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거대동물과 한국의 ‘대기업 거대증’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심해동물은 왜 몸집이 훨씬 클까 수압 등 열악한 환경, 거대몸집으로 극복 심해 풍부한 미네랄, 쉽게 몸집 키울 수 한국 대기업, 1970년대 심해 환경과 비슷 지금은 격렬한 국제경쟁 시대...긴장해야
‘심해 거대증’은 왜?
심해에는 거대 동물들이 살고 있다. 환경으로 보면 수압이 높고, 산소가 부족하고 영양분마저 적으니 당연히 작은 생물만이 살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거대 바다 생물들이 생존해 있다. 이 현상을 가리켜서 ‘심해 거대증’(Abyssaler Gigantismus)이라고 한다.
무척추동물로 가장 큰 것은 남극하트지느러미오징어(Colossal squid, Mesoychoteuthis Hamilton)로 길이가 14m이상이 된다. 또 가끔 뉴스에 나오는 ‘바다 바퀴벌레’로 소개되는 바티노무스( Bathynomus giganteus )는 심해에서 서식하는 거대한 등각류로, 크기는 보통 50㎜(5㎝)이상이고, 거대한 종은 17~50cm까지 자라기도 한다. 대만에서는 이 껍질에 라면을 끓여서 파는데, 껍질만으로 라면 사발을 덮을 정도다.
심해에는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동물들이 많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수압이다. 수압이 높다보니 수압을 견디는 구조로 동물이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심해 거대증’이 발생하는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심해 거대증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없다.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심해의 환경 조건이다. 그 조건에 맞추어서 진화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심해 거대증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심해의 환경은 어떨까
심해의 환경 조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수압이다. 대기압에 비해서 700배 이상의 압력을 받고 있는 탓에 이로 인해 동물체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분명하다. 사람이 수중으로 들어가면 폐(허파)가 심하게 압력을 받는다. 폐에 공기가 들어 있어 압력이 강해지면 쪼그라든다. 반면 심해에 사는 동물들은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물에서는 오는 압력을 심하게 받지 않으려, 마치 흐물거리는 젤리처럼 유연한 몸체를 가지게 됐다. 오징어가 14m 이상으로 커지는 것은, 자기 몸속에서 심한 수압을 배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몸체가 커질수록 압력의 분산 효과도 커진다.
둘째로 중요한 환경은 ‘저온’이다. 육상이든 해저든 저온 환경에 사는 동물일수록 몸집이 크다. 맘모스가 그렇고 북극곰도 그렇다. 이유는 몸에 체지방을 쌓을 수 있어야 하고,체온을 지키기 위해서 보다 강력한 피부 조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지방층에 두껍게 지방을 저장해두고 언제든지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큰 체형으로 진화한 것이다. 체표면적에 비해서 체적이 커지는 것이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된다. 즉 몸이 작을수록 체온 관리가 힘들다. 심해는 저온 상태이기 때문에 체적, 즉 몸집이 커질수록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된다.
셋째로는 ‘먹이감의 부족’ 환경이다. 심해에서는 먹이감을 쉽게 구할 수 없기에 심해 동물들은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둔다. 즉 에너지를 가장 많이 저장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이 역시 몸집이 커지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심해에는 생명체가 많이 살지 않고, 먹이도 사체나 부유물이 많다. 이런 먹이들이 발견되는 순간에는 최대한 먹어두어야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 마치 대형 먹이 저장소처럼 자신의 몸집을 키운 것이다. ‘바다의 바퀴벌레’ 바티노무스의 경우, 일본의 수족관에서 먹이를 먹지 않은 채 1869일 동안 생존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심해 동물은 그만큼 먹이 비축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넷째, 심해 생물한테는 먹이를 찾거나 같은 종과 짝짓기하는데 몸집이 큰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몸집이 크면 빠르게 멀리 갈 수 있다. 활동 범위도 넓어진다.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장시간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심해에서는 먹이감이 적고 밀집되어 있지 않기에 멀리 빠르게 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그러니 몸집이 큰 것이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심해에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다. 표피 바닷물은 소금과 미네랄 비중이 80대 20이지만, 심해로 갈수록 70대 30으로 변한다. 즉 미네랄 성분이 많기 때문에 심해 생물들이 미네랄을 보충하기 좋다. 이는 성장에 크게 도움된다. 해양 심층수로 양식 물고기를 키우면 보통 물고기의 2배 이상 빠른 성장을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심해의 환경은 열악한 환경이다. 생명체가 이런 심해에 살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진화론적으로 보면 포식자가 적어 개체군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어쩔 수 없이 심해에서 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 탓일 것이다.
경쟁이 덜한 1970년대 산업화 초기
필자는 치열한 경쟁속 산업 생태계 내에서 몸집이 커진 우리나라 대기업이 심해라는 환경에서 생존하면서 몸집이 커진 생명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광복 이후에 산업 발전을 이루며 2가지 선택을 했다. 하나는 ‘수출지향형 경제 구조’, 또 하나는 ‘재벌 중심 대기업체제’였다. 수출지향형 경제 구조는 국제 분업이라는 측면과 대(對) 공산권과의 경제 전쟁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 또는 재벌 중심 산업정책은 일종의 심해 환경에서 몸집을 크게 만들어 생존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든 것과 흡사하다 할 것이다.
재벌 또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생긴 경쟁력을 심해 동물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심해동물이 지방을 체내에 축적하는 것처럼, 대기업은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한 방안으로 내부에 자체 자금을 누적시키려 애썼다. 특히 금융 시장이 불안하면 바로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가능한 자산 규모를 키워서 위기상황에 대비하려 했다. 이런 기업의 대응과 정부 정책은 산업화 초기를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심해 먹이감 부족이 몸집을 키우는 배경이 됐던 것처럼, 대기업은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독점적 시장 확보에 혈안이 됐다. 작은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1960~8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친 후 현재 생존해 있는 재벌 또는 대기업은 초창기에 독점적 시장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진입하지 못하게 막거나 망하게 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어찌 보면 작은 시장에서도 몸집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었지만, 중소기업을 파괴한 경영전략은 지금 와서 보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재벌이나 대기업은 그렇게 해서 살아 남았고 이제는 한국 경제를 이끌고 가는 힘까지 축적했다.
정경유착은 풍부한 미네랄 성분
심해 동물이 생존에 가장 핵심적인 환경이었던 수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화의 방향을 택했듯이, 재벌들은 강력한 압박을 받을 때 가장 효율적인 업종을 선택하는 유연성을 확보해 나갔다. 수압이 강해지면 그에 맞춰 심해 생물들의 체질이 변한 것처럼 재벌들도 시장환경의 압력이 거세지자 다양한 산업에 손을 대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산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성장시켰다. 처음부터 하나의 산업만을 중심으로 일관되게 기업을 키워 재벌까지 올라온 기업은 별로 없다. 산업화 초기에 가능한 한 돈벌이가 되는 모든 산업들에 손을 대 문어발로 사업체를 벌여왔다. 이것도 일종의 경쟁 압력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재벌들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몸집을 키운 심해 생물이 활동 범위를 넓힌 것처럼 재벌이나 대기업이 몸집을 키우면서 국내 시장이 아닌 국제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축적했다. 이는 수출지향 경제정책과도 맞아 떨어져 재벌이나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는 속도가 더해졌다. 이 점이 선진국의 대기업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선진국은 출발부터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했지만 크기가 작고 수준이 떨어지는 시장에서 출발한 한국의 기업들은 지금으로 보면 정경유착이지만, 그 시절에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국제 경쟁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몸집을 키웠다.
그 시절에 제도나 법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던데다, 대기업들이 정치 로비로 쉽게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는 점은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서 쉽게 몸집을 키울 수 있는 심해의 환경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이지만, 재벌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필요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시장은 제도적 허점이 많고 정치적 로비도 쉬워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데 효과적이었다.
경쟁이 덜한 시대는 오지 않는다
이제는 한국 경제도 많이 바뀌었다. 산업화 시기 당시의 전략이 지금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경쟁이 덜한 심해같은 환경은 이제 치열한 경쟁의 연근해 환경으로 바뀌었다. 글로벌 경쟁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한국 사회 전체도 바뀌었다. 국내 경쟁보다 국제 경쟁이 더 중요해졌고, 국제 경쟁의 결과를 바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환경이 바뀌면 예전 시절에 만족스러웠던 기업 전략이나 경제 전략도 바뀔 수 밖에 없다. 아직도 1970~80년대의 경제환경이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업가나 정치인들을 보면 국제 경제 환경과 시장 변화에 참으로 둔감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해 생물은 표층으로 올라오거나 바닷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바로 죽어버린다. 심해 환경과 같은 산업 환경 속에 편히 있던 기업들이 국제 경쟁 시장에 돌입하는 순간 바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심해의 환경은 우리가 어려웠던 시대를 기억하게 해준다. 그런 의미로 보면 한국 대기업의 ‘거대증’은 어두웠던 시대의 유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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