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포화 속, 한국 외교도 더 대담해야
- 포화 속의 실리 외교 미국이 이란 전쟁에 매몰된 사이, 일본(이란 채널 가동)과 중국(대만 주도권 선점) 등 주요국들은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담한 틈새 외교’를 펼치고 있다.
- 전략적 반사이익 러시아는 미국의 묵인 하에 석유를 현금화해 쿠바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는 전장의 기술을 중동에 파는 등 전쟁의 비극조차 외교적 자산으로 치환하는 비정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 처칠의 경고와 한국의 과제 “외교는 찬사가 아닌 편익을 위한 것”이라는 처칠의 말처럼, 우리 역시 화려한 동맹의 수사를 넘어 국익을 위한 냉혹하고 대담한 외교적 상상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교는 전쟁과 평화, 그 어떤 시기에도 멈춰 서서는 안 되는 국가의 백년대계다. 특히 지금처럼 전운이 짙게 깔린 시기일수록 외교의 보폭은 더 넓고 대담해져야 한다.
현재 세계 외교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 막대한 화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그 불길을 완전히 잡지 못하는 사이 일본과 중국 등 주요국들은 자국의 ‘실익’을 챙기기 위해 치열한 물밑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이 전장에 매몰된 틈을 타 각국이 ‘국익’이라는 이름의 틈새를 파고드는 형국이다. 이 대담한 외교적 기동이 결국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고 있다.
일본의 ‘뒷문 외교’...이란과 70년 의리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3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란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전격적으로 시사했다. 그는 “국익에 근거해 적절한 시점을 판단하겠다”며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야당인 중도개혁연합의 이사 신이치 의원이 “일본이 중심이 돼 미국과 이란 사이의 중재를 진행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의중을 묻자 이같이 답변했다.
상대방이 이란의 누구인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가 전쟁 중에 이란의 손을 잡으려 하는 배경에는 일본 특유의 ‘뒷문 외교’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과 이란의 인연은 1953년 ‘닛쇼마루(日章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의 해상 봉쇄를 뚫고 이란 석유를 직접 실어온 이 사건은 이란인들에게 “일본은 어려울 때 도와준 진정한 친구”라는 강렬한 각인을 남겼다.
원유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목줄’로 둔 일본으로선, 미국의 참전 압박을 받으면서도 이란과의 독자적인 대화 창구를 열어두는 것이 생존을 위한 대담한 필수 선택인 셈이다.

중국의 ‘전략적 무임승차’...양안 관계 관리
미국이 중동 전장에 수조 달러를 쏟아붓는 사이, 중국 역시 실리 확보를 위해 전방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오는 4월 7일, 대만 국민당의 정리원(鄭麗文) 주석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 이는 2005년 롄전(連戰), 2015년 마잉구(馬英九)로 이어졌던 양안 외교의 ‘세 번째 대공세’다. 국민당은 시진핑의 제안을 즉각 수락하며 화답했다.
이번 초청은 5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대만 문제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이란 전쟁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양안 관계에서 ‘중국식 평화’ 프레임을 짜고 대만 내 친중 여론을 결집하려는 의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중국의 전략적 무임승차(Strategic Free-riding)”라고 정의했다. 총 한 발 쏘지 않고도 미국의 지도력 약화를 지켜보며, 아시아에서 “미국은 더 이상 믿을 만한 보호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중국은 유가 요동을 틈타 러시아로부터 헐값에 에너지를 사들이며 경제적 내실까지 다지고 있다.
러시아의 쿠바 지원, 트럼프의 ‘방조’
“쿠바를 고사시키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러시아 유조선은 현재 쿠바 입항을 앞두고 있다. 멕시코의 셰인바움 대통령 또한 “쿠바에 석유를 보낼 권리가 있다”며 지원 의사를 공식화했다.
놀라운 점은 트럼프의 반응이다. 그는 이에 대해 “그들도 생존해야 하니 상관없다”며 사실상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란 전쟁에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의 소음을 일단 잠재우려는 실리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역시 이번 전쟁의 숨은 수혜국이다. 미 재무부(OFAC)는 에너지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러시아산 석유의 한시적 하역을 허용하는 일반 면허(GL 134)를 발급했다. 러시아는 이 기회를 틈타 재고 석유를 현금화하며 전쟁 예산을 확보하고, 그중 일부를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쿠바에 보냈다.
트럼프는 “이미 끝났다(Cuba’s finished)”는 오만함으로 이를 방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란 전장에 매몰되어 뒷마당의 균열을 막지 못하는 미국의 한계를 보여준다.
외교는 찬사가 아닌 ‘편익’의 학문이다
이런 와중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중동 순방도 주목할 만하다. UAE와 요르단을 돌며 이란산 드론에 대응하는 자국의 ‘요격 기술’을 전수하고 방위 협력을 이끌어내는 그의 행보는, 전장의 비극조차 외교적 자산으로 치환하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세계 주요국들은 전쟁의 포성이 가장 크게 울리는 순간에도 외교관의 구두 밑창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누군가는 기름을 탐내고, 누군가는 빈집을 노리며, 누군가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무기를 판다.
이 비정한 각축장에서 한국 외교 역시 화려한 동맹의 수사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국익을 찾아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대담한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 수상은 일찍이 간파했다. “외교 관계를 맺는 이유는 상대에게 찬사를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편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모든 나라가 언제나 국익 외교에 사활을 건다. 우리에게도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대담하고 비정한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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