을 수도 있는 이런 작은 흠결로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의회중심제(의원내각제) 국가인 독일에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일 뿐이다. 하지만 독일의 언론과 시민사회는 그가 저지른 행위를 심각한 부패로 받아들였다. 독일의 정론 주간지 슈피겔(Spiegel)은 불프 대통령이 독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공직자는 자신의 직위나 권한을 이용해서 아무리 작더라도 사적인 이익이나 혜택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아주 엄격한 정치적 도덕의 잣대가 적용되었고, 실권 없는 대통령이라도 언론 보도에 항의를 한 일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평가되었다.
우리와는 정치 제도나 문화 등이 다른 두 나라의 사례를 무턱대고 전범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두 사례를 통해 민주주의 정치에서 도덕적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를 얻을 수 있지 싶다.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문제는 클린턴 대통령의 ‘사적 도덕’이었다면, 독일 불프 대통령 사건에서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켜야 할 ‘공적 도덕’의 원칙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두 차원의 경계가 언제나 명확하지는 않다). 제법 심각한 도덕적 잘못처럼 보이더라도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는 섣부르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일은 아니며,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공직자는 자신의 지위를 공적 목적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성리학적 정치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상’ 때문인지 너무 자주 두 차원이 혼동되곤 하는데, 한 번 돌이켜 볼 일이 아닌가 한다.
이런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 문제는 기본적으로 의원 개인의 경제적 이익 추구와 관련된 사건으로 그 자체만 보면 정치적 도덕의 잣대로 접근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은 돈봉투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돈봉투 사건은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비자금을 만들어 특정 후보의 지지를 유도했다는 의혹과 관련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민주당이라는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를 위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가 단순하지는 않다. 의혹은 단순히 김 의원의 코인 투자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부당한 내부자 정보를 이용했다든가, 탈세를 했다든가 하는 범죄적 행위에 있다. 그러나 이 점은 사실관계부터 확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지는 김 의원에 대한 모든 비난은 그 편에서 하나의 ‘윤리적 폭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상임위 활동 중 투자 행위에 대해서는 준엄한 비판이 가해져야 마땅하다.
‘가치의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다. 그것은 코인 투자 그 자체의 도덕성에 관한 것이다. 비록 코인 투자가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지만, 그 투기적 성격은 진작부터 여러 차원에서 제기되어 왔다. 게다가 투자의 규모나 수익의 크기를 볼 때 김 의원의 투자는 거의 전문적인 투기 수준이라는 의혹을 벗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의원은 그동안 다양한 의제들에서 민주당의 입장을 전투적으로 대변해 온 정치인인데, 그런 식의 코인 투자가 과연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적인 민주당의 정치인에게 어울리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이 문제는 민주당의 정치적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다.
양이원영 의원은 도덕성이 시대마다 상대적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지금 가상화폐 투자를 그 자체로 비도덕적이라고 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상화폐가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정치적 가치 지향과 어울리는지는 다른 문제다. 가상화폐 투자를 불법적이라거나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하지 않더라도, 또 민주당이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지지도 끌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투기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런 투자는 민주당이 기초하고 장려해야 할 건강한 민주적 시민의 덕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물며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다. 땀 흘려 일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도록 해야 하며 연대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정치적 도덕성이 아닐까?
양이원영 의원은 또 ‘민주당이 도덕 능력보다 통치 능력으로 우월성을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역시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 통치능력에는 민주당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비전 제시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역량이 포함된다. 이런 것도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성격의 것이다. 정치인 개인의 사적 도덕의 차원이 지나치게 문제가 되는 우리의 성리학적 정치 문화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인 개인의 엄격한 공적 도덕 준수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도덕적 성격이나 질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담은 참된 ‘가치의 정치’는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는 진보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무슨 역사철학적 신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진보’에 대한 기대를 표현한 것이라 해야 한다. 물론 이때의 도덕은 특정한 개인의 윤리적 신념 따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인간적 존엄성이 존중되고 보장되는 사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지향이다. 지금 민주당에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런 차원의 도덕적 지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정치다. 이런 가치의 정치 없이 민주당은 결코 ‘남국의 강’을 건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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