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종할까?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5월20일 양봉학자 안톤 얀사의 생일 전세계 작물 생산 35% 기여하는 생물 식물-꿀벌 공진화...맛있는 꿀, 긴 주둥이 과일 씨앗 등 야생동물의 먹이원 만들어 아인슈타인의 말은 사실과 다르지만...

꽃의 꿀을 빨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수분하는 꿀벌.
꽃의 꿀을 빨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수분하는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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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의 날’을 정했을까

지난 2017년 12월 유엔(UN)은 매년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하나의 생물에 대해 유엔이 특별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뭘까.

벌은 지구상 생물 중 가장 바쁜 생물 중의 하나다. 한 마리의 꿀벌은 하루에 무려 7,000개의 꽃을 넘나든다. 이 과정은 꿀을 채집하는 중이면서 수분(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로 옮기는 일)을 하는 과정이다. 꿀벌을 비롯, 나비, 박쥐, 벌새 등 다양한 수분 매개체들은 전 세계 식량 생산의 약 3분의 1에 관여한다. 벌은 생태계의 건강과 생물 다양성 유지에도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세계 벌의 날’은 이러한 수분 매개체들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들의 생존이 인간의 복지와 식량 안보에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날을 제정한 또 다른 이유는 꿀벌 개체 수 감소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보호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적으로 꿀벌 등 많은 수분 매개체들이 서식지 감소, 농약 사용, 기후 변화, 질병 등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일부 종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발언이 많이 알려졌다.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실은 “태양이 사라지면...”라고 말한 게 와전됐다. 하지만 벌의 위기는 바로 인류의 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꿀벌이 멸종할 정도의 기후라면 인간도 멸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 칠곡군청의 꿀벌 캐릭터 모형동산
사진= 칠곡군청의 꿀벌 캐릭터 모형동산

특별히 5월 20일로 지정한 이유는 현대 양봉의 선구자 안톤 얀사(Anton Janša, 1734-1773)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날이 바로 18세기 슬로베니아의 양봉가이자 현대 양봉 기술의 선구자로 안톤 얀사의 생일이다.

안톤 얀사는 벌통 디자인 및 관리의 혁신에 특별한 공적이 있다. 이동가능한 적재식 벌통을 만들어 벌통의 초기 개념을 만들어냈다. 또한 꿀벌 행동 및 생태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를 통해 수벌의 역할을 규명하기도 했다. 그는 수벌이 단순히 꿀을 운반하는 존재가 아니라, 여왕벌과 공중에서 교미하여 번식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의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리고 혁신적인 양봉 관리 기술로 이동식 양봉 방식을 개발해 생산성을 높였다. 최초의 제국 왕실 양봉 교사가 되었으며, 양봉에 관한 두 권의 중요한 저서, “벌의 분봉에 관한 논고 (Abhandlung vom Schwärmen der Bienen, 1771)”와 사후 출판된 “양봉大全 (Vollständige Lehre von der Bienenzucht, 1775)”을 독일어로 저술했다. 이처럼 그는 꿀벌의 생태를 존중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양봉 기술을 혁신한 인물이다.

꿀벌이 하는 가장 큰 역할 ‘수분’

생태학적 역할을 보면, 벌은 번식과 유전적 다양성의 핵심인 ‘수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수분 과정은 꽃 피는 식물에서 꽃가루를 옮겨 수정과 씨앗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특히 타가수분은 식물의 회복탄력성,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그리고 종 전체의 적합성을 향상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꿀벌은 타가수분(他家 受粉: 식물 스스로 하기 보다는 바람, 곤충, 새 등에 외부 요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수분)에 매우 효율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아몬드, 블루베리, 호박, 커피, 사과, 토마토, 코코아 등 수많은 작물이 꿀벌을 비롯한 곤충 수분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한다. 꿀벌은 엄청나게 많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핵심종으로 간주된다. 꿀벌이 없으면 과일을 먹기 힘든 날이 올 수도 있다.

꿀벌은 또 생물 다양성, 서식지 구조화, 먹이 그물 지원 등의 생태학적 기여를 한다. 꿀벌에 의한 수분은 꽃의 성장을 촉진하며, 이는 다시 곤충과 새를 포함한 다양한 다른 동물 종들에게 서식지를 제공한다. 수분을 통해 생성되는 과일, 견과류, 씨앗 등은 광범위한 야생동물의 중요한 먹이원이 되어 전체 먹이그물을 지탱한다. 꿀벌 자체와 그들이 생산하는 꿀 또한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전 세계 야생화 식물 종의 거의 90%가 수분 매개자의 도움을 받는다. 특정 꿀벌 종의 멸종은 토종 식물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꿀벌이 만들어내는 복합 생태계

꿀벌 매개 수분 시스템은 상호작용하는 식물과 동물 종들의 복잡한 생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식물과 수분 매개자는 서로에게 선택 압력을 가하며 적응을 이끌어낸다. 다양한 종류의 꽃 피는 식물들이 이 네트워크의 한 축을 이룬다. 각 식물들은 저마다 다른 꽃의 모양, 색깔, 향기, 꿀과 꽃가루의 양과 질, 개화 시기 등을 가지고 있다. 꿀벌(양봉꿀벌, 토종꿀벌 등)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야생벌(뒤영벌, 가위벌, 맵시벌 등), 나아가 나비, 나방, 파리, 딱정벌레, 새, 박쥐 등 다른 수분 매개 동물들도 이 네트워크에 참여한다. 각 수분 매개자는 자신만의 선호도, 행동 방식, 활동 시간, 몸의 크기와 형태 등 다양한 생태적 특징을 지닌다. 식물과 수분 매개자 사이의 연결은 대부분 ‘상리공생’(mutualism) 관계이다. 이를 통해서 식물 생태계가 유지 발전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꿀벌과 식물의 관계만큼 명확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는 없을 것이다.

식물과 수분 매개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에게 강력한 선택 압력(selective pressure)을 가하며 각자의 형질을 변화시켜왔다. 이를 상호 적응, 즉 공진화(co-evolution)라고 한다. 이 공진화는 2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한 방향은 식물이 수분 매개자에게 가하는 선택 압력이고 식물이 수분 매개자에게 적응시키는 과정이다. 꽃의 깊이, 통로의 넓이, 입술꽃잎의 유무 등은 특정한 크기나 형태의 주둥이, 혀, 몸집을 가진 수분 매개자만이 접근하여 효과적으로 꿀을 얻고 수분을 매개하도록 선택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긴 주둥이를 가진 벌은 깊은 꽃에서 꿀을 얻도록 적응하고, 작은 벌은 작은 꽃에 특화될 수 있다.

많은 꽃들은 꿀벌의 시각에 맞춰 특정 색깔을 띠거나, 자외선으로만 보이는 ‘꿀 안내선(nectar guide)’을 만들어 꿀벌을 꿀이 있는 곳으로 유도한다. 식물은 특정 화학물질을 조합하여 독특한 향기를 만들어내고, 이는 특정 수분 매개자를 유인하는 강력한 신호가 되고, 어떤 꿀벌 종은 특정 식물의 향에 강하게 끌리도록 진화해 그 식물의 주요 수분 매개자가 되기도 한다. 식물은 꿀의 당 농도, 아미노산 조성, 꽃가루의 양과 단백질 함량 등을 조절하여 수분 매개자에게 보상의 질을 다르게 제공한다. 수분 매개자는 더 양질의 보상을 제공하는 식물을 선호하게 되고, 이는 식물의 번식 성공률에 영향을 미친다.

식물도 꿀벌에 맞춰 진화한다

또 다른 방향은 수분 매개자가 식물에게 가하는 선택 압력 및 식물의 적응이다. 꿀벌과 같은 수분 매개자가 특정 식물의 꽃을 지속적으로 방문하고(꽃 항상성, flower constancy), 꽃가루를 효과적으로 다른 개체로 옮기도록 하려면 이러한 행동을 유도하는 형질 즉 풍부한 꿀, 쉽게 접근 가능한 꽃가루를 갖는 식물들이 유리하다.

식물은 이러한 꿀벌의 형태에 맞춰 꽃가루의 양, 끈적임, 표면 구조 등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적응할 수 있다. 때로는 수분 매개자의 감각 능력에 맞추기도 한다. 꿀벌이 특정 색깔이나 향기에 더 잘 이끌린다면, 그러한 신호를 명확하게 제공하는 식물이 선택적으로 번성하게 된다. ‘버즈 폴리네이션(Buzz pollination)’과 같은 특수화된 수분 형태가 있는데 일부 식물(예: 토마토, 블루베리)은 꽃밥이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어 특정 진동수에만 꽃가루를 방출한다. 뒤영벌과 같은 일부 벌들은 날개 근육을 빠르게 진동시켜 이 특정 진동수를 만들어 꽃가루를 효과적으로 수집하는데, 이러한 식물과 벌 사이에는 매우 긴밀한 공진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꿀벌이 매개하는 수분 시스템은 단순한 1대1 관계가 아닌, 수많은 식물과 동물 종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영향을 주고받는 생태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 내에서 식물과 수분 매개자는 오랜 기간 서로에게 선택 압력을 가하며 각자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적응해왔다. 이러한 상호작용과 공진화는 지구상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생태계의 건강성과 안정성을 지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외국산 꿀 수입의 증가로 국내 양봉산업도 위기를 맞고 있다.
외국산 꿀 수입의 증가로 국내 양봉산업도 위기를 맞고 있다.

산업 생태계의 꿀벌 ‘벤처캐피탈’

생물 생태계 내에서 꿀벌이 가지는 역할을 보면 산업 생태계에서는 벤처 캐피탈이 그 역할을 한다. 꿀벌과 벤처 캐피털(VC)이 각자의 생태계(각각 식물 및 산업 생태계)의 활력, 진화, 생산성에 결정적인 유사 촉매 기능을 수행한다. 꿀벌은 수분을 통해 식물 번식, 유전적 다양성 확보, 생태 군집 구조화에 기여한다. 마찬가지로 VC는 자본 투입과 전략적 지원을 통해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출현, 시장 교란, 산업 지형의 진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첫째로 꿀벌이 매개하는 꽃가루와 VC가 투입하는 자본은 새로운 개체(씨앗/식물 및 스타트업)의 생성과 유지에 필수적인 “생명선”이라 할 수 있다. VC는 스타트업이 제품을 개발하고 규모를 확장하며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자본을 제공한다. 이것이 없다면 많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한다.

둘째로는 꿀벌이 꽃을 방문하거나 VC가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국지적이지만, 개별 행동의 합을 훨씬 뛰어넘는 생물 다양성, 시장 혁신과 같은 시스템에 기여한다. 꿀벌이 꽃을 수분하는 것은 작아 보이는 행동이지만, 집합적으로 꿀벌은 전 세계 작물 생산의 35%에 기여하고 광대한 생물 다양성을 지원한다. 마찬가지로 VC는 단일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지만, 집합적으로 VC는 산업 전반에 걸쳐 상당한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및 기술 혁신을 주도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경제 변화는 많은 개별 투자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혁신 과정이다.

셋째로는 식물과 벌의 관계가 상리공생 관계인 것처럼 스타트업과 VC의 관계도 상리공생의 관계이다. VC는 경험, 산업 지식, 기술 및 경영 인맥 연결, 전략적 조언, 멘토십을 제공하며, 이는 스타트업에게 매우 귀중할 수 있다. 그들은 종종 이사회에 참여하여 주요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경영진의 재량권을 제한하며 거버넌스를 제공한다. VC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스타트업을 잠재 고객, 파트너, 인재, 후속 투자자와 연결한다.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의 공진화

넷째로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VC)의 관계를 “공진화(co-evolution)’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마치 식물과 꿀벌과 같은 수분 매개자가 서로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해왔듯이, 스타트업 생태계와 VC 산업도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선택 압력을 가하며 함께 발전해 왔다. 스타트업 생태계와 VC 산업은 상호 의존성과 필요에 의한 공진화를 해왔다.

공진화적 결과로 이러한 상호 선택 압력은 VC와 스타트업 모두가 시장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존과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수정하고 역량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법론의 확산은 VC의 단계별 투자 및 검증 과정과 스타트업의 빠른 시장 검증 및 제품 개선 방식에 상호 영향을 주었다. 스타트업과 VC의 관계는 일방적인 자금 공급-수혜 관계가 아니라, 마치 공생하는 두 종이 서로의 특성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역동적인 ‘공진화’ 관계로 보아야 한다.

2009년, 2016년 두차례 발생한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들이 사라지고, 생존 위기에 내몰렸던 양봉농가들은 2018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봉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 높은 토종벌 신품종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새 품종은 경제 형질보다는 저항성 획득을 최우선으로 했다. 앞으로는 저항성도 갖추면서 벌꿀 생산성이 높은 경제성도 뒤따르는 품종도 개발될 예정이다.

이처럼 한국의 스타트업에서도 토종의 스타트업 육성방법과 VC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한국형 성장 모델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한국은 VC자금에서도 빈약하고, 자본 시장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 점을 고려한 한국만의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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