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정말로 나를 사랑하세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어머니에 대한 애정 결핍과 인정 욕구에 대해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언제부터 엄마의 사랑을 의심했을까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지 궁금했던 경험을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에 동네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다리 난간에 끼어서 다친 적이 있다. 그때 성장판이 손상됐는지, 오른쪽 새끼손가락의 길이가 왼쪽에 비해 약간 짧다. 서너 살밖에 되지 않았을 터인데도 그때 필자의 손가락을 붙잡고 억지로 울음을 참던 엄마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엄마가 ‘나를 많이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하나씩 늘어만 갔고 그때마다 무섭게 혼이 나면서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내가 만약 사라진다면 엄마는 얼마나 슬퍼할지’ 상상해본 적도 있었다. 엄마한테 혼났을 때, 내가 만약에 죽는다면, 엄마는 얼마나 슬퍼할까를 생각하면서 엄마에 대한 미움을 스스로 해소한 적이 있는데,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의 역사는 어머니의 뱃속으로부터 시작된다. 내 존재의 시초인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이다. 그런 엄마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행복으로 가득 찼던 마음에 어느덧 엄마에 대한 의심이 한 자락씩 생기기 시작한다. 엄마가 나의 모든 욕구와 욕망을 다 채워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나를 실망시켜도 엄마를 미워할 수는 없다. 엄마를 부정하면서 나의 존재를 세우기는 힘들다.

주변에서 어머니와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심한 갈등과 심리적인 압박이 평생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어머니와 관계는 애증 관계로 발전한다. 유아기 때부터 그런 갈등이 시작된다. 엄마의 젖을 빨 때 배가 부르면 만족스럽지만, 배가 고픈데 엄마가 젖을 늦게 주면 짜증이 난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엄마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교차로 혼란에 빠진 아이는 나쁜 젖가슴과 좋은 젖가슴을 분리하는 방어책을 택한다고 한다. 엄마에 대한 나쁜 감정을 나쁜 젖가슴에 투사해 혼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하지만 나쁜 젖가슴과 좋은 젖가슴이 모두 같은 엄마이기 때문에 사실은 분열돼있는 상태다.

어머니에 인정받고 싶었던 ‘듀폰’ 회장의 욕구

2015년에 개봉한 영화 <폭스캐처>는 초점이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지는 않다. 어머니와의 갈등 장면은 비교적 짧게 묘사하지만 심도 있게 관찰해보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어머니의 영향이 얼마나 밀접한지 혹은 집착에 의한 압력이 얼마나 파괴적인지에 관해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유명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화학산업체인 듀폰 사의 존 듀폰 회장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데이브 슐츠를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1996년에 발생했다. 존 듀폰은 그 일로 체포돼 복역하던 중 사망하고 마는데 끝까지 살인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영화 <폭스캐처>는 그 사건의 동기에 대한 심리적인 분석이 깔려 있다. 존 듀폰은 자신의 심경에 대해 직접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출발점이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라고 암시한다는 점이다. 어머니와 관련된, 짧지만 임팩트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 '폭스캐처'에서 존 듀폰을 무시하는 어머니.
영화 ‘폭스캐처’에서 존 듀폰을 무시하는 어머니.

귀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포츠는 승마라고 생각하는 존 듀폰의 어머니는 ‘승마 마니아’였다. 그런데 아들 존이 레슬링에 심취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레슬링은 천박한 스포츠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존은 레슬링에 심취한 정도를 넘어 천착한다. 자신이 후원하고 양성하는 레슬러들이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하려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탄 존의 어머니가 레슬러들이 훈련하고 있는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이를 본 존은 어머니에게 당당히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공개대형으로 벌리고 열심히 코칭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레슬링은 천박한 스포츠가 아니며, 자신이 투자하는 이 일은 국가의 명예를 위한 숭고한 일임을 어머니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잠시 관찰하다가 말없이 사라진다.

그때 어머니의 표정이 매우 묘해서 한 번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관객은 곧 깨닫게 된다. 어머니는 레슬링에 천착하는 아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다. 존은 어머니에게 자랑스런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보여주는 등 노력하지만 어머니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하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존 듀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명마들을 모두 방목해 버린 것이다. 어머니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를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존은 그렇게 복수를 한 셈이다.

존의 채우지 못한 자존감을 채워주는 강력한 힘은 ‘국가주의’이다. 듀폰 가의 조상들이 세운 업적과 재력을 통해 미국의 위상을 세우는 것이다. 존은 듀폰 가의 돈을 아낌없이 써서라도 자신이 존경받는 위치에 서고 싶어 한다.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빗과 마크 슐츠 형제에게 존경받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어 하지만 데이빗을 만난 존은 혼란에 휩싸인다. 데이빗 슐츠는 돈보다 가족과 소박한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한편 존은 돈이라면 뭐든지 성취할 수 있다는 야욕을 가진 사람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레슬링 코치인 데이빗을 영입하기를 갈망했던 존은 마크에게 압력을 가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형은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에요.”

데이빗의 동생 마크의 말을 무시하고, 어느 일요일에 존 듀폰 회장은 데이빗을 찾아갔다가 철저히 무시를 당한다. 세계 굴지의 대기업 듀폰사의 회장이 찾아왔는데 말 그대로 문전박대를 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지만 존은 참기 어려운 수치감을 느꼈을 것이다.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해서요”라며 자신의 방문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돈과 허영으로 유지되던 존의 권력에 균열이 간다. 돈으로도 마음대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충격을 그때 처음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총탄이 발사된다. 표면으로 드러난 행위는 이해하기 힘든 동기 없는 살인이지만, 존의 심리 밑바닥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결핍,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니, 정말 저를 사랑하시나요?

반대로 엄마와 딸의 관계가 잘 봉합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가 있다. 2018년에 개봉한 그레터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현실에 가깝게 묘사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시얼사 로넌이 반항기로 넘치는 사춘기 소녀 레이디 버드역을 맡아 사사건건 엄마와 충돌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가벼운 말싸움을 하다가 엄마가 운전하는 자가용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과격한 행동까지 한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해고되는 바람에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레이디 버드가 엄마 몰래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계획을 세운 것을 알고 모녀의 사이가 틀어진다. 마음이 상한 엄마는 공항까지 운전하면서 한 번도 딸과 눈을 맞추지 않고 딸만 내려주고 그대로 가버린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공항으로 돌아간다. 딸과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해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뉴욕에 도착한 레이디 버드는 짐 속에서 엄마의 편지 꾸러미를 발견한다. 딸에게 썼지만 쑥스러워서 차마 보여주지 못했던 편지들이다. 엄마의 진심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레이디 버드도 눈물을 흘린다.

겉으로는 아무리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워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게 풀리지만은 않는다. 어머니와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먼저 자신에게 솔직해져야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어머니와 자식 관계는 너무나 끈끈하기 때문에 그만큼 미움의 골도 깊다.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없으니까. 이 지독한 애증의 관계가 바로 어머니와 나의 관계다. 어머니,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시나요. 혹은 정말로 나를 미워하시나요. 성장하면서 숱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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