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보다 더 화려한 새해의 ‘해‘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한국인이 ‘해돋이’ 보며 무의식속에 바라는 것은

새해 첫날 강릉 정동진에서 시민들이 해돋이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새해 첫날 강릉 정동진에서 시민들이 해돋이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왜 해돋이 보러갈까

희망찬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동해안에 가서 해돋이를 보았고, 또 어떤 이들은 산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하였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출을 보면서 산과 바다의 기를 받아서 벅찬 감동에 ‘야호’ 하면서 크게 함성을 질렀다.

따뜻한 집에서 새해를 맞아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추위에도 불구하고 산 정상이나 바다에서 첫날 해돋이를 보러 갈까 하고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어디서든 새해의 소원을 빌 수 있는데 왜 굳이 해돋이를 보면서 새해의 희망과 소망을 빌까 하고 의아해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해 첫날 이렇게 추위를 뚫고 산과 바다로 가서 해돋이를 보면서 소원을 비는 데에는 한국어 ‘해’가 우리에게 주는 무의식적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가 주는 무의식적 욕망

‘해’는 태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해’가 바뀌었다, ‘해’를 넘긴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한다, 새로운 ‘해’를 맞는다 등과 같이 표현할 때의 ‘해’는 ‘연’(年, year)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1년이 지구가 ‘해’(태양 sun)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생겨난 뜻이다.

태양을 가리키는 ‘해’라는 말은 이외에도 우리말에서 많은 어휘를 만들어냈다.

첫째, 흰색을 나타내는 형용사 ‘희다’(白)가 ‘해’에서 온 말이다. 흰색을 보고 해의 색깔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흰색을 해에서 나오는 빛과 비슷한 빛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다’에서 ‘희끗희끗’, ‘희나리’(채 마르지 아니한 장작), ‘희아리’(조금 상해 말라서 희끗희끗하게 얼룩이 진 고추) 등의 말이 파생되었다. 티 없이 깨끗하다는 뜻의 ‘해맑다’가 비슷한 말로 ‘희맑다’를 가지고 있음을 보아도 ‘해’와 ‘희’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앞이 탁트여 넓고 시원하다는 뜻의 ‘훤하다’도 ‘해’에서 나온 말이다. ‘밖이 훤하다. 앞길이 훤하다’와 같이 쓰는데, 태양처럼 밝은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생각해 보면 적절한 비유라 아니할 수 없다. 막힘없이 깨끗하고 시원스럽다는 뜻의 ‘훤칠하다’도 ‘해’에서 왔다. 역시 햇빛이 닿는 곳이라면 막힘이 없고 시원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해’가 ‘새’가 되다

머리카락이나 수염 따위의 털이 희어진다는 뜻의 ‘(머리가) 세다’도 ‘해’가 ‘새-/세-’로 구개음화 된 것이다. 물론 ‘새치’도 마찬가지이다.

‘ㅎ’이 ‘ㅅ’으로 바뀌는 구개음화는 ‘형님’을 ‘성님’으로, ‘힘’을 ‘심’으로 발음하는 예에서 볼 수 있는데, 중세어 ‘혜다’(算數)가 ‘세다’로 바뀐 예도 그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현대 국어에서는 ‘(돈을) 세다’를 ‘(돈을) 헤아리다’로 하는 경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날이 밝는다는 뜻으로 ‘날이 새다’라고 하는데 이때의 ‘새다’도 날이 하얗게 된다는, 즉 역시 ‘희다’가 ‘새다’로 구개음화된 결과를 보여준다. ‘(눈이) 시다, 부시다’도 ‘희다’가 ‘시다’로 바뀐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흰색(白, 素)을 뜻하는 일본어 ‘시로’도 우리말과 어원이 같다. 당구 칠 때 ‘히로(시로)가 났다’ 혹은 ‘히로(시로)가 될 게 뻔하다’라고 하는 표현을 생각해 보면 쉽다.

둘째, ‘해’는 ‘동쪽’을 뜻하는 말들을 만들어 냈다. ‘해’는 항상 ‘동쪽’에서 떠오르는 존재이니 그 자체가 동쪽이라는 뜻을 가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선 ‘새벽’이라는 단어가 그러하다. ‘새벽’은 고유어로 동쪽을 뜻하는 ‘새’(앞서 말한 대로, ‘새’는 ‘해’가 구개음화 된 결과)와 ‘밝다’의 어근 ‘밝’에서 온 ‘벽’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밝다’는 ‘불’에서 온 말로서, ‘불’의 색깔이 ‘붉’기 때문에 ‘불’에서 ‘붉다’가 나왔고 불이 붙으면 ‘밝아’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밝다’도 나왔다. 즉 ‘새벽’은 ‘동쪽’과 ‘밝다’가 결합하여 결국 ‘동쪽에서 해가 밝아오는 시간’을 뜻하는 것이다.

‘새’가 동쪽을 가리키는 예는, ‘새벽’ 외에도 ‘샛별’과 ‘샛바람’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샛별’은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이고, ‘샛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한다.

‘날이 새다’를 위에서 말한 대로 ‘날이 하얗게 밝다’로 해석하지 않고, 즉 여기서의 ‘새’를, ‘희(다)’로 해석하지 않고, ‘새’를 동쪽을 뜻하는 말로 보아,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다’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새해’는 해가 두번 겹친 말

셋째, ‘해’는 ‘새롭다’(新)는 뜻의 많은 단어를 파생시켰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로 해가 솟아나므로 ‘해’는 자연스럽게 ‘새롭다’는 뜻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해에 새로 난 쌀을 ‘햅쌀’이라 하고, 그해에 새로 난 농산물들을 ‘햇곡식’, ‘햇감자’, ‘햇과일’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방금 새로 태어난 병아리를 ‘햇병아리’라고 하지 않는가?

‘해’에서 구개음화된 ‘새’도 마찬가지로 ‘새댁’, ‘새내기’, ‘새뜻하다’, ‘새록새록’ 등에서와 같이 많은 단어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그리고 ‘새 건물, 새 옷, 새 기분’ 등에서처럼 우리가 흔히 쓰는 관형사 ‘새’도 바로 이 ‘해’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새해’라는 말은 태양을 가리키는 ‘해’가 의미변화를 통해 두 번 겹친 말이라 하겠다.

이상에서 우리는 ‘해’가 본래의 ‘태양’이라는 뜻으로부터 세 개의 다른 의미로 그 영역을 확장해 왔음을 보았다. ‘희다, 밝다’, ‘동쪽’, ‘새롭다’가 그것이다. ‘해’가 ‘희다’는 뜻을 가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당연히 그 빛에 있다. 해가 빛의 근원이기 때문에 ‘해’는 밝은 것, 광명을 뜻한다. 그리고 ‘해’는 동쪽을 뜻하고, 비록 같은 자리이지만 새벽마다 새로 뜨므로 그것은 항상 새로움을 뜻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엄청난 추위를 뚫고 애써 ‘동쪽’으로 가서 새해 첫날 어둠 속에서 찬란한 ‘빛을 내며’ ‘새롭게’ 솟아나는 해를 보면서 소원을 비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해’의 의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언어에는 우리의 무의식적 욕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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