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대신 문화적 감수성과 포용적 외교가 답이다
[언어학자의 한국대선 동향과 전망] 사드 추가 배치로는 안보 확신할 수 없어 미국 9·11 테러사건에서 배워야할 것은 ‘문화적 감수성’으로 포용사회 만드는 지혜를
윤석열 후보가 며칠 전 수도권 방어를 위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추가 배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우리가 바라는 자유 평화 번영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석열 후보의 말대로 과연 힘이 평화를 보장할까?
진정한 ‘Security blanket’은
여기서 떠오르는 영어 표현 하나가 있다. 미국영어에서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잘 쓰는 용어로 ‘security blanket’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표현의 말 그대로의 의미는 집에서 아이가 즐겨 덮는 안정감을 주는 이불이나 담요를 뜻한다. 이 뜻을 은유 확대하여 개인이나 국가가 ‘안전하게 느끼도록 사용하거나 유지할 수 있는 어떤 것(anything that you use or keep to make you feel safe)’을 뜻하기 위해 널리 쓴다.
국가의 경우 당연히 ‘security blanket’으로서 강력한 군사력이 먼저 떠오른다. 윤석열 후보의 주장을 ‘힘이 곧 평화’라고 해석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가장 평화로운 나라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여기서 평화라는 개념을 외침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매우 좁게 정의한다면 일견 이 주장이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건국 이래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 사건을 제외하면 본토가 외국 군대에 의해 공격을 당한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은 남의 땅에서 자신의 패권과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왔으며 미국 사람들에게는 미국 본토는 공격을 받지 않는 평화로운 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2002년의 9·11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3,000여명의 사람이 사망했고 6,0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의 상징인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파괴되고 수도 워싱턴의 국방부 빌딩도 공격을 당했다. 이 사건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의 자존심을 짓밟은 사건이었다. 더욱 중요한 의미는 아무리 강력한 군대를 유지해도 절대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강력한 군사력보다 평화를 더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security blanket’은 없을까? 이와 관련 어느 응용언어학자(Alice Omaggio Hadley)의 아래 주장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Cultural sensitivity can play a vital role in the security, defense, and economic well-being of a country (문화적 감수성은 한 나라의 안보, 방어와 경제적 번영에 생명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일견 너무 거창한 주장 같아 보이지만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깊은 교훈을 주는 말이다. 왜 미국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테러 대상국이 되었으며, 왜 그들은 미국을 상대로 피의 보복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을까? 9·11 사건의 근본 원인을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감수성이 부족했던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비극적 사건의 배경에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이슬람권의 대결 구도에서 일방적으로 전자의 편을 들고 이슬람 문화권의 다름을 존중하기는커녕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앞세워 피를 부르는 학살 전쟁을 서슴치 않는 만행을 저질러 왔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는 외교 정책을 펴왔다면 이런 참극을 겪으며 안보 불안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의 안보는 ‘문화적 감수성’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겪은 후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과 위협 속에서 끊임없이 안보 불안을 겪으며 살아왔다. 사드(THADD)를 배치하고 더 많은 F35를 들여오고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한다고 해서 우리의 안보를 더 튼튼히 할 수 있을까? 과연 이렇게 하면 전쟁의 불안이 사라지고 든든한 마음이 들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의 대결과 갈등 구도가 지속되는 한 계속 불안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평화 정책을 펴는 동시에 이 사회가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어 세계 곳곳에서 타민족 사람들이 모여드는 나라가 된다면 훨씬 전쟁의 위협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화된 이 시기에 문화적 감수성을 더욱 발휘하여 세계의 많은 민족과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이 땅에 살게 되고 방문객이 증가한다면 감히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엄두도 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이곳 한국에 중국인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security blanket’이 될 것이다. 북한이 감히 그들의 혈맹인 중국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 누가 보아도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여서 외국인들이 동경하여 살고 싶고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된다면 이곳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들 덕분에 전쟁의 위협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일깨워 준다. 한 나라의 안보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모든 민족과 나라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좋은‘” 나라, “아름다운” 나라를 가꾸어서 그 안에 실제로 많은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화목 속에 살면서 성숙한 문화를 꽃피우는 것이다. 이런 성숙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 국민들이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성숙한 문화적 감수성을 발달시켜야 한다.
같은 민족인 북한에게도 그들을 이해하려는 문화적 감수성을 더 키우고 포용하려는 는 줄기의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남북이 대결 대신 대화와 교류의 길을 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덕분에 남북 간 기본 신뢰 관계가 깔리게 되었고 북한이 남한을 감히 침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장 적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후보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라도 남북 관계를 대결 구도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되어야
그리고 세계적인 한국 문화의 인기 속에서 현 정부는 포용 외교 정책을 펼쳐서 이제 한국은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곳이 되었고 이미 한국은 많은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포용 사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는 며칠 전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실에 어긋나는 매우 부적절한 말을 해서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포용 사회에 흠집을 냈다. 윤석열 후보는 불필요한 갈등의 언어로 포용 사회 분위기를 헤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오히려 대결과 갈등의 언어로 안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6위의 군사력과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는 선진국이며 수많은 외국인이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 최강 미국과 강력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위협이 못 된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한국을 위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전략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윤석열 후보도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만일 그가 이것을 모른다면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가진 매우 무지한 사람이다.
이미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고 아름다운 포용 사회를 가꾸어서 많은 외국인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었는데 왜 불필요한 무기 도입을 들먹이며 북한을 자극하는가? 여기서 굳이 사드(THADD)가 북한이 최근 개발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초음속 미사일과 더구나 핵미사일을 과연 방어할 수 있는지 군사 전문적인 질문을 할 필요조차도 없다. 극히 상식적인 판단의 문제이다. 그들에게 미사일을 쏠 마음도, 이유도 없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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