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샌드위치가 ‘상류층의 상징’ 된 사연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애프터눈 티’에 함께 하는 오이 샌드위치 부유층 과시용에다 건강음식이라 ‘유행’
영국 홍차문화를 상징하는 ‘애프터눈 티’는 홍차뿐만 아니라 곁들여지는 티 푸드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애프터눈 티를 구성하는 여러 티 푸드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오이를 속에 넣은 샌드위치다.
오이 샌드위치가 어떤 역사 혹은 연유로 애프터눈 티를 대표하는 티 푸드가 되었는지에 관해 알아보자.
오이만 들어간 샌드위치
애프터눈 티가 시작된 1840년대 이전에도 일부 귀족들 사이에서는 간식으로 껍질 없는 흰 빵(Crustless white bread)사이에 오이를 넣어 먹는 관습이 있었다.
애프터눈 티를 유행시킨 안나 마리아가 이미 최상류층 간식이었던 오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애프터눈 티를 구성하는 티 푸드에 포함시킨 것이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정형화된 사교모임인 애프터눈 티의 정식메뉴가 되면서 오이 샌드위치는 부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오이 샌드위치가 이런 대접을 받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오이가 여름 채소라 연중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집에 온실을 운영할 수 있는 귀족계층이나, 혹은 아주 비싼 가격에 구입할 여력이 있는 상류층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오이 속에 영양이 될 만한 성분이 별로 들어있지 않다는 다소 뜻밖의 이유다.
영양소가 없는 것이 오히려 장점
오이는 거의 물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95%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타민은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열량은 거의 없는 채소다. 따라서 식사 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최상류층은 간식으로 먹었지만(혹은 체중관리 목적으로 선호되었을 수도), 그렇치 못한 서민층이나 노동자 계층은 비싸기만 한 오이를 자신들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런 음식으로 여겼다. 즉 오이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먹는다는 것은 식사 때는 영양이 충분한 음식을 먹고 있다는 과시의 표시이기도 했다.

외형도 매우 중요
이런 과시 목적을 가진 음식이다 보니 샌드위치의 외형에도 각별히 신경 썼는데 특히 빵을 얇게 자르는 게 중요했다. 밀도 높은 질감으로 잘 만들어진 직사각형 식빵 덩어리(Pullman loaf)를 칼로 자르는데, 잘라진 빵에 난 작은 구멍사이로 빛이 통과할 정도였다. 빵이 얇을수록 세련된 가문으로 여겨져 여주인들은 얇게 자르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이 자른 빵 안쪽면에 버터를 아주 얇게 발라 가운데 넣은 오이 즙으로 빵이 축축해지는 걸 막았는데, 집어 먹을 때 손에 습기가 묻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 1837∼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시대)의 정통 오이 샌드위치는 테두리 껍질을 제거한 얇게 자른 사각형 빵에 버터를 바르고 오이 조각 그리고 레몬을 살짝 뿌리고, 소금도 조금 넣은 후 대각선으로 두 번 잘라 네 조각의 삼각형으로 만든 모습이었다.
핑거 푸드의 대표로
이렇게 하여 상류층 음식인 핑거 샌드위치가 탄생했다. 핑거 푸드(Finger Foods)는 커트러리(Cutlery :식탁용 나이프, 포크, 숟가락 등)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집어 먹는 음식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부스러기가 나거나 흘리지 않으면서 깔끔하게 한 입에 먹을 수 있어야 한다. 핑거 샌드위치(Finger Sandwich)는 핑거 푸드의 우아한 이 용도에 적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는 다양해져 직사각형도 있고 왕실에서는 작은 정사각형을 선호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게 정성들여 만들어진 작고 예쁜 오이 샌드위치는 점점 귀족들의 사랑을 받아 애프터눈 티의 필수 음식이 되었다. 마침내 188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 행사인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 파티에서 서빙 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된다.
상류층의 허영심을 비꼬는 상징으로
영국의 가장 화려한 시기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 1901~1910년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인 에드워드 7세가 통치한 시대)에는 오이 샌드위치가 그 유행의 절정에 이른다.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석탄으로 온실이 많아지면서 오이 생산량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무렵에는 중산층까지도 먹을 수 있는 티 푸드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는 “잘난 척”의 흔적을 가진 음식으로 여겨졌다. 당시의 소설 등에서 상류층을 묘사하는 상징의 하나로 사용되었으나 주로는 이들의 허영심을 비꼬는 용도였다.

오늘날 오이 샌드위치는 더 이상 부를 상징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드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버터 대신 크림치즈를 바르기도 하고, 연어, 마요네즈로 버무린 계란, 잘게 쓴 딜(Dill-허브의 일종, 흔히 야채로 피클을 만들 때 넣음), 오이와 크림치즈로 만든 베네딕틴(Benedictine) 스프래드를 넣기도 한다. 갈색 혹은 껍질 있는 빵도 사용한다.
하지만 정통 오이 샌드위치는 여전히 중요한데 영양 과다섭취를 우려하는 오늘 날, 애프터눈 티의 열량 많은 티 푸드 속에서 열량 없는 음식으로 또 다시 주목 받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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