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도 쫓아낸다...일벌의 ‘공동체 정신’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일벌은 평생 군집 유지에 전력해 한국인도 공동체 유지에 희생 감수해 이기적 행동이냐 이타적 행동이냐
대학 때 두번 들은 수업이 있다. 바로 양봉학이다. 양봉학은 꿀벌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이다. 두번 수업을 들으니 꿀벌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특별해졌다. 양봉이나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까지 할 지경이었다. 양봉학 수업을 들으면서 특히 궁금했던 것은 꿀벌의 일생이었다. 의외로 꿀벌의 일생은 철저하게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일벌은 노예처럼 일만 한다고?
꿀벌은 여왕벌이 알을 놓으면 그 알이 부화를 하는 데 3일이 걸린다. 부화된 후 애벌레가 되어서 6일동안 몸을 불리면서 자란다. 그리고 나서 12일간의 번데기 시기를 가진다. 모든 곤충은 변태, 즉 번데기 시기를 거친다. 그리고 나서 번데기 껍질을 벗으면서 일벌로 태어나는 것이다. 알에서 꿀벌까지 걸리는 시간이 21일이다.
꿀벌이 되었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꿀벌은 일벌로 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정이 정해져 있다. 꿀벌로 활동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유충 즉 애벌레를 키우는 일을 15~18일 정도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애벌레 방을 청소하기도 하고, 밀랍으로 집을 수리하고, 번데기가 되는 애벌레의 방도 덮어준다. 밀랍을 만드는 것은 주로 꿀벌이 된 지 10일에서 15일 정도됐을 때다. 꿀을 먹고 꿀벌이 자신의 몸에 있는 밀랍 샘을 통해서 밀랍을 분비해 꿀벌집을 짓는 것이다. 1kg의 꿀을 먹으면 100g의 밀랍이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밀랍이 꿀보다 더 가치가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벌통의 출입구를 지키는 것도 이때 하는 일이다. 꿀벌로서 가장 튼튼할 때이기 때문이다. 즉 벌통 내의 집안 살림살이는 태어난 지 21일 이내의 일벌들이 다 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 꿀벌은 꿀을 모으는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한다. 이때부터는 꿀벌이 죽을 수도 있지만, 벌 군집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 한번에 꿀을 따오는 양이 대략 0.02~0.04g 정도다. 1kg의 벌꿀을 모으기 위해서는 5만번 이상 일벌이 꿀을 채집해야 한다. 정말로 꿀 한 방울에는 그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담겨 있는 셈이다. 꿀벌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산다. 3개월 정도 사는 것은 꿀을 따러 너무 많이 다녀서 노화해 일찍 죽는 경우다. 그리고 6개월 정도 사는 것은 겨울철이 다가와서 이제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저장해둔 꿀만 먹고 버티는 시기에 살아남은 벌들의 수명이다.
그러면 모든 벌들이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일까? 꿀벌 집단에 하나 밖에 없는 여왕벌은 최대 7년을 산다. 여왕벌은 하루 2,000개 정도의 알을 낳고 평생 100만번 정도를 낳아서 공동체를 유지한다. 알 낳는 것 외는 아무것도 안하고, 꿀벌 즉 일벌이 모든 일을 대신해준다. 그리고 수벌이 태어나 하는 일은 여왕벌과 한번 교미를 하는 것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벌은 겨울이 다가오면 벌통밖으로 쫓겨난다. 양봉학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은 항상 이 대목을 만나면 남자들의 일생이라며 슬픔을 표현하셨다. 쓸모가 없어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수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일벌의 반란...여왕벌 마저?
그런데 일벌과 여왕벌은 다르지 않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여왕벌은 평생을 알만 낳는 반면, 일벌은 여왕벌이 낳은 알을 기르고 꿀을 찾고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가 죽는다. 그래서 꿀벌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양봉학 수업 시간에 꿀벌들이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놓고 숱하게 토론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사회적 곤충(social insects)’ 이라고 불리는 개미나 꿀벌 세계에서는 이런 특이한 현상이 많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지만 개인의 자유나 개체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벌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어날 때부터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자신의 자손을 전혀 낳지 못한다.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노예처럼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서 알려졌다. 종은 개체보다는 유전자를 더 남기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즉 꿀벌 집단의 일벌이 최선을 다해서 꿀벌 군집이 유지되도록 하는 이유는 그 꿀벌 군집의 모든 애벌레, 일벌, 수벌 그리고 여왕벌까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꿀벌 군집이 번성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유전자가 계속 보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일벌의 입장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 번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셈이다.
가끔 여왕벌이 문제가 생겨 꿀벌 군집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으면, 일벌들은 바로 행동을 개시해서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들고 부실한 여왕벌을 죽여 벌통 밖으로 내보낸다. 즉 꿀벌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서 바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여왕벌이라고 하여도 가차 없이 행하다. 어쩌면 그 여왕벌은 자신을 낳아준 어미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일벌이 평생 일만 하다가 착취당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일벌이 실제는 그 군집의 주인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꿀벌 군집이 유지 발전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꿀벌이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사회적 곤충으로 진화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의 법칙으로 보면 보다 효과적인 종족 번성, 더 나아가서 유전자 번성이라는 관점으로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 공생이고 협업이다. 바로 사회적 곤충처럼 협업 체계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점을 이미 꿀벌도 알았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렇게 진화를 한 것이다.
한국인의 시스템, ‘공동체 정신’...그러나 아쉬운 점은
사회적 동물로 진화를 한 인간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생존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끊임없이 해왔다. 공동체 의식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하고 유지해온 민족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인이다. 한국인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 정신’이다. 공동체 내에서 서로 힘이 되고 서로 간의 희생을 통해서 공동체가 유지하도록 만든다.
그럴려면 제일 먼저 그 공동체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과거의 한국인 공동체는 씨족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그것이 발달해 가문으로 진화했다. 철저하게 가문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였다. 개인적인 희생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이를 말없이 따랐던 것도 공동체가 살면 개인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특정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면 즉 가문이나 지연, 학연을 강조하면 그것이 특정 집단의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한다.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갈등을 반복했던 것도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변질된 공동체 의식에 기반해 공동체 단위의 개념 확장이 안된 탓이 크다. 즉 개인→가족 공동체→기업 공동체→지역 공동체→국가 공동체→ 한민족 공동체로 확장할 때 그 단계마다 갈등의 소지가 많은데, 실제 그 공동체를 유지 발전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형태의 이익을 서로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갈등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위의 공동체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회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온 것이 한민족이다. 기업이 망하고 국가도 망하는 IMF위기 때, 온 국민이 한민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국가를 공동체로 인식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시각에서는 이해가 안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 공동체가 지켜져야 하위의 지역공동체나 기업 공동체도 심지어 가족 공동체도 지켜질 수 있다는 믿음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국난 극복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벌이 꿀벌 공동체를 위해서 시스템화 되어서 일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인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 등급에 따른 이해 관계를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서 유지해왔다.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이타적 행동’
공동체 간에는 공생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공동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인도 이제는 자신의 공동체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특정 단계의 공동체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문제다. 기업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가족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가 붕괴되어도 좋다고 하는 순간, 그 기업공동체는 일시적으로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파괴되고 만다. 그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인지길’이다. 즉 얼마나 오랜 시간을 두고 공동체가 유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이해가 깊으면 깊을수록 협동과 공생을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천국과 지옥을 표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지옥이나 천국이나 동일한 환경이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팔을 굽히지 못한다. 그런데 지옥에 사는 사람은 굶어 죽기도 하고 서로 먹으려고 싸우며 난리지만, 천국은 너무나도 평화롭게 먹고 살고 있다. 지옥의 사람들은 자기가 먼저 먹겠다고 한다. 그래서 남이 먹는 것을 뺏어 먹으려고 난리이다. 그렇다고 먹을 수도 없다. 팔을 굽힐 수 없기 때문에 욕심만 부리지 먹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천국의 사람들은 먼저 남을 먹인다. 팔이 굽혀지지 않지만 남을 먹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차이라는 의미다.
자연에서 진화를 가장 많이 한 동물은 곤충 중에는 사회적 곤충에 속하는 개미나 벌이다. 당연히 척추동물 중에서는 인간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사회적 관계로 진화를 했다는 점이다. 공동체를 우선시 하고 개인을 먼저 희생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번성하고 진화한 것이다. 인류가 이기심으로 가득차고, 기업도 이기심으로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은 무한 경쟁의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나 기업이 먼저 가족이나 기업 공동체 더 나가서 국가 공동체를 위한다면 개인도 기업도 진정으로 행복한 삶과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사회복지를 강화하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가족은 개인이 아닌 가족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해 나가면 어쩌면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풀릴 수 있다. 어찌 보면 꿀벌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았기에 꿀벌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해 왔을 것이다. 사람들도 아니, 한국인 만이라도 더 늦기 전에 그런 사실을 사회속에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의 간단한 선택이 사회와 인간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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